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어(鱸魚)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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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노어 |
한글표제 | 노어 |
한자표제 | 鱸魚 |
대역어 | 농어 |
동의어 | 사시어(四鰓魚) |
관련어 | 걸덕어(乞德魚), 보로어(甫鱸魚)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식재료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양미경 |
생산지 | 경기도 |
수확시기 | 7~8월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노어(鱸魚)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1년 7월 19일 |
농엇과의 바닷물고기인 농어의 한자어.
개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와 한강 유역에서 노어(鱸魚)가 많이 잡혔다. 노어를 이용한 음식으로는 노어회가 가장 대표적인데, 조선의 선비들은 이 음식을 보면서 순챗국과 농어회가 그리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장한(張翰)의 순갱노회(蓴羹鱸膾) 고사를 떠올리곤 했다. 이외에도 노어로는 국과 포를 만들어 먹었다.
원산지 및 유통
전국에 널리 분포하지만,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는 경기도 지역에서 노어가 많이 잡힌다고 하였다[『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부평도호부 인천군][『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수원도호부][『세종실록』 경기 수원도호부 안산군].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 예로부터 한강 유역에 노어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원 및 용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중국에 노어를 1회 진헌했다는 기록 외에 별다른 기록이 실려 있지 않다(『세종실록』 11년 7월 19일). 이로 미루어 볼 때, 노어는 중국 황실과 조선 왕실에서 그다지 인기를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노어는 매우 특별한 물고기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노어를 볼 때마다 장한의 순갱노회 고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약용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노어회와 노어국을 먹으면서 받은 감흥을 수많은 시로 남겼다.
노어는 또한 포를 만들어 먹기에도 매우 적합하였다. 조선후기 조리서인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에는 어포 만드는 법이 적혀 있다. 어포를 만들려면, 우선 노어의 생선살을 두껍게 떠서 소금을 뿌려 말린다. 그런 다음, 말린 생선을 망치로 두드려 부풀린다. 그러고는 힘줄과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오징어포만 한 크기로 자르면 된다.
참고문헌
-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