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한국의 인쇄 문화
제목 |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고려의 직지심경 |
---|---|
집필자 | 황인희 |
교열자 | 유안리 |
인물/기관/단체 | 구텐베르크, 이규보, 플랑시 |
장소/공간 | 경주 불국사 석가탑, 해인사 장경각, 청주목 흥덕사, 프랑스 국립도서관 |
사건 | 몽골군의 침입,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
개념용어 | 금속 활자, <직지심체요절>, <직지심경>, 유네스코 기록 유산,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권자본, 납탑 공양, <다라니경>, 신라, 고려, 팔만대장경, <동국이상국집>, <상정예문>, 밀랍 주조법, 숭유억불정책, 유교 경전, 주조술, 점착성 물질, 고급 종이 |
목차
1차 원고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들어낸 나라이다.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물은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다. <직지심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1436년부터 1446년 사이에 제작된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보다 60년이나 앞선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도 한국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751년 무렵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권자본이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불경을 통해 그 시대 이전부터 목판 인쇄를 했다는 것과 초기 목판 인쇄는 본문 내용이 짧은 <다라니경> 등의 불경을 작은 판에 새겨 다량으로 인쇄하여 납탑 공양한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작은 목판본으로, 판목에 본문과 다라니의 경문을 완전하게 새겨서 평면으로 놓고 글자 면에 먹물을 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그 위를 문질러 찍어낸, 목판 인쇄술의 성격을 완전하게 갖춘 인쇄물이다. 목판에 글자를 새긴 기술이 정교하여 글자체의 힘찬 필력을 살려 주고 있다. 정교하면서도 고아한 멋을 지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시 우리 민족의 고도로 발달한 인쇄 문화 수준을 입증하고 있다.
9세기 후반기인 신라 시대 말기에는 일반 학문 서적을 목판에 새겨 인쇄해내는 단계로까지 인쇄술이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로 들어서 불교가 국가 종교로 승격되고 그 진흥책이 강화되면서 불교 서적의 판각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현재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은 한층 더 발달한 목판 인쇄 문화를 보여준다. 고려 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 목판이 8만여 매에 달하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는 이 목판들은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은 몽골군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새긴 것으로 완벽한 대장경으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목판 인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필요한 책을 간편하게 찍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것은 금속 활자이다. 금속 활자 인쇄는 고려 시대 중앙 정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발명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3세기 전기에 금속 활자 인쇄가 실시된 것을 기록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금속 활자로 <상정예문>을 28부 찍어 각 관서에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도 실려 있다.
중앙 관서가 관장하였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이후 지방의 사찰에까지 전파되었다. 1377년에 청주목의 교외에 있었던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찍어낸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1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플랑시(Plancy,C.de.)가 1887년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로 부임하여 수집한 장서 중의 하나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이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임이 확인되었다.
고려 시대, 관청에서 만든 금속 활자 인쇄물은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가지런하다. 정교하게 주형을 만들어 활자를 부어 낸 다음 잘 손질하여 인쇄한 듯하다. 그런데 흥덕사 금속 활자본은 관청에서 만든 활자로 찍은 것이 아니고 사찰이 전통적인 재래의 밀랍 주조법으로 만든 활자로 찍어낸 것이다. 그래서 활자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고 같은 글자라도 모양이 같은 것이 드물다. 또 한 줄에 있는 자수가 한두 자씩 차이가 있을 만큼 조잡한 활자본이다.
