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과거와 미래의 도시 서울: 아시아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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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0년 서울, 잠들지 않는 도시 / 백성 중심의 서울 성곽
집필자 신현덕
제목수정안 2000년 된 문화와 전통의 서울, 미래로 향하다 / 역사 탐방의 길, 서울 성곽
교열자 유안리
인물/기관/단체 태조, 세종, 박정희, 서울시, 국립중앙박물관, 한글박물관
장소/공간 서울, 한강, 외사산과 내사산, 서울성곽, 남대문시장
사건 6.25한국전쟁
기록물 서울성곽, 훈민정음
개념용어 조선, 서울성곽, 신·구도심, 천도, 종묘, 제례악



1차 원고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다양한 문화 자산을 가졌으며, 역사가 2000년이 넘은 흥미진진한 도시다. 현재 1천만 명이 모여 살며, 수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 문화 자산을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 문화 경제 관광의 중심지이다.

서울이 처음 수도 역할을 한 것은 한반도에 3국이 정립했던 때로, 백제가 기원전 18년 현재의 서울 동쪽에 수도를 정하고 475년까지(약 500년) 통치했다. 그 다음에는 풍요로운 한강변을 두고, 고구려 신라 백제가 쟁탈전을 벌이는 전장이었다. 통일 신라 이후는 한적한 곳이었다.

조선 태조 임금은 건국 2년 뒤인 1394년 서울로 천도했다. 태조는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떠나 이곳에 수도를 정하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당시 서울은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였다. 경복궁과 종묘를 두 기점으로 삼았고, 기본 설계는 유교와 풍수지리에 바탕을 두고 그려졌다.

서울에 처음 들어선 건물은 현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였다. 종묘는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다른 나라 수도와 달리 조상의 역사를 이어받으며 조상신으로부터 보호를 받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은 독창적인 제례음악과 제사 제도를 갖춰 매년 2차례씩 제사를 지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종묘에서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울리며 춤과 노래로써 화려하게 제사를 올린다.

조선은 서울에 5개의 궁궐을 지었다. 종묘와 거의 동시에 지어진 경복궁을 시작으로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들어섰다. 경복궁은 조선 임금이 통치하며 머물던 법궁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됐다.

태조는 기반시설이 전혀 없었던 서울을 건축한 뒤, 방어하고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18.6㎞의 성을 쌓았다. 그의 손자 세종은 이 성을 완벽한 방어용으로 개축했다. 성안 출입을 원하는 모든 사람은 4개의 큰 대문과 8개의 작은 문으로만 통행할 수 있었다. 세종은 이 성을 적병이 공격하기에 참 어렵게 지었다. 성벽에는 옥개석을 얹었고, 여장마다 화살을 멀리 쏘는 곳 2곳, 가까이 쏘는 곳 1곳을 갖췄다. 성벽은 구불구불하게 지어 성 안에서 다른 성벽을 감시하고, 방어가 어려운 동대문 부근에는 감시탑인 ‘치’를 세웠다. 동대문에는 다른 성문에는 없는 작은 방어시설인 옹성을 쌓아 성문을 방어하게 설계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 성곽을 따라 개설된 길을 따라 한 바퀴 돌길 즐겨한다. 남대문에서 시작하여 인왕산 북악산 낙산을 거쳐 남산 그리고 다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순환하는 길이다. 세종은 외교적으로 우호관계가 가장 돈돈한 중국이었지만, 국방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면서 당당하게 그리고 최고로 완벽한 방어 시설을 지었다. 이 성은 다른 나라 성들과 달리, 백성들과 함께 살며 통치하며 방어하는 복합 목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성은 전쟁에서 한 번도 싸움의 무대가 되질 못했다.

서울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계속 수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서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이후 성 안 중심에서 급격하게 외곽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6.25전쟁으로 거의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 무허가로 조성된 구도심을 정비했다. 동시에 새로운 시가지 조성에 나섰으나 역사 유물 파괴와 강제 이주, 경제의 소수 독점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종로와 세종로가 중심축 역할을 했던 반면, 이제는 강남, 잠실, 신촌, 영등포 등으로 도심지가 확장됐다.

