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무(求貿)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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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구무 |
한글표제 | 구무 |
한자표제 | 求貿 |
상위어 | 대일무역(對日貿易) |
관련어 | 구청(求請), 회사(回賜), 대마도(對馬島), 막부(幕府) |
분야 | 경제/무역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후기 |
왕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최주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구무(求貿) |
대마도에서 필요한 물품을 요청해오면 조선에서 일정한 대가를 받고 허가해주던 교역의 한 형태.
개설
구청(求請)은 임진왜란 이후 막부로부터 대조선 외교와 무역을 위임받은 대마도가 조선에 필요한 물품을 요청하면 조선에서 이를 지급하거나 교역을 허가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구청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대마도에서 사신이 내왕할 때 답례의 뜻으로 회사품(回賜品)과 함께 정기적으로 정해진 종류와 수량을 아무 대가 없이 무상(無償)으로 내려주는 것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대마도가 조선에 필요한 물품을 요청하면 교역을 허가하여 유상으로 지급하는 것이 있다. 후자를 특히 구무(求貿)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임진왜란이 종식된 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 무역이 재개된 것은 1609년(광해군 1) 기유약조(己酉約條)가 체결된 이후였다. 대마도는 본래 토질이 척박하고 물산이 부족하여 여러 생활물품을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확보하였다. 기유약조에 체결된 대로 대마도에서 파견한 연례송사가 매와 말, 서적, 약재 등의 물품을 요청해오면 조선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물품을 마련해주었다.
한편 품질이 좋은 제기류(祭器類)를 직접 제작해줄 것을 요청하거나 원료가 되는 백토, 약토 등을 구무의 방식으로 조달해가기도 하였다. 또 일상 생활용품으로 쓰이는->는 직물류, 모피류, 어패류, 과실류 등을 구무해갔다. 구무로 확보한 물품은 대마도 현지에서 생필품으로 소비하기도 하였지만, 막부의 쇼군에게 접대하거나 바치는 물품으로 쓰이는 경우도 상당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기장(沙器匠)이나 신병을 치료하는 의관(醫官)을 요청하여 조선에서 이들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전례가 없는 물품에 대해서는 엄격히 통제하였지만, 전례가 있고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구무를 허락해주었다. 물품에 대한 결제는 공목(貢木)이나 공작미(公作米)에서 그만큼의 값을 빼고 계산하거나 은으로 받기도 하였다.
변천
문제는 대마도에서 이처럼 구무로 요구하는 물품의 양과 빈도수가 많아 조선에서 요청한 수량대로 교역을 허락하는 것이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이 이처럼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마도의 구무를 허락해 준 이유는 임진왜란이 종식되고 대마도를 매개로 일본과의 기형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대마도는 구무를 통해 자체적인 생활물품을 충당하기도 하였지만, 막부 교섭에 이러한 물품을 활용하였다. 대마도주는 막부에 자신이 조선과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대조선과의 무역에 있어서도 유리한 지점을 차지해갔다. 이러한 대일 교역방식은 19세기까지 큰 틀에서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참고문헌
- 이승민, 「조선후기 對馬島 求貿의 개념과 실태」,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학회, 2010.
- 이승민, 「조선후기 對馬島와의 말[馬] 교역과 그 의미」, 『사학연구』, 한국사학회, 2012.
- 이승민, 「조선후기 일본과의 매[鷹] 교역과 그 의미」,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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