대접쇠(大楪鐵)
sillokwiki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대접쇠 |
한글표제 | 대접쇠 |
한자표제 | 大楪鐵 |
동의어 | 대접철(大楪鐵), 대첩금(大貼金), 대첩철(大貼鐵) |
관련어 | 둔테 |
분야 | 문화/예술/건축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정정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대접쇠(大楪鐵)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9년 6월 17일 |
대문의 둔테가 닳지 않도록 장부 구멍 가장자리에 설치하는 말굽형 철물.
내용
대접쇠[大楪鐵]는 대문과 같은 규모가 큰 판문의 장부 구멍 가장자리에 설치하였다. 성문, 궁성문과 같이 큰 판문을 달 경우 문의 하중이 크기 때문에 이를 지탱하는 둔테의 보강이 필요하여 대접쇠를 사용하게 된다. 성문뿐 아니라 곳간·주방 등의 판문에도 사용되었다. 표기는 이두 방식으로 대접철(大楪鐵), 대첩철(大貼鐵), 대첩금(大貼金)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785년(정조 9)에 북한산성의 실정을 살피는 과정에서 대남문의 대접쇠가 탈락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1644년(인조 22)에 간행된 대보단 등록에서는 대첩금으로 표기되었다. 대보단 외삼문에 판문 6짝을 달기 위해 대접쇠 6개가 사용되었다. 또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서도 대첩금으로 표기되었다. 대첩금은 영건 관련 의궤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림 대접쇠
용례
城堞周廻 自白雲峰 右轉至靈鷲峰 山勢高峻 自不築城 而白雲、靈鷲之間低凹處 有二乾城 自靈鷲腰始起城 至北門 門樓 經甲午災後 不重建 而門鑰永鎖 虹蜺尙完 自北門而上 爲元曉峰 尖高城絶 斲石爲梯 (중략) 文殊之右 有文殊暗門 而今爲大南門 門扇大揲鐵 脫落已久(『정조실록』 9년 6월 17일)
참고문헌
- 『대보단등록(大報檀謄錄)』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경기문화재단 편집부,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 경기문화재단, 2007.
- 장기인, 『한국건축사전』, 보성각,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