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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기본정보 |제목=조선 의학의 표준, <동의보감> |집필자=황인희 |인물/기관/단체= 허준(許浚), 선조, 정작|정작(鄭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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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東醫寶鑑)>은 1610년에 완성하여 1613년 목활자로 인쇄된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이다. 이 책의 대표 저자는 허준(許浚)이라는 의원이다. 책 제목의 ‘동의’는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 전통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쪽의 의학 전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조선의 의학 전통을 말한다. ‘보감’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모범이 될 만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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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東醫寶鑑)>은 1610년에 완성하여 1613년 목활자로 인쇄된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이다. 이 책의 대표 저자는 허준(許浚)이라는 의원이다. 책 제목의 ‘동의’는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 전통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쪽의 의학 전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조선의 의학 전통을 말한다. ‘보감’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모범이 될 만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의보감>의 편찬 사업은 선조의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의주로 피란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전쟁 피해의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쟁의 참화를 입었지만 특히 민간에서 이용되던 의학 서적들이 거의 다 없어진 것은 치명적인 피해였다. 이에 선조는 1596년 의원 허준에게 새 의학 서적의 편찬을 지시했다. 처음에는 허준을 비롯하여 정작(鄭碏), 이명원(李命源), 양예수(楊禮壽), 김응탁(金應鐸), 정예남(鄭禮男) 등 여섯 명이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끝내는 허준이 혼자 집필하여 14년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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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편찬 사업은 선조의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의주로 피란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전쟁 피해의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쟁의 참화를 입었지만 특히 민간에서 이용되던 의학 서적들이 거의 다 없어진 것은 치명적인 피해였다. 이에 선조는 1596년 의원 허준에게 새 의학 서적의 편찬을 지시했다. 처음에는 허준을 비롯하여 정작(鄭碏), 이명원(李命源), 양예수(楊禮壽), 김응탁(金應鐸), 정예남(鄭禮男) 등 여섯 명이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끝내는 허준이 혼자 집필하여 14년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span style="color:red">[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731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동의보감" 기사와 동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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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731 동의보감]" 기사와 동일</span>
 
<span style="background-color:#d9ffb3"> 처음 <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이 시작될 때 집필진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span style="background-color:#d9ffb3"> 처음 <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이 시작될 때 집필진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이고 병이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긴다”이다. 병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몸을 잘 지키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당연히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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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이고 병이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긴다”이다. 병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몸을 잘 지키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당연히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무수히 많은 처방의 요점만을 간추린다”이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의학책이 매우 많았는데 그 책들에 쓰인 내용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 “무수히 많은 처방의 요점만을 간추린다”이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의학책이 매우 많았는데 그 책들에 쓰인 내용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산 약을 널리, 쉽게 쓸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은 조선 사람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이다.</span>
 
셋째, “국산 약을 널리, 쉽게 쓸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은 조선 사람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이다.</span>
 
   
 
   
  
이런 원칙에 따라 목차가 겨우 만들어졌던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이 전쟁 때문에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려 <동의보감> 편찬 작업이 중단되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1601년 선조는 허준을 불러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금의 의서 500여 권을 내주면서 의학 책의 편찬을 독려했다. 이 때 허준에게 혼자서라도 <동의보감>을 완성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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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칙에 따라 목차가 겨우 만들어졌던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이 전쟁 때문에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려 <동의보감> 편찬 작업이 중단되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1601년 선조는 허준을 불러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금의 의서 500여 권을 내주면서 의학 책의 편찬을 독려했다. 이 때 허준에게 혼자서라도 <동의보감>을 완성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공무(公務)로 바빴던 허준은 선조가 세상을 떠난 1608년까지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허준은 선조의 죽음에 대한 문책으로 의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동의보감> 집필에 전념했다. 1609년 말 귀양에서 풀려난 허준은 이듬해 8월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광해군에 바쳤다. 하지만 전쟁 직후라 출판할 사정이 되지 않았고 3년이 지난 1613년에야 인쇄본이 출판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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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무(公務)로 바빴던 허준은 선조가 세상을 떠난 1608년까지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허준은 선조의 죽음에 대한 문책으로 의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동의보감> 집필에 전념했다. 1609년 말 귀양에서 풀려난 허준은 이듬해 8월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광해군에 바쳤다. 하지만 전쟁 직후라 출판할 사정이 되지 않았고 3년이 지난 1613년에야 인쇄본이 출판될 수 있었다.
  
<동의보감>은 목차 2권, 의학 내용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鍼灸篇)’ 등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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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은 목차 2권, 의학 내용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鍼灸篇)’ 등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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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경편’에는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을, ‘외형편’에는 신체 외부와 관련된 내용을 실었다. ‘잡병편’에는 신체 관련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병 이론과 구체적인 병 내용이 담겨 있다. ‘탕액편’은 약에 관한 이론과 구체적인 약물에 관한 각종 지식이, ‘침구편’에는 침 · 뜸에 대한 이론과 실재 사용 방법이 실려 있다.
 
  ‘내경편’에는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을, ‘외형편’에는 신체 외부와 관련된 내용을 실었다. ‘잡병편’에는 신체 관련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병 이론과 구체적인 병 내용이 담겨 있다. ‘탕액편’은 약에 관한 이론과 구체적인 약물에 관한 각종 지식이, ‘침구편’에는 침 · 뜸에 대한 이론과 실재 사용 방법이 실려 있다.
  
