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자 수장 태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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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왕자 수장 태실(成宗王子 壽長 胎室)
성종왕자 수장 태실 추정지 공중 전경
식별자 PC027
분류 왕자공주 태실
한글명 성종왕자 수장 태실
한자명 成宗王子 壽長 胎室
영문명 Placenta Chamber of Prince Sujang
피안자 명칭 수장(壽長)
피안자 이칭 이봉(李㦀)·봉안군(鳳安君)·정민공(貞愍公) 추정이칭
피안자 부 성종(成宗)
피안자 모 귀인 정씨(貴人鄭氏)
피안자 생년월일 1482.02.23
피안자 몰년월일 1505
안태 연월일 1482.06.23
안태지 기록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안태지 좌표(위도) 37°70'69.51"N
안태지 좌표(경도) 127°16'05.76"E
안태지 주소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65-54 추정
문화재 지정여부 미지정
이안 연월일 1929.05 추정
이안지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삼릉 내
이안지 좌표(위도) 37°66'45.61"N
이안지 좌표(경도) 126°86'06.29"E
지문 皇明成化十八年,二月二十三日辰時生,王子壽長胎,成化十八年,六月二十三日,巳時藏
지문 찬자 조선 예조(禮曹)
지문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태항아리 왕자 수장 태지석 및 태항아리 일습
태항아리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내용[편집]

왕자 수장은 1482년(성종 13)에 태어났는데 이 때 태어난 왕자는 봉안군과 견성군이 있다.

견성군은 태지에 5월 5일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왕자 수장은 봉안군일 가능성이 크다. 혹은 기록되지 않은 제3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봉안군이라 가정하면 이는 성종과 귀인 정씨의 소생으로 안양군과는 동복형제가 된다.

태실의 위치는 정확하게 비정하기는 힘들지만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펴낸 《조선의 태실》의 내용과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한 바, 제3062 부대 내의 대공초소로 보인다. 추후 관련한 사료에 근거한 위치 고증이 필요하다.

상세[편집]

성종 왕자 수장(壽長)의 태실은 이왕직에 의해 전국의 태실이 서삼릉으로 이안되는 과정에서 그 정확한 위치를 잃어버렸다.

다만 태실이 소재했던 내각리의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서삼릉으로 이안되면서 훼손된 두 태봉을 언급하고 있어 둘 중 하나가 수장의 태실이 있었음을 추정할 따름이다.[1]

『왕자수장태지석』을 통해 그 출생년도가 1482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2] 성종의 자녀 가운데 1482년에 출생한 왕자는 숙용 정씨(淑容鄭氏) 소생의 봉안군(鳳安君)과 숙의 홍씨(淑儀洪氏) 소생의 견성군(甄城君)이 확인된다.

숙용 정씨는 2남 1녀를 낳은 것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3][4] 안양군(安陽君), 봉안군, 정혜옹주(靜惠翁主)가 그 소생이다.

봉안군은 『선릉왕자십사파합보(宣陵王子十四派合譜)』에 ‘成化壬寅九月二十九日生’으로 기록되어있다.[5] 『왕자수장태지석』과 그 출생월일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봉안군의 출생월일을 기록한 『선릉왕자십사파합보』의 오기(誤記)이거나 수장과 봉안군이 별개의 인물일 가능성도 상정할 필요가 있다.[6] 만약 『선릉왕자십사파합보』의 오기가 확실하다면 수장은 봉안군과 동일한 인물로 비정할 수 있다.[7]

숙용 홍씨는 7남 3녀를 낳은 것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8] 혜숙옹주(惠淑翁主), 완원군(完原君), 회산군(檜山君), 견성군, 정순옹주(靜順翁主), 익양군(益陽君), 경명군(景明君), 운천군(雲川君), 양원군(楊原君), 정숙옹주(靜淑翁主)가 그 소생이다.

견성군은 아명이 수정(壽禎)으로 전국의 태실이 이왕직에 의해 서삼릉으로 이안되는 과정에서 그의 태실 또한 함께 옮겨졌다. 또 태지석을 통해 그의 출생년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9] 견성군은 수장과 별개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수장 태실의 파빌리온은 태봉으로 추정되는 두 태봉의 중간 지점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65-54에서 촬영하였으며 향후 조사를 위한 참조자료로서 활용하고자 한다.

