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문기(官署文記)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관의 공증을 거친 문기(文記).

개설

관서문기(官署文記)는 조선시대 문서 양식의 형식 요건에 관한 분류의 한 가지로 관의 공증을 거친 문기를 말한다. 관의 예사(禮斜)를 거쳤다 하여 관사문기(官斜文記)라고도 칭한다. 민간에서 작성하는 문기 중 관의 공증을 거치지 않은 백문문기(白文文記)와 비교하여 사용될 때가 많다. 주로 분재(分財)나 재산의 매매, 계후 등에 관서문기를 필요로 하였다.

내용 및 특징

관서문기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이나 법전의 규정은 상속문기와 관련하여 많이 등장한다. 『경국대전』「형전」 ‘사천조(私賤條)’에는 “부모·조부모·외조부모, 처의 부모, 부(夫)와 처첩 및 동생(同生) 등이 서로 모여 합의하여 나눠 갖는 경우 외에는 관서문기를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항에 재산을 물려받으면 1년 안에 관에 신고하여 입안(立案)을 받도록 한 것을 보면, 관서의 요건은 입안을 발급받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전하는 재산상속 문서 중 관서문기는 매우 드물다. 조선전기에 작성된 몇 건의 별급문기만 입안점련문기(立案粘蓮文記)의 형태로 존재하며, 대부분의 분재문기는 입안 절차를 거치지 않은 단독의 백문문기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분재, 즉 재산 분할이 법전에 규정한 백문문기의 사용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분재자와 수취자의 관계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족친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우는 별급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전기에 입안을 받은 분재기가 대부분 별급문기인 것이 이를 입증한다. 별급문기는 특별한 사유로 재산을 족친이 아닌 다른 이이게 증여할 때 작성하였다. 특히 재산권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 재주(財主)가 수양자·시양자 등에게 분재한 경우 관서문기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현전하는 고문서 중 관서문기 형태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조선전기 노비 매매 사급 입안문기이다. 노비를 매매한 후 입안 요청 소지, 매매문기, 매주(賣主)와 증인·필집의 초사를 관에 올리면 관에서 매매 사실을 공증하는 입안을 첨부하여 소지를 올린 당사자에게 돌려주었다. 노비 매매 사실을 관으로부터 공증받음으로써 소유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한 가문의 대(代)를 잇기 위해 입후(入后)를 할 때 역시 관서문기가 사용되었다. 즉 입후 사유와 입후하려는 대상, 친부(親父) 및 양부(養父)가 동의하였음을 문서로 증빙하고 이에 대해 예사(禮斜)를 받도록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재산의 상속·매매, 그리고 가계 계승을 위한 입후 등의 절차에 관의 공증을 필수 요건으로 하고 관서문기를 작성하도록 한 경우가 많았다.

변천

관서문기의 사용은 『경국대전』 체제가 성립되는 조선전기에 활발하였으나, 조선후기로 오면서 점차 문서의 작성이 약식화하여 관의 공증을 생략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예컨대, 조선전기의 별급문기에서 일부 관서문기를 채택하였으나 조선후기에 분재기가 관서문기로 작성된 예는 거의 없다. 즉 법정 상속분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재주의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가 인정되었다. 노비 매매 역시 조선후기로 오면서 관의 공증을 거의 거치지 않고 백문문기만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계 계승을 위한 입후 역시 관에 신고하고 관으로부터 계후 입안을 받던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가문 내에서 합의한 내용을 문서로 남긴 입후문기가 작성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영호, 『조선전기 상속법제-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중심으로-』, 세창출판사, 200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