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봉수(開花山烽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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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제5봉수로에 속한 내지봉수(內地烽燧)로, 오늘날 서울특별시 강서구개화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조선시대 전라도 순천의 방답진(防踏鎭)에서 처음 봉화가 오르면 전라도와 충청도 및 경기도에 있는 여러 봉수를 거쳐 김포냉정산(冷井山)과 개화산봉수를 지나 서쪽의 목멱산(木覓山)에 자리한 제5봉수에 연결되었다.

설립 경위 및 기능

세종 초기 남산에 봉화 다섯 곳을 두었는데, 개화산봉수는 그중 제5봉화와 대응하는 봉수로 설립되었다(『세종실록』 5년 2월 26일). 개화산봉수의 기능과 관련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영조대의 기사가 자세하다. 당시 목멱산봉수에서 아직 봉화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광주(廣州) 천림산봉수(天臨山)과 양천(陽川) 개화산봉수에서 멋대로 봉화를 올리고는, 날씨가 맑아서 다른 봉수에서 서로 전해 받았다고 거짓으로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로 인해 천림산과 개화산의 봉수군(烽燧軍)들은 벌을 받았다(『영조실록』 5년 6월 16일). 이처럼 봉수는 서로 상응하는 봉수로부터 신호를 전달받아 봉수를 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봉수군을 처벌함으로써 신호 체계의 위계를 유지하였다.

변천

세종 때 설치된 개화산봉수는 경기도 양천현에 속하여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운용되었다. 그러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을 계기로 봉수 체계가 철폐되어 유명무실해졌고 이듬해 군부의 주청(奏請)에 의해 전국의 봉대와 봉수군이 폐지될 때 함께 철폐되었다(『고종실록』 32년 윤5월 9일).

지금은 봉수제가 폐지된 뒤 개화산봉수 터에 지름 약 10m의 타원형 유지(遺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봉수터의 삼각점이 설치되었던 모서리는 일부 구간이 훼손되어 있다. 삼각점이 있는 봉수의 북쪽 철조망 밖에는 강서구청에서 개화산봉수의 표석을 세웠다. P00012503 01.PNG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