하지만 사찰의 금속 활자 인쇄는 고려의 인쇄술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고려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조선으로 이어져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조선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와 달리 숭유억불정책을 실시했다. 그래서 인쇄 문화는 주로 유교 경전과 역사책 간행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금속 활자 인쇄는 동철을 녹여 활자를 부어내는 주조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조술은 물론, 부어낸 활자를 판에 고착시키는 점착성 물질과 쇠붙이 활자에 잘 묻는 기름 먹물이 개발되어야 인쇄를 할 수 있다. 또 금속 활자에 찍어도 찢어지지 않는 고급 종이가 있어야 인쇄가 가능하다. 고려 시대에 금속 활자 인쇄에 성공했다는 것은 당시 한민족이 이 모든 요건을 다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 |
• 이 글은 한국의 인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 좀 더 정확한 기술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그런데~조잡한 활자본이다.” 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관청이 아닌 사찰에서 활자를 만든 이유는 몽골의 지배로 관서의 인쇄기능이 중단되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사찰에서 재래의 밀랍주조법으로 활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양과는 달리 조선의 인쇄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숭유억불정책’에 기인한 점도 있지만, 1) 국가정책 변화에 따라 사찰의 사찰판본에서 정부의 관판본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고, 2) 독일의 경우 상업적 목적으로 민간 중심으로 금속활자 인쇄술이 전파되어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조선은 극소수의 양반들을 위해 국가에서 독점 제작되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 |
• - 도입부분에 인쇄물 또는 인쇄물 발달의 의미 서술 - 목판인쇄물과 금속활자를 시기순으로 서술할 것 : 주제가 왔다 갔다 함 |
|
수정 원고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은 한국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751년 무렵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권자본이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불경을 통해 그 시대 이전부터 목판 인쇄를 했다는 것과 초기 목판 인쇄는 본문 내용이 짧은 <다라니경> 등의 불경을 작은 판에 새겨 다량으로 인쇄하여 납탑 공양한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작은 목판본으로, 판목에 본문과 다라니의 경문을 완전하게 새겨서 평면으로 놓고 글자 면에 먹물을 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그 위를 문질러 찍어낸, 목판 인쇄술의 성격을 완전하게 갖춘 인쇄물이다. 목판에 글자를 새긴 기술이 정교하여 글자체의 힘찬 필력을 살려 주고 있다. 정교하면서도 고아한 멋을 지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시 우리 민족의 고도로 발달한 인쇄 문화 수준을 입증하고 있다.
9세기 후반기인 신라 시대 말기에는 일반 학문 서적을 목판에 새겨 인쇄해내는 단계로까지 인쇄술이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로 들어서 불교가 국가 종교로 승격되고 그 진흥책이 강화되면서 불교 서적의 판각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현재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은 한층 더 발달한 목판 인쇄 문화를 보여준다.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대장경은, 1232년에 만든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자 다시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9월 25일(양력으로 10월 11일)에 완성한 것이다. 고려 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 목판이 8만여 매에 달하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는 이 목판들은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은 몽골군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새긴 것으로 완벽한 대장경으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목판 인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필요한 책을 간편하게 찍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것은 금속 활자이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들어낸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물은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다. <직지심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1436년부터 1446년 사이에 제작된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보다 60년이나 앞선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금속 활자 인쇄는 고려 시대 중앙 정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발명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3세기 전기에 금속 활자 인쇄가 실시된 것을 기록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금속 활자로 <상정예문>을 28부 찍어 각 관서에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도 실려 있다.
중앙 관서가 관장하였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이후 지방의 사찰에까지 전파되었다. 1377년에 청주목의 교외에 있었던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찍어낸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1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플랑시(Plancy,C.de.)가 1887년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로 부임하여 수집한 장서 중의 하나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이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임이 확인되었다.
고려 시대, 관청에서 만든 금속 활자 인쇄물은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가지런하다. 정교하게 주형을 만들어 활자를 부어 낸 다음 잘 손질하여 인쇄한 듯하다. 그런데 흥덕사 금속 활자본은 관청에서 만든 활자로 찍은 것이 아니고 사찰이 전통적인 재래의 밀랍 주조법으로 만든 활자로 찍어낸 것이다. 그래서 활자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고 같은 글자라도 모양이 같은 것이 드물다.
하지만 사찰의 금속 활자 인쇄는 고려의 인쇄술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당시 몽골의 지배로 관서의 인쇄 기능은 중단되었지만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사찰에서 재래의 밀랍주조법으로 활자를 계속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조선으로 이어져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조선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와 달리 숭유억불정책을 실시했다. 그래서 인쇄 문화는 주로 유교 경전과 역사책 간행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금속 활자 인쇄는 동철을 녹여 활자를 부어내는 주조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조술은 물론, 부어낸 활자를 판에 고착시키는 점착성 물질과 쇠붙이 활자에 잘 묻는 기름 먹물이 개발되어야 인쇄를 할 수 있다. 또 금속 활자에 찍어도 찢어지지 않는 고급 종이가 있어야 인쇄가 가능하다. 고려 시대에 금속 활자 인쇄에 성공했다는 것은 당시 한민족이 이 모든 요건을 다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교열본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 발견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은 한국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751년 무렵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 권자본(두루마리)이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불경과 함께 나온 <묵서지편>을 모두 판독한 결과 그 이전부터 이미 목판 인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초기 목판 인쇄는 본문 내용이 짧은 <다라니경> 등의 불경을 작은 판에 새겨 다량으로 인쇄하여 탑에 넣어 공양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작은 목판본으로, 판목에 본문과 다라니의 경문을 완전하게 새겨서 평면으로 놓고 글자 면에 먹물을 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그 위를 문질러 찍어낸, 목판 인쇄술의 성격을 완전하게 갖춘 인쇄물이다. 목판에 글자를 새긴 기술이 정교하여 글자체의 힘찬 필력을 살려 주고 있다. 정교하면서도 고아한 멋을 지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시 우리 민족의 고도로 발달한 인쇄 문화 수준을 입증하고 있다.
