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1897년(광무 1) 양력 10월 12일 환구단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 후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황실가족을 책봉하였다. 1900년(광무 4) 양력 8월 17일 덕수궁_중화전에서 고종의 둘째 황자 이강(李堈, 1877~1955)과 셋째 황자 이은(李垠, 1897~1970)을 왕으로 책봉하는 의식을 행하였다. 중국에서 황제의 아들이나 형제를 친왕(親王)으로 책봉한 전례를 따른 것이다. 고종은 두 명의 황자를 친왕으로 책봉하기에 앞서 고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를 1900년(광무 4) 양력 8월 3일에 순빈(純嬪)으로 책봉하였다. 귀인 엄씨는 아관파천을 성공시켰으며, 셋째 황자 이은의 생모로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 둘째 황자는 귀인 장씨 소생으로 1891년(고종 28)에 의화군(義和君)으로 봉작되었으며, 대한제국 선포 이후 24세에 의왕으로 책봉되었다. 당시 의화군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책봉의식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의왕에게 전달할 금책과 금인은 장례원(掌禮院)에 보관해 두었다가 1906년(광무 10)에 의왕에게 전달되었다. 셋째 황자 이은은 4세의 어린 나이로 영왕에 책봉되었다. 쌍동계에 공정책을 쓰고 칠장복을 입은 영왕은 자내(自內)에서 금책과 금인을 전달받는 의식을 행하였다. 영왕의 의장(儀仗)을 새로 만들고, 금인과 금책을 채여와 요여에 싣고 가는 행렬을 그린 반차도가 전한다. 사실상 의왕과 영왕의 책봉의식은 후궁 엄씨의 위상에 맞게 그의 소생을 영왕으로 책봉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왕은 1907년(광무 11) 9월 7일 순종황제의 후사인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의왕과 영왕의 책봉의식은 《의왕영왕책봉의궤》로 남겨졌다. 총 10건의 의궤가 제작되었다. 규장각본은 황제용으로 노란비단을 표지로 사용하였고, 시강원본은 황태자용으로 붉은 비단을 사용하였으며, 의친왕궁(義親王宮)과 영친왕궁(英親王宮)에도 각각 분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