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芹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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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를 소금에 절여서 담근 김치.

개설

미나리는 전국적으로 자라며, 물이 충분히 고인 미나리밭[水芹田] 또는 미나리꽝에서 키운다. 한국에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미나리를 식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쓸 미나리는 위전을 두어 조달하였다. 미나리는 근저(芹菹)라 하여 김치를 담가 제수로 상에 올렸고, 그 밖의 요리에도 주재료 혹은 부재료로 다양하게 이용하였다.

만드는 법

제사상에 올리는 미나리김치[芹菹]를 담그는 방법은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여타 기록에서도 구체적이지 않다. 다만, 『승정원일기』 1636년(인조 14) 4월 10일 기록을 보면, 생미나리를 깨끗이 다듬어 소금에 절여서 숙성시켰던 듯하다. 이러한 조리법은 『농정회요(農政會要)』에 보이는 민간에서 반찬으로 먹었던 미나리김치[芹醎菹]의 조리법과는 차이가 난다. 『농정회요』에서 소개한 미나리김치는 미나리 외에 반드시 연한 배추[嫰菘]와 봄무[春蘿葍]를 함께 담가야 좋으며, 가는 파[細蔥]도 더 넣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소금에 절이는 방법 이외에 미나리장아찌라 하여 미나리를 간장에 절였다가 갖은 양념에 무친 음식도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보인다. 그 밖에 민간에서는 『산림경제(山林經濟)』, 『농정회요』, 『시의전서』 등에 있듯이, 미나리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자르지 않은 채 양념하여 무치는 미나리나물도 해 먹었다.

연원 및 용도

근저, 즉 미나리김치는 주로 두(豆)에 담아 제수로 이용되었다. 『세종실록』「오례」에 따르면, 근저는 친제사직의(親祭社稷儀), 제사직섭사의(祭社稷攝事儀), 주현제사직의(州縣祭社稷儀), 친협종묘의(親祫宗廟儀), 협향종묘섭사의(祫享宗廟攝事儀), 사시급납친향종묘의(四時及臘親享宗廟儀), 사시급납향종묘섭사의(四時及臘享宗廟攝事儀), 사풍운뇌우산천성황의(祀風雲雷雨山川城隍儀), 사영성의(祀靈星儀), 제악해독의(祭嶽海瀆儀), 제삼각산의(祭三角山儀), 제산천의(祭山川儀), 제목멱의(祭木覓儀), 친향선농의(親享先農儀), 향선농섭사의(享先農攝事儀), 향선잠의(享先蠶儀), 우사의(雩祀儀), 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 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 주현석전문선왕의(州縣釋奠文宣王儀), 향조선단군의(享朝鮮檀君儀), 향고려시조의(享高麗始祖儀), 사마조의(祀馬祖儀), 향사한의(享司寒儀) 때에 진설하였던 음식이다. 이 밖에도 예조(禮曹)에서 정한 산릉의 개토(開土)와 참토(斬土) 제의와 둑제(纛祭)에도 근저를 두에 담아 둘째 줄에 올렸다(『세종실록』 1년 12월 7일) (『세종실록』 22년 6월 13일).

『승정원일기』 1636년(인조 14) 4월 10일 기록을 보면, 인조 때에는 제수로 준비한 근저가 제대로 익지 않고 정갈하지도 않아서 제사 음식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올린 진배관(進排官)을 엄하게 추고한 일도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농정회요(農政會要)』
  • 『산림경제(山林經濟)』
  • 『시의전서(是議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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