9세기 후반기인 신라 시대 말기에는 일반 학문 서적을 목판에 새겨 인쇄해내는 단계로까지 인쇄술이 발전하였다.
목판 인쇄의 절정, 팔만대장경
고려 시대로 들어서 불교가 국가 종교로 승격되고 그 진흥책이 강화되면서 목판 인쇄는 불교 서적의 판각으로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현재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은 이 때 절정을 이룬 목판 인쇄 문화를 보여준다.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대장경은, 1232년에 만든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자 다시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9월 25일(양력으로 10월 11일)에 완성한 재조대장경이다. 고려 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 목판이 8만여 매에 달하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현재 세계의 한문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고 오자나 탈자도 거의 없으며 뒤틀리거나 변형된 것이 하나도 없이 보존되어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은 몽골군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새긴 것으로 내용면에서도 깊이 잇는 고려 불교의 연구 수준을 보여주고, 많은 자료를 망라하고 있어 완벽한 대장경으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금속활자를 처음 보여준 직지심경
목판 인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필요한 책을 간편하게 찍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 금속 활자가 만들어졌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들어낸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물은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다. <직지심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1436년부터 1446년 사이에 제작된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보다 60년이나 앞선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금속 활자 인쇄는 고려 시대 중앙 정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발명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3세기 전기에 금속 활자 인쇄가 실시된 것을 기록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금속 활자로 <상정예문>을 28부 찍어 각 관서에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도 실려 있다.
중앙 관서가 관장하였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이후 지방의 사찰에까지 전파되었다. 1377년에 청주목의 교외에 있었던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찍어낸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1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플랑시(Plancy,C.de.)가 1887년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로 부임하여 수집한 장서 중의 하나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이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임이 확인되었다.
사찰에서 발전한 인쇄술
고려 시대, 관청에서 만든 금속 활자 인쇄물은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가지런하다. 정교하게 주형을 만들어 활자를 부어 낸 다음 잘 손질하여 인쇄한 듯하다. 그런데 흥덕사 금속 활자본은 관청에서 만든 활자로 찍은 것이 아니고 사찰이 전통적인 재래의 밀랍 주조법으로 만든 활자로 찍어낸 것이다. 그래서 활자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고 같은 글자라도 모양이 같은 것이 드물다.
하지만 사찰의 금속 활자 인쇄는 오히려 고려의 인쇄술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당시 몽골의 지배로 관서의 인쇄 기능은 중단되었지만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사찰에서 재래의 밀랍주조법으로 활자를 계속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조선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와 달리 숭유억불정책을 실시했다. 그래서 인쇄 문화는 주로 유교 경전과 역사책 간행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금속 활자 인쇄는 동철을 녹여 활자를 부어내는 주조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조술은 물론, 부어낸 활자를 판에 고착시키는 점착성 물질과 쇠붙이 활자에 잘 묻는 기름 먹물이 함께 개발되어야 인쇄를 할 수 있다. 또 금속 활자에 찍어도 찢어지지 않는 고급 종이가 있어야 인쇄가 가능하다. 고려 시대에 금속 활자 인쇄에 성공했다는 것은 당시 한민족이 이 모든 요건을 다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출처 및 관련자료
- 관련자료
- 천혜봉, 『한국금속활자본』, 범우사, 1993.
- 천혜봉, 『한국목활자본』, 범우사, 1993.
- 천혜봉, 『한국전적인쇄사』, 범우사, 1990.
- 손보기, 『한국의 고활자』, 보진재, 1982.
- 천혜봉, 『나려인쇄술의 연구』, 경인문화사, 1978.
- 천혜봉, 『한국고인쇄사』, 한국도서관학연구회, 1976.
- 김두종, 『한국고인쇄기술사』, 탐구당,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