서울에는 대한민국과 서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여러 개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한국인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한국 전쟁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전쟁박물관,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박물관인 한글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물론 한글의 우수함을 눈으로 보고 쉽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 한류의 근본이 된 한글은 세종대왕이 28자를 창제하던 당시대로 사용한다면 399억 음절을 적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문자이다.

서울을 찾는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쇼핑과 볼거리 명소로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 평화시장 그리고 동대문 두타를 들 수 있으며, 전통음악과 무용 판소리 등을 공연하는 전용공연장과 외국인이 즐겨 찾는 이태원도 가볼만 하다.

서울은 4개의 큰 산이 외곽을 둘러싸고 있고, 동시에 큰 강이 동서로 흐르는 자연친화적 도시다. 또 많은 건축물이 현대에 지어진 현대 도시다.

서울은 김포와 인천 공항을 통하여 세계 54개국 186개 도시와 연결된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잠실 주경기장과 한강 수상 시설, 전시장 코엑스와 각종 회의장은 세계인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있다. 서울 거리에는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라는 표어가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서울 속에서 보라.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안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 더 많으며, 사람들의 활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동감 있는 곳이다. 어떤 이는 서울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역동적이며 늘 변화하고, 24시간 어디에서나 ‘배달’ 시스템을 활용하여 온갖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다. 서울에 온 관광객들은 “서울을 밤이 없는 도시”라고도 말한다. 치맥(치킨+맥주)은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한국인의 간편한 주류 문화이며, 폭탄주는 외국인들이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밤 문화다.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과거와 미래의 도시 서울: 아시아의 심장’을 주제로 삼은 것은 서울을 이해하는데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의 도시 서울: 아시아의 심장’을 주제로 삼고 있으나 원고에서는 특히 미래의 도시, 아시아의 심장(세계 또는 아시아에서 국제적인 도시 역할을 하는 서술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서울과 서울의 지리적 특징만이 부각되어 있다. 원고의 제목과 주제 그리고 글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집필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문단은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속에서 보라 …(중략)…표현했다” 은 서울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표현하기 어렵고, 글의 내용을 통해서 서울의 활기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직접적으로 서술하여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서울의 활기와 재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마지막 문단에서 치맥문화, 폭탄주, 밤문화를 꼭 제시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과거와 현재의 서울의 모습을 알겠는데, 추구하는 미래의 모습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 현재 서울이 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때, 각각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공간 및 국민, 시민들의 활동을 사례로 제시하였으면 한다. 청와대, 국회, 광화문과 시청에서 시민의 모임-촛불시위, 태극기 집회, 각종 집회, 월드컵 응원 등
- 아시아의 심장이면 국제적인 내용, 적어도 아시아의 심장이라고 하는 이유와 관련된 내용을 서술해야 하지 않을까요?
- 서울 한강에 강북과 강남을 잇는 수 많은 다리와 야경, 한강유원지
- 박물관 중 전쟁박물관과 문자박물관 2개를 특히 소개한 이유가 있는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이 더 크고 한국의 국보급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 아닌가? 전쟁박물관과 문자박물관에 대한 소개가 나쁘지는 않지만 집필자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크고 작은 박물관이 모두 몇 개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치맥 문화, 특히 폭탄주는 꼭 알려야 하는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수정 원고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다양한 문화 자산을 가졌고, 역사가 2000년이 넘은 도시다. 현재 1천만 명이 모여 살며, 수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 문화 자산을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이다.

서울이 처음 수도 역할을 한 것은 한반도에 3국이 정립했던 때로, 백제가 기원전 18년 현재의 서울 동쪽에 수도를 정하고 서기 475년까지(약 500년) 통치했다. 그 다음에는 풍요로운 한강변을 두고, 고구려 신라 백제가 쟁탈전을 벌이는 전장이었다. 하지만 통일 신라 이후는 한적한 곳이었다.

조선 태조 임금은 건국 2년 뒤인 1394년 자금의 서울로 천도했다. 당시 서울은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였다. 경복궁과 종묘 두 곳을 기점으로 삼았고, 기본 설계는 유교와 풍수지리에 바탕을 두고 그려졌다.

서울에 처음 들어선 건물은 현재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였다. 종묘는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인데, 조상의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조상의 음덕으로 보호를 받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은 이곳에서 독창적인 제사방법과 제례음악 등으로 매년 2차례씩 제사를 지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종묘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울리며 춤과 노래로써 화려하게 한바탕 이벤트를 벌인다.

