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약(臘藥)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납일(臘日)에 왕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던 환약 형태의 상비약.

개설

납제(臘劑)라 부르기도 한다. 동지(冬至)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에 내의원에서 조제한 환약을 왕에게 진상하면, 왕은 이를 가까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연원 및 용도

납일은 시기마다 달리 날이 정해졌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송나라 역법에 따라 동지 이후 술일(戌日)을 써왔으나 지태사국사(知太史局事)양관공(梁冠公)이 음양서를 검토한 결과 대한(大寒) 전후로 가장 가까운 진일(辰日)이 납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이날을 전후로 관리에게 7일의 휴가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동지 후 첫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로 삼아 지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내의원에서는 각종의 환약을 만들어 진상한다. 그중 청심원(淸心元), 안신원(安神元), 소합원(蘇合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청심원은 정신적 장애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고, 안신원은 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며, 소합원은 극성위장염[霍亂]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인 약이다. 당시 조선에서 만든 납약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듯하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북경 사람들은 청심원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신단(神丹)이라 여겨 왕공(王公)과 귀인(貴人)도 조선의 사신들에게 구걸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소합원보다 효과가 좋은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을 만들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기도 했다. 1789년(정조 13)에는 신방제중단(新方濟衆丹)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한기(寒氣)를 면하게 했으며(『정조실록』 13년 10월 16일),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1790년(정조 14)에는 소합원보다 효과가 좋은 제중단과 광제환을 만들어 모든 군 진영[營門]에 나누어 주어 병사들을 치료하는 데 쓰게 하였다. 이를 통해 납약은 납일에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왕이 수고한 사람들이나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외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납약을 만들어 기신(耆臣)에게 나누어 주고, 각 관아에서도 만들어 나누어 주고 서로 선사하기도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납일 밤에 농촌에서는 새잡기를 하였다. 그 이유는 납일에 잡은 새는 맛있을 뿐 아니라, 아이가 이 고기를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날 반드시 새를 잡으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마마를 깨끗이 한다 하여 총을 쏘아 잡는 것도 묵인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날 내린 눈은 약이 된다고 해서 곱게 받아 독에 담아 두기도 한다. 눈 녹은 물을 두었다가 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으며, 의류와 책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대로 두었다가 환약을 달일 때 쓰기도 하고, 그 물로 눈을 씻으면 안질에도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눈이 밝아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민간에서 납일에 하는 행위들은 대부분 병의 예방과 관련된 민간신앙이 주를 이룬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