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서(供造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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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 조선초기에 왕이 사용하는 기물을 관장하던 관서.

개설

고려 목종 때 왕이 사용하는 기물을 관장하기 위해 중상서(中尙署)로 설치되었고, 1310년(고려 충선왕 2) 공조서로 개칭되면서 등장하였다. 조선 건국 후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할 때 공조서가 그대로 계승되어 죽물(竹物)과 관련된 일을 관장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 목종 때 왕이 사용하는 기물을 관장하기 위해 중상서가 설치되고, 문종 때에 이르러 제대로 직제가 갖추어졌다. 1310년에 공조서로 개칭된 이후 몇 차례 명칭 변경이 있었지만, 조선 건국 후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하면서 공조서로 확정되었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조직 및 역할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정6품의 영(令) 1명과 정8품의 승(丞) 2명으로 구성되었고, 이속(吏屬)으로는 사(史) 6명, 기관(記官) 2명, 산사(筭士) 1명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종6품의 영 1명과 종7품의 승 2명으로 조직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죽물과 관련된 일을 관장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기능에 약간 변화가 있었던 듯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변천

1405년(태종 5) 육조(六曹)의 속아문(屬衙門)을 정하면서 공조(工曹)에 속하게 되었고, 1410년에는 공조서가 혁파되어 공조에 병합되었다(『태종실록』 10년 7월 6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와 통치체계』, 계명대학교출판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