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팔만대장경판의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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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 팔만대장경판의 조성
집필자 황정욱
교열자 유안리
장소/공간 합천 해인사,장경판전, 강화도, 남해도
사건 몽골의 침입
개념용어 대장경, 대장경판, 초조대장경, 장경판전



1차 원고

대장경은 부처님의 설법(經)과 부처님이 정한 교단의 규칙(律), 그리고 경과 율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해석한 논술(論)을 모두 모은 것이다. 한자로 씌어졌다. 대장경판은 대장경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에 양각으로 새긴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합천 해인사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8만여 개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고도 한다. 매수가 8만여 개 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도 한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팔만대장경이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하며,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장경판을 보관해온 건물 장경판전도 보존기술의 과학적 탁월성이 인정되어 이보다 앞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려는 불교국가였기에 부처님 가르침의 상징인 대장경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전에 고려에는 이미 대장경이 있었고, 처음 새겨진 것이라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불렀다. 1232년 몽골군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이 초조대장경이 모두 불타서 없어졌다.

고려는 몽골이 침략한 나라들 중 가장 오래 저항을 한 나라이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28년간 9차례의 침략을 받았으나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항전을 하였다. 몽고와 전쟁을 하는 기간에 왕실과 귀족들은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다는데 마음을 모으고, 대장경을 새로 만들기로 하였다. 1236년 그 작업이 시작되어 1251년 16년 만에 끝났다. 강화도의 대장도감과 남해·강화의 분사(分司)대장도감이 이 일을 나누어 해냈다.

새로 만든 대장경판은 인쇄된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하고 동아시아의 이웃나라에서 추가로 찾아낸 자료를 보충했다. 따라서 새 대장경을 통해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에 포함된 북송(北宋)의 관판대장경(官板大藏經)과 거란판대장경(契丹板大藏經)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경판을 새기기 위해서는 먼저 산지에서 나무를 베어 진을 빼고 판각할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다듬는다. 이어 목판을 만들고, 거기에 새길 글자를 쓴 종이를 붙이는 판하본 작업을 하고 마지막으로 각수가 글자를 새겼다.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센티미터이며 폭은 약 24센티미터, 두께는 2.7~3.3센티미터이다. 각 판에는 23행 14자씩 새겨져 있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킬로그램 정도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목판의 재질은 주로 산벚나나무와 돌배나무로 되어있다.

대장경판의 판각이 끝나자 인쇄를 해서 보급했다. 1381년에 인출한 것이 신륵사에 봉안되었다.

조선시대는 1393, 1458년, 1500년에 인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는 1865년, 1899년에 각 2부와 4부를 인쇄했다.

조선시대 일본은 대장경에 큰 관심을 보이고 83회나 인쇄본을 청해왔다. 그 때 인출된 대장경 63부가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 뒤 1935년 현 동국대학교 전신이던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비치하고자 한부를 아울러 인출, 지금까지 동국대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1953년부터 시작하여 1976년까지 영인 축소판을 간행하였다. 모두 48권(목록 1권 포함)으로, 고려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여 세계 각국의 유명도서관에 보냈다.

팔만대장경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디지털화 사업과 동판으로 제작하는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 해석한 논술(論述)을 모두 모은 것이다.

- 부처님이 정한 교단의 규칙, 경, 율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하면 좋겠다. - ‘한자로 씌어졌다’는 것은 팔만대장경에 대한 설명글에 넣었으면 한다.

- 몽골군이 → 몽고군이 / 산벚나나무→산벚나무


수정 원고

대한민국 합천 해인사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8만여 개 대장경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한국의 국보 32호이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고도 한다. 매수가 8만여 개 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설법(經)과 부처님이 정한 교단의 규칙(律), 그리고 경과 율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해석한 논술(論)을 모은 것이며, 한자로 씌어졌다. 대장경판은 대장경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에 양각으로 새긴 것을 말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팔만대장경이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하며,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장경판을 보관해온 건물 장경판전도 보존기술의 과학적 탁월성이 인정되어 이보다 앞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려는 불교국가였기에 부처님 가르침의 상징인 대장경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전에 고려에는 이미 대장경이 있었고, 처음 새겨진 것이라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불렀다. 1232년 몽골군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이 초조대장경이 모두 불타서 없어졌다.

고려는 몽골이 침략한 나라들 중 가장 오래 저항을 한 나라이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28년간 9차례의 침략을 받았으나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항전을 하였다. 몽고와 전쟁을 하는 기간에 왕실과 귀족들은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다는데 마음을 모으고, 대장경을 새로 만들기로 하였다. 1236년 그 작업이 시작되어 1251년 16년 만에 끝났다. 강화도의 대장도감과 남해·강화의 분사(分司)대장도감이 이 일을 나누어 해냈다.

