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給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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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오랫동안 경작되지 않은 진전으로 인정하여 토지에 대한 세를 면제해 주는 것.

개설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토지를 경작하는 연작상경(連作常耕)이 보편화되었다. 이에 따라 세종대에 만들어진 공법(貢法)에서는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상에 정전(正田)으로 등록된 토지에 대해서는 진전(陳田)을 인정해 주지 않고, 해마다 세를 부과하는 것이 원칙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양한 형태로 진전이 발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세금 부과를 강행할 경우 많은 문제를 불러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완전히 경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진전[全陳田]에 대해서는 경작자가 이를 신고하여 면세받을 수 있도록 『경국대전』에 규정해 놓았다. 이처럼 진전으로 인정하여 면세 혜택을 내려 주는 것을 급진(給陳)이라고 한다. 이후 진전에 대한 세 규정은 몇 차례 세부 규정이 변화되었으나, 대체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급진이 제정된 원인은 당시 농업생산이 불안정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국가 입장에서는 되도록 진전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였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원인으로 진전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수세를 강행할 경우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부담을 담당하는 사람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토지를 버리고 도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더 많은 진전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셈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전에 대한 면세 규정을 두어 과도한 세 수탈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내용

진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작자가 고을의 수령에게 직접 보고해야 했고, 수령은 진전 여부를 직접 조사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해야 했다. 관찰사가 다시 중앙에 이를 보고하고 중앙에서는 해당 사실을 조사할 관원을 파견하여 사실 여부를 조사한 후왕에게 보고하였다. 이후 최종적으로 왕의 결정에 따라 면세 여부가 결정되었다. 이러한 규정은 세종대에 정해졌으나(『세종실록』 2년 11월 21일), 실제 입법화된 것은 성종대인 듯하다(『성종실록』 5년 1월 25일).

변천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전세 수취는 비총제(比總制)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각 필지의 연분, 경작 현황 등을 매해 일일이 살피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인 작황을 판단하여 그에 맞는 세액을 각 군현 단위로 거두는 것이었다. 이때 급진은 기존처럼 경작자의 신고가 아니라, 왕이 군현 단위로 내려 준 결수를 토대로 지방 차원에서 세액을 조정하거나 면제해 주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이철성, 『17·18세기 전정운영론과 전세제도 연구』, 선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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