<span style="color:red">[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731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동의보감" 기사와 동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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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731 동의보감]" 기사와 동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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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치료보다 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추구하는 양생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둘째, 기존 중국과 조선 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였다. 허준은 200여 종에 이르는 중국의 문헌과 조선 의서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경험과 학식을 더해 병의 증상 · 진단 · 예후 · 예방법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셋째, 뛰어난 편집 방식이다. 목차 2권은 색인 구실을 할 정도로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 참고 자료의 인용처를 일일이 밝혀 원 저작을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동의보감>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치료보다 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추구하는 양생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둘째, 기존 중국과 조선 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였다. 허준은 200여 종에 이르는 중국의 문헌과 조선 의서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경험과 학식을 더해 병의 증상 · 진단 · 예후 · 예방법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셋째, 뛰어난 편집 방식이다. 목차 2권은 색인 구실을 할 정도로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 참고 자료의 인용처를 일일이 밝혀 원 저작을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동의보감>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30여 차례, 일본에서 두 차례 출간되었다. 이처럼 국내외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동의보감>은 2009년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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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30여 차례, 일본에서 두 차례 출간되었다. 이처럼 국내외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동의보감>은 2009년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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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관련자료===
 
===출처 및 관련자료===

2017년 7월 28일 (금) 00:35 판

제목 조선 의학의 표준, <동의보감>
집필자 황인희
인물/기관/단체 허준(許浚), 선조, 정작(鄭碏), 이명원(李命源), 양예수(楊禮壽), 김응탁(金應鐸), 정예남(鄭禮男), 광해군
장소/공간 의주
사건 임진왜란, 정유재란
개념용어 목활자, , , 양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원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610년에 완성하여 1613년 목활자로 인쇄된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이다. 이 책의 대표 저자는 허준(許浚)이라는 의원이다. 책 제목의 ‘동의’는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 전통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쪽의 의학 전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조선의 의학 전통을 말한다. ‘보감’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모범이 될 만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의보감>의 편찬 사업은 선조의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의주로 피란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전쟁 피해의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쟁의 참화를 입었지만 특히 민간에서 이용되던 의학 서적들이 거의 다 없어진 것은 치명적인 피해였다. 이에 선조는 1596년 의원 허준에게 새 의학 서적의 편찬을 지시했다. 처음에는 허준을 비롯하여 정작(鄭碏), 이명원(李命源), 양예수(楊禮壽), 김응탁(金應鐸), 정예남(鄭禮男) 등 여섯 명이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끝내는 허준이 혼자 집필하여 14년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동의보감" 기사와 동일 처음 <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이 시작될 때 집필진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이고 병이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긴다”이다. 병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몸을 잘 지키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당연히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무수히 많은 처방의 요점만을 간추린다”이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의학책이 매우 많았는데 그 책들에 쓰인 내용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산 약을 널리, 쉽게 쓸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은 조선 사람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목차가 겨우 만들어졌던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이 전쟁 때문에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려 <동의보감> 편찬 작업이 중단되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1601년 선조는 허준을 불러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금의 의서 500여 권을 내주면서 의학 책의 편찬을 독려했다. 이 때 허준에게 혼자서라도 <동의보감>을 완성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공무(公務)로 바빴던 허준은 선조가 세상을 떠난 1608년까지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허준은 선조의 죽음에 대한 문책으로 의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동의보감> 집필에 전념했다. 1609년 말 귀양에서 풀려난 허준은 이듬해 8월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광해군에 바쳤다. 하지만 전쟁 직후라 출판할 사정이 되지 않았고 3년이 지난 1613년에야 인쇄본이 출판될 수 있었다.

<동의보감>은 목차 2권, 의학 내용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鍼灸篇)’ 등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경편’에는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을, ‘외형편’에는 신체 외부와 관련된 내용을 실었다. ‘잡병편’에는 신체 관련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병 이론과 구체적인 병 내용이 담겨 있다. ‘탕액편’은 약에 관한 이론과 구체적인 약물에 관한 각종 지식이, ‘침구편’에는 침 · 뜸에 대한 이론과 실재 사용 방법이 실려 있다.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동의보감" 기사와 동일 <동의보감>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치료보다 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추구하는 양생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둘째, 기존 중국과 조선 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였다. 허준은 200여 종에 이르는 중국의 문헌과 조선 의서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경험과 학식을 더해 병의 증상 · 진단 · 예후 · 예방법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셋째, 뛰어난 편집 방식이다. 목차 2권은 색인 구실을 할 정도로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 참고 자료의 인용처를 일일이 밝혀 원 저작을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동의보감>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30여 차례, 일본에서 두 차례 출간되었다. 이처럼 국내외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동의보감>은 2009년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및 관련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관련자료

  •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
  • 김두종, 『조선의학사』,김두종, 탐구당, 1966
  • 윤병태, 「동의보감해제」, 『도서관』106, 1966
  • [www.cha.go.kr 문화재청]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이 원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중연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과 동일하여. 새로운 집필로 볼 수 없다. 동의보감의 편찬과정에만 치중되어 있음. 동의보감이 당시 서민들에게 어떻게 확산되고 활용되었는지 유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 도입 서술

- <동의보감> 집필 원칙과 주요 특징을 함께 연관지어 서술하면 좋을 듯, 반복되는 느낌있음 - 허준의 의원으로서의 사명감, 능력 관련 에피소드 첨가했으면.

- 현재 <동의보감> 활용 상황을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