새로 만든 대장경판은 인쇄된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하고 동아시아의 이웃나라에서 추가로 찾아낸 자료를 보충했다. 따라서 새 대장경을 통해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에 포함된 북송(北宋)의 관판대장경(官板大藏經)과 거란판대장경(契丹板大藏經)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경판을 새기기 위해서는 먼저 산지에서 나무를 베어 진을 빼고 판각할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다듬는다. 이어 목판을 만들고, 거기에 새길 글자를 쓴 종이를 붙이는 판하본 작업을 하고 마지막으로 각수가 글자를 새겼다.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센티미터이며 폭은 약 24센티미터, 두께는 2.7~3.3센티미터이다. 각 판에는 23행 14자씩 새겨져 있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킬로그램 정도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목판의 재질은 주로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되어있다. 대장경판의 판각이 끝나자 인쇄를 해서 보급했다. 1381년에 인출한 것이 신륵사에 봉안되었다.

조선시대는 1393, 1458년, 1500년에 인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는 1865년, 1899년에 각 2부와 4부를 인쇄했다.

조선시대 일본은 대장경에 큰 관심을 보이고 83회나 인쇄본을 청해왔다. 그 때 인출된 대장경 63부가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 뒤 1935년 현 동국대학교 전신이던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비치하고자 한부를 아울러 인출, 지금까지 동국대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1953년부터 시작하여 1976년까지 영인 축소판을 간행하였다. 모두 48권(목록 1권 포함)으로, 고려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여 세계 각국의 유명도서관에 보냈다.

팔만대장경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디지털화 사업과 동판으로 제작하는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교열본

팔만대장경판의 세계적 가치

대한민국 합천 해인사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8만여 개 대장경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한국의 국보 32호이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에 판각되어서 ‘고려대장경판’이라고도 하고 목판 수가 8만여 개여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설법(經)과 부처님이 정한 교단의 규칙(律), 그리고 경과 율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해석한 논술(論)을 모은 것이다. 대장경판은 대장경을 대량으로 인쇄하기 위해 목판에 양각으로 새긴 것을 말한다. 한자로 씌어져 천자문 순서대로 보관함에 배열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팔만대장경이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제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하며,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장경판을 보관해온 건물 장경판전 또한 보존기술의 과학적 탁월성이 인정되어 이보다 앞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시 만든 팔만대장경

고려는 불교국가였기에 부처님 가르침의 상징인 대장경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전에 고려에는 이미 대장경이 있었는데, 처음 새겨진 것이라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불렀다. 1232년 몽골군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이 초조대장경은 모두 불타서 없어졌다.

고려는 몽골이 침략한 나라들 중 가장 오래 저항을 한 나라이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28년간 9차례의 침략을 받았으나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항전을 계속하였다. 몽고와 전쟁을 하는 기간에 왕실과 귀족들은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데 마음을 모으고, 대장경을 새로 만들기로 하였다. 1236년 그 작업이 시작되어 1251년 16년 만에 끝났다. 강화도의 대장도감과 남해·강화의 분사(分司)대장도감이 이 일을 나누어 해냈다.

새로 만든 대장경판은 인쇄된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하고 동아시아의 이웃나라에서 추가로 찾아낸 자료를 보충했다. 그 결과 새 대장경을 통해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에 포함된 북송(北宋)의 관판대장경(官板大藏經)과 거란판대장경(契丹板大藏經)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정성을 다한 경판 제작 과정

경판을 새기기 위해서는 먼저 산지에서 나무를 베어 1년에서 3년 정도 말리거나 소금물에 담가 결을 삭힌다. 그리고 소금물에 쪄서 진액을 빼고 그늘에서 몇 년간 말린다. 그래야 오랜 세월에도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 판각할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다듬어 목판을 만든다. 새길 글자를 쓴 종이를 붙이는 판하본 작업을 하고 마지막으로 각수가 글자를 새겼다.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센티미터이며 폭은 약 24센티미터, 두께는 2.7~3.3센티미터이다. 각 판에는 23행 14자씩 새겨져 있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킬로그램 정도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목판의 재질은 주로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되어있다.

대장경판은 아름다운 글자체와 정교한 판각술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선의 명필인 한석봉은 이를 두고 "육필(肉筆)이 아니라 신필(神筆)이다"라고 경탄했다.

일본에도 전해진 인쇄본

대장경판의 판각이 끝나자 인쇄를 해서 대장경을 보급하였다. 1381년에 인쇄하여 펴낸 것이 여주 신륵사에 봉안되었다.

조선시대는 1393, 1458년, 1500년에 인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는 1865년, 1899년에 각 2부와 4부를 인쇄했다. 조선시대 일본은 대장경에 큰 관심을 보이고 83회나 인쇄본을 청해왔다. 그 때 인출된 대장경 63부가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 뒤 1935년 현 동국대학교 전신이던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비치하고자 한 부를 더 찍어내어 지금까지 동국대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1953년부터 시작하여 1976년까지 영인 축소판을 간행하였다. 모두 48권(목록 1권 포함)으로, 고려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여 세계 각국의 유명도서관에 보냈다.

근래에는 팔만대장경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디지털화 사업과 동판으로 제작하는 사업도 함께 추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