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大角)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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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대각 |
한글표제 | 대각 |
한자표제 | 大角 |
관련어 | 농각(農角), 땡각, 소각(小角), 영각(令角)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초기~대한제국기 |
왕대 | 조선초기~대한제국기 |
집필자 | 이정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대각(大角)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2년 9월 2일 |
관악기의 하나.
개설
입으로 부는 악기의 하나로 궁중, 군영 등에서 사용되었다. 조선전기에는 종묘제례에서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춤출 때 의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왕의 무공(武功)을 형상화한 정대업지무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의 하나로 차용했던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사물기원(事物紀原)』에 “황제가 치우와 싸울 적에 각을 불도록 명령하여, 용의 울음소리를 내어 적을 방어했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동양에서 각의 역사는 깊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구려 고분벽화에 각과 유사한 종류의 악기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조선시대에 쓰였던 대각과 같은 형태로 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대각은 군영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궁중 행사에서 일부 활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전기에는 종묘제례에서 정대업지무를 춤출 때 주위에 늘어놓는 의물로 사용되었으나, 조선후기에 정대업지무를 연행할 때 의물을 진설하지 않게 되면서 대각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반면 군영에서는 대각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정조대에는 노량(鷺梁)에서 대열(大閱)을 행할 때 병조 판서가 각 영의 대장들을 집합시키기 위해 대각을 세 번 불게 하는 등 군영의 신호용 악기로 중요하게 쓰였다(『정조실록』 2년 9월 2일). 또한 군영 악대에도 대각이 구성되어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형태
성종대에 제작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대각의 그림, 규격, 재료 등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대각은 기다란 관에 주둥이가 있는 모습이다. 은(銀)이나 동(銅)을 두드려 만든 것과 나무로 만든 후 붉은 색이나 검은 색을 칠한 것이 있었다. 종묘제례에서 정대업지무를 춤출 때 의물로 쓰였던 대각은 나무로 만들어 붉은 칠을 한 것이다. 대각의 전체 길이는 2자 6치였다. 입을 대는 부분의 바깥지름[外徑]은 1치 3푼, 구멍 지름은 5푼이었다. 소리가 확장되는 주둥이의 지름은 4치 5푼이었다.
- 00016716_그림1_『세종실록오례의』의 대각
- 00016716_그림2_『악학궤범』의 대각
생활·민속 관련 사항
나무로 만든 대각은 민간으로 전승되기도 하였다. 영각, 농각, 땡각, 목덩강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두레 작업을 할 때 신호용으로 쓰였고, 농악을 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 『악학궤범(樂學軌範)』
- 『종묘의궤(宗廟儀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태학사, 200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