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대(敎師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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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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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교사대 |
한글표제 | 교사대 |
한자표제 | 敎師隊 |
관련어 | 훈련도감(訓鍊都監), 좌교사대(左敎師隊), 우교사대(右敎師隊)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광해군 |
집필자 | 윤훈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교사대(敎師隊)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38년 5월 19일 |
조선선조 때 훈련도감(訓鍊都監)에 소속되어 훈련 등을 담당하였던 병종(兵種).
내용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훈련도감에서는 중국 명나라의 절강병법(浙江兵法)과 무예를 익히기 위해 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성과가 충분치 않은 가운데 여러 기예(技藝)에 정통하며 특히 『기효신서(紀効新書)』의 법에도 밝다고 자칭하였던 명나라의 유격(遊擊)인 허국위(許國威)에게 살수(殺手) 가운데 우수한 자 12명을 선발해서 배우게 하였다. 많이 익혀서 능숙해지면 이들을 교사(敎師)로 삼아 중앙과 외방의 군인들을 두루 가르치게 할 것을 건의하였다. 마침내 1598년(선조 31) 7월경에 국왕의 허락을 받아 교사대라는 명칭으로 설치되었으며 당시 가설주부(加設主簿)였던 한교(韓嶠)에게 통솔하게 하였다. 그 뒤에 좌교사대(左敎師隊)와 우교사대(右敎師隊)로 개편되었으나 정확한 인원은 확인되지 않는다. 1610년(광해군 2) 함경감사(咸鏡監司)한준겸(韓浚謙)이 휘하의 속오군병(束伍軍兵)을 훈련시킨다며 교사대 한두 명을 데리고 갈 것을 청하였다. 하지만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고 더구나 『속대전』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중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례
以別試射居首宗室文官武科堂上 未出身訓鍊都監別武士射手砲手殺手敎師隊 各熟馬一匹 其下賞賜有差 出身居首 六品遷轉(『선조실록』 38년 5월 19일)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金鍾洙, 『朝鮮後期 中央軍制硏究』, 혜안, 2003.
- 車文燮, 『朝鮮時代軍制硏究』, 檀國大學校出版部,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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