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궁(景祐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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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綏嬪朴氏)의 제사궁(祭祀宮).

개설

수빈박씨의 신위를 모시고 제향을 드리기 위한 사우(祠宇)가 있는 제사궁이다(『고종실록』 38년 9월 12일). 수빈박씨의 신위는 처음 창경궁 내 전각에 봉안되었으나, 4년 후 새로운 궁을 지어 경우궁(景祐宮)이라 이름 짓고 이곳에 신위를 모셨다. 갑신정변 이후 경우궁은 인왕동으로 옮겨졌고(『고종실록』 22년 12월 26일), 통감부 시기 국가 제사의 정비라는 미명하에 육상궁으로 통합되어(『순종실록』 1년 7월 23일) 현재 수빈박씨의 위패는 종로구 궁정동 칠궁 내에 있다.

위치 및 용도

조선시대 한양 지도를 보면, 1884년(고종 21)을 기점으로 경우궁이 각기 다른 지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처음 건립되었을 당시 북부 관광방 계동에 건립되었고, 1884년에는 인왕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변천 및 현황

1820년(순조 20)에 수빈이 졸서(卒逝)하자 이듬해 그 신위를 창경궁 내 전각에 봉안하고 봉안된 곳을 현사궁(顯思宮)이라 불렀다. 그러나 왕이 된 순조의 사친 사묘를 궁에 두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하여 1824년(순조 24) 신위를 옮겨 모셨다. 북부 광화방(廣化坊)에 있던 용호영(龍虎營) 터에 별묘(別廟)를 영건하고 그곳에 신위를 옮겨 모셨으며, 경우궁이라는 궁호를 내렸다(『순조실록』 24년 12월 1일).

1870년(고종 7) 인빈김씨(仁嬪金氏), 영빈김씨(寧嬪金氏), 화빈윤씨(和嬪尹氏)의 사우를 이곳에 합봉(合奉)했다(『고종실록』 7년 1월 2일). 1884년(고종 21) 10월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開化黨)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고종이 경우궁으로 이어(移御)하기도 하였다(『고종실록』 21년 10월 17일). 그 후 1885년(고종 22)에 인왕동(현 옥인동)으로 옮겨지었다.

1907년(융희 1)에 궁내부령으로 내수사와 궁장토의 도장(導掌)을 폐하면서 경우궁에 소속된 토지도 제실 재산 관리국으로 넘어갔다. 1908년(융희 2)에는 위패를 육상궁으로 옮겨 봉안하고 1년에 2번만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현재는 궁정동 칠궁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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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顯思宮別廟營建都監儀軌)』에 따르면, 경우궁 각 공간과 그 규모는 다음과 같다. 정당 6칸, 이안청 4칸, 중배설청 4칸, 배위청 3칸, 내신문 3칸, 상직청 2칸, 외신문 3칸, 어재실 13칸, 향대청 4칸 반, 동궁재실 6칸, 상실 40칸, 재실남중문 1칸, 서중문 1칸, 행각 8칸, 조과청 13칸, 전사청 6칸, 제기고 4칸, 수복방 4칸, 내관입접처 4칸, 상직방 5칸, 중리방 5칸 반, 헌관방 18칸, 외삼문 3칸, 동행각 4칸, 서행각 42칸, 소주방 이하 입접처 217칸, 외담 280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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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顯思宮別廟營建都監儀軌)』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