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재궁여外梓宮轝는 국장國葬에 사용하는 외재궁外梓宮을 능으로 옮길 때 사용하는 가마이다. 1758년(영조 34)에 편찬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도설圖說’조에 외재궁여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국조상례보편』은 1752년(영조 28)본과 1758년 본 두 종류가 있다. 1752년 본 『국조상례보편』는 기존의 전례서에서 변화되거나 추가된 것을 중심으로 기록한 반면 1758년 본은 변하지 않은 내용도 포함시킨 국장에 관한 종합적인 전례서이다. 그리고 1752년의 것과 달리 도설만을 별도의 책으로 묶어 이용하는 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순의 그림은 『국조오례서례』 등 이전 전례서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1758년 본 『국조상례보편』에 처음으로 나온다.
1758년(영조 34)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도설圖說’조에 있는 외재궁여의 그림은 외재궁여의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마 4면의 장막을 생략하였다. 외재궁여는 재궁을 들어 올리는 지지대 부분의 하단부와 재궁을 가리는 몸체, 그리고 덮개의 지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단부는 긴 강목杠木 2개와 가로 강목 17개로 이루어져 있다. 긴 강목은 길이가 42척 9촌인데 가운데의 두께가 5촌 6푼이고 끝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모양이다. 긴 강목 아래 등철鐙鐵을 대어 길이 10척짜리 강목 17개를 설치한다. 다시 강목 사이에 횡목 4개를 설치하고 좌판座板을 얹으면 가마의 바닥이 된다. 그리고 좌판 주변의 강목 위에 지대방목地臺防木을 설치하고 좌우의 방목 가운데에 척주隻柱를 세운다. 또한 지대방목의 모퉁이에 기둥을 설치하고 차목叉木으로 고정시킨다. 그림에서 X자형으로 가로지른 나무가 차목이다. 기둥 위에는 전후와 좌우에 배방목排方木을 설치하고 지붕을 얹는다. 지붕은 가운데가 활처럼 솟아난 궁륭穹窿의 형태를 취하였다. 지붕의 겉은 죽망竹網을 깔고 아청색鴉靑色의 면포를 씌웠다. 그리고 지붕 전후의 가운데에 독룡禿龍의 머리를, 네 모서리에는 봉두鳳頭를 설치하였다. 봉두의 입에는 석환을 물로 홍사紅絲를 늘어뜨렸다. 그림에서 생략된 가마 4면의 장막은 청면포靑綿布를 사용하여 만들었고, 위쪽에 홍면포紅綿布로 만든 대를 달았다. 외재궁여는 다른 가마와 달리 가마 집 앞 뒤로 촉롱기燭籠機를 설치하였는데 여기에 홍저紅苧로 된 촉롱을 각각 1쌍씩 달았다.
외재궁은 장생전에서 만들어 발인發靷 전에 능소에 옮겨 재궁梓宮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현궁에 내린다. 조선 전기에는 외재궁을 옮길 때 바퀴가 있는 수레를 이용하였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인조의 국장 때 오랜 비로 인하여 도로가 험하여지자 수레 대신에 가마를 사용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