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1929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50여일간 경복궁에서 개최된 박람회.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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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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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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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조선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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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朝鮮博覽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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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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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
시정20주년기념조선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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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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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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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일제강점기 1929년 9월 12일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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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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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단체 |
경성협찬회,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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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
경복궁, 광화문, 근정전, 경성역, 남대문통,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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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물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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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유물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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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Spatial Data
Spatial Information Nodes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
경복궁 |
서울특별시 종로구 |
경복궁 |
景福宮 |
37.579617 |
126.977041 |
47.22 m(154.93 ft) |
|
광화문 |
서울특별시_종로구 |
광화문 |
光化門 |
37.5759369 |
126.9768157 |
38.49 m (126.28 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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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Relations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lunarDate |
solarDate |
indexDate |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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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박람회 |
1929 |
조선박람회 |
朝鮮博覽會 |
|
1929년 9월 12일~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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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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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영, |
「조선박람회와 일제의 문화적 지배」 |
웅진사학회, 『역사와 역사교육』3·4,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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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영, |
『한국근대의 박람회․박물관』, |
서경문화사,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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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우 |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 |
하늘재,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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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정 |
「일제시기 조선박람회 연구-조선인의 근대적 시각체험을 중심으로-」, |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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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직 |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 |
현실문화연구,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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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봉 |
「식민지권력의 두 가지 얼굴-조선박람회(1929년)와 대만박람회(1935년)의 비교」 |
『역사와 경계』51,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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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과시· 선전· 계몽· 소비의 체험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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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각매체와 조선미술전람회 연구」, |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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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규, |
『한국의 근대박람회』 |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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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박람회의 개최와 경복궁의 위상변동*」 |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서울학연구 』55,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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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 |
「일제시기 조선박람회(1929년) 연구-조선인의 근대적시각체험을 중심으로 |
한양대 석사학위논문,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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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
『1929년, 조선을 박람하다. 조선박람회 기념사진첩』, |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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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복규, |
「조선박람회 전시관 양식에 보이는 제국과 식민지, 수도와 지방」.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人文論叢』75,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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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봉 |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 메가 이벤트의 감성공학 』 |
산지니,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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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리 |
「그림엽서 봉투도안으로 보는 관광의 상품성과 경성 : 1920~1930년대 경성관광 그림엽서를 중심으로」 |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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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토드 A. 지음, 김백영 외 3인 옮김 |
『서울, 권력 도시』, |
산처럼,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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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12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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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조선박람회의 전시관은 대부분이 새로 지은 것이었으며, 식장, 연회장, 영빈관, 조사장, 창고 등만 기존 건물을 약간씩 수리하여 이용하였다.
-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박람회 관련 회칙을 보면, 전시물은 총 22부 273개로 분류하여 '조선물산공진회'보다 종류가 2배 가까이 늘었다.
- 총 출품점 수는 2만 1428점에 달했다.
- 조선박람회장 배치도를 보면 경복궁 전체 부지에서 총독부 신청사와 그 주변 정원 일대를 제외한 2/3 가량이 부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박람회 사무위원들이 기존 총독부 내의 부서에서 일하던 관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또한 당시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근무하던 박길룡이 박람회장 중문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
- 매일신보 1927년 5월 29일자, 조선박람회 취지서
- 동아일보 1927년 2월 25일자, 조선박람회
- 동아일보 1927년 2월 26일 자, 공업자대회
- 조선박람회 개장시간 [2]
조선박람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차례의 개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 『조선일보』1929년6월25일자「共産黨 滿洲部 密使잠입설」; 1929년8월5자「조선박람회 압두고 고려공산당密議
- 경성일보1921년 5월 6일자; 1922년 3월 12일자;1922년 4월 29일자
조선총독부 관료들은 1921년부터 식민통치 15주년 기념, 총독부 신청사개관을 축하할 목적으로 박람회 개최를 논의. 1926년 또다른 대규모의 국가적 박람회의 개최를 계획하였으나 예산문제로 인해 1929년으로 연기.[4]
- 동아일보, 1929년 10월 3일자
- 동아일보, 1929년 5월 18일자
- 동아일보, 1929년 6월 1일자
- 동아일보, 1929년 7월 2일자
- 동아일보, 1929년 9월 15일자
- 동아일보, 1929년 9월 22일
- 경무국 보안과 1929년 6월
- 경성일보, 1929년 11월 3일,
References
- ↑ 이각규, 『한국의 근대박람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367쪽
- ↑ 이정욱, "조선총독부 지역지배의 구조: 조선박람회(1929)와 전라북도." 인문사회 21 7.4 (2016): 1059-1076, 1063쪽
- ↑ 이정욱, "조선총독부 지역지배의 구조: 조선박람회(1929)와 전라북도." 인문사회 21 7.4 (2016): 1059-1076, 1063쪽
- ↑ 토드 A헨리. 지음, 김백영 외 3인 옮김, 『서울, 권력 도시』, 산처럼, 2020, 213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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