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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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나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을 이르는 말.

개설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논어』 「술이」 편의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子不語怪力亂神]"는 구절에서 연유한 말이다. ‘괴(怪)’는 상식을 벗어난 이상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괴이(怪異)·괴기(怪奇)·요괴(妖怪) 등과 같은 의미이다. ‘역(力)’은 용력(勇力)으로, 믿을 수 없는 힘이나 폭력을 말한다. ‘난(亂)’은 패란(悖亂)이나 반란으로, 신하가 왕을 해치고 아들이 아버지를 해치는 것과 같이 질서를 파괴하거나 문란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신(神)’은 귀신으로,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일을 가리킨다. 공자는 이런 네 가지 현상이 사람을 교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내용 및 특징

괴력난신은 공자 이후 선비의 행동을 규제하는 중요한 지표로 기능하였는데, 주자(朱子)의 주석을 통해 구체적인 구속력을 갖게 되었다. 주자는 『논어』의 괴력난신에 주를 달아, "괴이와 용력과 패란은 바른 이치가 아니기에 성인이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귀신은 조화의 자취로 비록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치를 궁구함이 지극하지 않고는 쉽사리 밝힐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또한 가벼이 사람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괴력난신의 대척점에 떳떳한 일[常]과 올바른 덕[德], 다스려짐[治]과 인간의 일[人]을 둠으로써 선비의 바른 길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1429년(세종 11)에 세종은 경연 자리에서 신하들과 괴력난신에 대해 자세히 논하였다(『세종실록』 11년 1월 21일). 이때 세종은 『서경』 「우공(禹貢)」 편에 나오는 "새와 쥐가 한 보금자리에 산다[鳥鼠同穴]"는 말을 끌어와 괴력난신에 견주면서, 상도에 벗어난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이 선비 본연의 모습임을 강조하였다.

변천

인간의 상식과 합리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일을 뜻하는 괴력난신은 이후 소설에 대한 유학자들의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부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주어, 소설무용론과 소설배격론을 탄생시켰다. 유교에 근본을 둔 문인들은 대체로 문학의 윤리적인 기능을 강조했다. 그런데 괴력난신을 주요 제재로 한 소설은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황·이식·이익·홍봉한·홍대용·이덕무·정약용 등 여러 문인들이 소설무용론 또는 소설배격론에 동조하였다.

그뿐 아니라 정조는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명목으로 문체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시행하였는데, 이상황과 김조순 등이 예문관에서 숙직하면서 당송(唐宋) 시대의 각종 소설과 청나라 초기의 소설인 『평산냉연(平山冷燕)』을 보다가 발각된 일이 계기가 되었다(『정조실록』 16년 10월 24일) (『정조실록』 16년 11월 3일). 이 사건의 기저에도 소설무용론과 마찬가지로 괴력난신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참고문헌

  • 『논어(論語)』 「술이(述而)」
  • 이병주 엮음, 『한국의 漢文學』, 민음사, 1991.
  • 김광순, 「조선조 유학자의 소설관」, 『고소설연구』1, 1995.
  • 변병선, 「조선후기의 소설관」, 『어문학보』5, 1981.
  • 이문규, 「李德懋의 소설배격론 연구」, 『국어교육』105, 2001.
  • 최운식, 「朝鮮 時代의 小說觀」, 『한국어문교육』3,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