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江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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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특히 한강과 예성강 주변에 설치되어 미곡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

내용

해운(海運)을 통하여 한양으로 운반된 세곡은 서강 가에 위치한 광흥강창(廣興江倉)과 풍저강창(豊儲江倉), 수운(水運)을 통하여 한강 상류로부터 운반된 세곡은 용산강 가에 위치한 군자강감(軍資江監)과 풍저강창에 수납되었다. 그러다가 1466년(세조 12)에는 광흥본창(廣興本倉)을 광흥강창(江倉)에 합치면서 창고를 늘려 짓고는 당상관(堂上官)의 녹봉(祿俸)을 모두 강창(江倉)에서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고, 1470년(성종 1)에는 풍저강창을 혁파하여 광흥창에 합쳤다.

그런데 한강 가에 위치한 광흥강창·풍저강차·군자강감만 강창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조선건국 이후 조운제도(漕運制度)가 정비되면서 충주 덕흥창(德興倉)의 옛터에 설치된 경원창(慶原倉)을 세조대에는 가흥창(可興倉)으로 확장하여 경상도 북부 지방과 남한강 유역의 충청도 지방 세곡(稅穀)을 수납하고 운송하도록 하였고, 원주의 흥원창(興原倉)도 기능을 회복시켜 강원도 남부 지방의 세곡을 보관하였으며, 춘천에 소양강창(昭陽江倉)을 설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성강 가에 위치한 강음에 조읍포창(助邑浦倉)을, 배천[白川]에 금곡포창(金谷浦倉)을 설치하여 황해도 지방의 세곡을 보관하였다. 이러한 지방의 강창들은 16세기 이후 가흥창을 제외하고는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다가 17세기 이후 철폐되었다.

용례

龍山江在崇禮門外西南九里 收貯漕運之所 有軍資江監豐儲江倉 西江在西小門外十一里 亦收貯遭運之所 有廣興江倉豐儲江倉 [『세종실록』 지리지 경도 한성부]

참고문헌

  • 이혜옥, 「조선시대의 풍저창」, 『난곡이은순교수정년기념사학논문집』, 2000.
  • 이명화, 「조선초기 군자정책과 운영실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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