관련 기록[편집]

조선의 태실[편집]

『조선의 태실』2권, 「28.壽長 (추정 鳳安君)」[편집]

Quote-left blue.png 서삼릉의 왕자 수장의 태실은 그 태비에 의하면 이전된 곳이 연산군의 왕녀 영수(靈壽)와 마찬가지로 양주 진접면이다. 지금 진접면 내각리애는 여러 노인들의 증언대로 일제시대 서울로 태가 옮겨진 뒤 폐허로 남은 왕실의 태를 묻었던 두 태봉이 있다.

그 하나는 순강원(順康園)의 좌강(左岡)이고, 다른 하나는 제3062부대 내의 배나무골에 자라잡고 있다. 이 두 태봉 가운데 하나가 바로 왕자 수장의 태실이 있던 곳이다. 이 두 태봉에는 서울로 태를 모셔간 이후에도 한 동안은 태비가 남아 있었다. 두 태비 가운데 순강원 좌강의 태비는 배나무골의 태비와 달리 갓 갓이란 비두(碑頭)를 가리킴 이 있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매몰되어 자취가 묘연하다. 결국 수장 왕자의 태(胎)가 내각리 어느 태봉에 장테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성종대왕 왕자 가운데 1482년생은 봉안군 그리고 견성군이 있다. 이 가운데 견성군은 태지에서 보듯 1482년 5월 5일생이다. 따라서 수장 왕자는 봉안군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성종대왕 왕자들의 족보인 선릉왕자 14파합보소(宣陵王子十四派合譜所) 간행 『전주이씨족보(全州李氏族譜(1930년)』에는 봉안군의 탄생이 1482년 9월 29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수장은 봉안군일 가능성이 더욱 높게 된다. 하지만 수장은 봉안군도 아닌 일찍 세상을 뜬 왕자일 가능성도 있다.

Quote-right blue.png
출처: 『조선의 태실』2권, 「28.壽長 (추정 鳳安君)]


계보도 지식 관계망[편집]


스틸샷 갤러리[편집]

파노라마[편집]

갤러리[편집]

전자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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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편집]

학술적 성격의 저작물[편집]

1.고문헌

  • 이왕직(李王職) 예식과(禮式課), 『태봉(胎封)』, 1928,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2.단행본

  • 국립문화재연구소, 『서삼릉태실』, 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 심현용, 『한국 태실 연구』, 경인문화사, 2016.
  • 윤진영, 김호, 이귀영, 홍대한, 김문식 공저, 『조선왕실의 태실 의궤와 장태 문화』,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조선의 태실 2』, 전주이씨대동종약원, 1999.

대중적 성격의 콘텐츠[편집]

주석[편집]

  1. 두 태봉의 소재지에 대해 한 장소는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묘소 순강원(順康園)의 좌강(左岡)이고 다른 하나는 제3062부대 내의 배나무골에 자리 잡고 있다는 증언이다. 이 두 태봉 가운데 하나가 바로 왕자 수장의 태실이 있던 곳으로 각각의 주소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50-2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산34-1로 추정된다. 이주환, 이진훈, 조원교 공저, 『朝鮮의 胎室 Ⅱ』, 전주이씨대동종약원, 1999, 165쪽.
  2. 『王子壽長胎誌石』, 1482, 皇明成化十八年二月二十三日辰時生 王子壽長胎 成化十八年六月二十三日巳時藏.
  3. 『成宗實錄』 14년(1483) 6월 12일 계유, 淑容鄭氏生二男一女.
  4. 위의 책, 誌文, 淑容鄭氏生二男一女 曰㤚 安陽君 娶知事具壽永女 曰㦀 鳳安君 娶贈左贊成趙紀女 女幼.
  5. 『宣陵王子十四派合譜』, 1912, 鳳安君.
  6. 이주환, 이진훈, 조원교 공저, 위의 책(1999), 같은 쪽.
  7. 김만중, 「강릉 모전리 貞福胎室碑와 성종의 子女에 대하여」, 『博物館誌』, 제7호, 강원대학교 박물관, 2000, 141쪽.
  8. 『成宗實錄』, 誌文, 淑容 洪氏生七男三女 曰惠淑翁主 下嫁高原尉 申沆 曰𢢝 完原君 娶贈左贊成崔河臨女 曰恬 檜山君 娶奉事安邦彦女 曰惇 甄城君 娶參奉申友灝女 餘幼.
  9. 『王子壽禎胎誌石』, 1486, 皇明成化十八年五月初五日寅時生 王子壽禎胎成化二十二年九月初一日卯時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