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호(陵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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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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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능호 |
한글표제 | 능호 |
한자표제 | 陵號 |
관련어 | 왕릉(王陵)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임민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능호(陵號)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현종실록』 즉위년 5월 11일 |
왕릉의 명칭.
내용
왕의 각 능은 시신의 주인공을 분간할 고유 명칭이 필요하여 능호를 제정하게 되었다. 능호는 왕과 왕비에게만 사용하였으며, 그 이하의 신분은 원(園)이나 묘(墓)를 썼다.
능호의 제정 업무는 예조(禮曹)의 계제사(稽制司)가 실무를 담당하였다. 능호의 제정은 왕의 명을 받아 예조에서 참여 인원을 명초(命招)해서 모여 의논하였다. 이때 참석 인원은 시·원임 대신과 의정부(議政府)의 찬성(贊成)과 참찬(參贊),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등의 당상관, 육조(六曹)의 참판(參判) 이상,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 삼사(三司)의 장관 등이다. 논의한 능호는 대개 3명의 후보를 올리는 삼망(三望)으로 올리는데, 통상 첫 번째로 추천한 이름인 수망(首望)이 낙점되지만, 간혹 부망(副望) 혹은 말망(末望)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논의에 부쳤다.
용례
領敦寧府事李景奭領議政鄭太和左議政沈之源等 與六曹參判以上諸宰 俱會于賓廳 議定大行諡號曰 烈文毅武神聖至仁 廟號曰 孝宗 陵號曰 翼陵 (중략) 其後以烈文毅武至仁 俱犯列聖徽號 改以宣文章武神聖顯仁 陵號亦改以寧(『현종실록』 즉위년 5월 11일)
참고문헌
- 『은대조례(銀臺條例)』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