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차(酪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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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소금, 황차를 통에 넣고 여러 차례 세게 흔들어서 만든 차.

개설

청나라 황실에서 조선의 사신(使臣)들을 위해 베푼 연회에서 제공했던 차로 우유, 녹차, 소금 등으로 만들었다. 다른 말로 낙타차(駱駝茶), 낙차(駱茶)라고도 불렀다. 요즘 중국에서는 유차(乳茶) 혹은 내차(奶茶)라고 부른다.

만드는 법

조선시대 요리책에는 낙차를 만드는 법에 대한 기록이 없다. 청나라 황제 중에는 건륭제(乾隆帝)가 낙차를 가장 즐겨 마셨다. 당시의 낙차는 우유, 크림, 소금과 옥천산의 샘물, 절강(浙江)에서 진상된 황차(黃茶)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중국 유차는 연유, 홍차, 소금을 혼합하여 약 5분간 세게 흔들어서 만든다.

연원 및 용도

녹차를 구하기 어려웠던 몽골과 티베트 등지에서 적은 양의 녹차에 우유를 넣고 끓여 마시던 차에서 유래했다. 청나라 황실의 만주족은 몽골의 영향을 받아 낙차를 즐겨 마셨고,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음료로 대접했다. 조선에 온 청나라 사신 중에 술을 마시지 않고 낙차를 찾는 경우도 있어 젖소[乳牛]를 구하여 이 차를 만들었는데 청나라 황실에서 만든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낙차와 관련한 조선의 기록은 청나라 사신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젖소를 준비했다는 내용이다. 1643년(인조 21) 청나라에서 온 칙사(勅使)가 술을 마시지 않고 낙차를 계속 마신다고 하여 경기도의 농우(農牛) 두세 마리를 호조(戶曹)에서 취하여 준비하였고, 1709년(숙종 35)에는 청나라의 칙사가 타락차를 마시고 싶어 하므로 영접도감(迎接都監)에서는 경기도의 젖소를 속히 구하여 준비하였다고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 외의 낙차 관련 기록은 모두 연행사로 청나라의 황실에 간 사신들이 보고한 것이다. 황제는 조선의 사신에게 음식과 함께 낙차를 내렸다. 특히 건륭제는 조선의 사신들에게 직접 낙차를 하사하였다(『정조실록』 7년 10월 4일). 하지만 사신과 역관에게만 낙차를 내렸고, 다른 수행원에게는 내리지 않았다(『정조실록』 9년 2월 14일). 황제와의 접견이 끝나면 청나라 황실에서는 사신들에게 낙차를 큰 병으로 보냈다. 조선 사신들은 이상한 맛 때문에 대개 마시려 하지 않았으나 그 맛을 아는 사신은 즐겨 마셨다. 맛이 담담하고 빛이 붉다는 평가를 내린 사신도 있었다. 강세황(姜世晃)은 건륭제의 천수연(千叟宴)에 초청을 받고, “녹미(鹿尾)와 낙차 같은 특별한 맛 흠뻑 보니”라는 시를 남겼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기유록(奇遊錄)』
  • 『연행일기(燕行日記)』
  • 李幸哲·崔漢善, 「中國 宮廷의 飮茶文化:朝鮮使行錄을 중심으로」, 『동아인문학』27, 2014.
  • 정민,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 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