태조는 기반시설이 전혀 없었던 서울을 계획도시로 만들고, 방어하고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18.6㎞의 성을 쌓았다. 그의 손자 세종은 이 성을 완벽한 방어용으로 개축했다. 성곽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있었다. 4개의 대문은 유교의 근본 교리인 인의예지에서 한 글자씩 인용해 흥인지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세종은 이 성을 적병이 공격하기에 참 어렵게 개조했다. 성벽을 구불구불하게 지어 성 안에서 다른 성벽을 감시하고, 방어가 어려운 동대문 부근에는 감시탑인 ‘치’를 세웠다. 동대문에는 다른 성문에는 없는 작은 방어시설인 옹성을 쌓아 성문을 방어하게 설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성은 전쟁에서 한 번도 싸움의 무대가 되질 못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 성곽을 따라 개설된 길을 따라 즐겨 한 바퀴를 돈다.

서울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계속 수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서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이후 성 안 중심에서 급격하게 외곽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6.25전쟁으로 거의 파괴되었으며, 무허가로 조성된 구도심을 정비했다. 동시에 새로운 시가지 조성에 나섰으나 역사 유물 파괴와 강제 이주, 경제의 소수 독점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종로와 세종로가 중심축 역할을 했던 반면, 이제는 강남, 잠실, 신촌, 영등포 등으로 도심지가 확장됐다.

서울에는 대한민국과 서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자리잡았다. 또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박물관인 한글박물관이 국립박물관과 같은 구내에 있다.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서울의 쇼핑과 볼거리 명소로는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 평화시장, 이태원, 삼성역과 강남역 부근 그리고 동대문 두타를 들 수 있다. 이 부근에는 러시아인 거리, 중국인 거리, 몽골촌 등이 생겨날 정도로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전통음악과 무용 판소리 등 전통음악과 난타 k-pop 등을 공연하는 한류 전용공연장은 대학로, 신촌, 홍대입구 등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충무아트홀 등의 공연장과 서울올림픽 경기장,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등에서 열리는 대규모 한류공연에는 전 세계에서 팬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룬다. 유명한 한류스타들이나 그룹들의 공연은 표를 판매한 지 10분 만에 매진돼, 한국에서 표를 사는 것보다 외국에서 그 나라 팬들을 위해 할당된 표를 사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에는 또 KBS 등 각종 방송국과 조선일보 등 주요언론사들의 본사가 몰려있다. 방송국의 공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방청객들이 3~4일 전부터 방송국 앞에서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광경도 자주 볼 수 있다.

서울에는 한국의 주요기업 본사가 다 몰려 있다. 삼성전자, 현대 자동차, LG, 한화, 두산, 효성 등이 서울에서 세계로 뻗어나갔다. 서울은 또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무역진흥공사,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각종 경제단체가 몰려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중심이다.

국제회의와 전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지하철 삼성역 부근의 한국종합무역센터의 코엑스와 학여울역의 SETEC 등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코엑스에서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OECD 국제워크숍 등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렸으며 매년 주요전시회도 열린다. 코엑스 부근에 현대자동차 회사가 대규모 사옥을 건설하고, 한국 정부와 서울시가 이곳을 교통과 무역 등을 총망라하는 대표지역으로 개발을 마치면 서울의 새로운 심장부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학기술원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교육 및 연구기관도 몰려 있어 한국 기술개발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2017년 서울은 김포와 인천 공항을 통하여 세계 54개국 186개 도시와 곧바로 항공편으로 연결된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은 다이나믹한 도시 생활에도 매료된다. 모든 상품을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배달제도는 인구 밀집도가 높았기에 가능했다. 어떤 이는 서울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범죄율은 세계 어느 나라 도시보다 낮아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과 2002년의 월드컵 개최로 서울은 세계 속의 서울로 거듭났다. 2002년 시작된 ‘거리응원’이라는 독특한 문화는 한류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래학자들은 조만간 한반도가 통일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 후 서울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도로 및 철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또 해양으로 뻗어나갈 인천과 평택 부산 등으로 고속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극동지역의 문화와 정치 경제의 중개역할을 조화롭게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교열본

한국 역사의 중심 도시 서울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역사가 2000년이 넘은 도시다. 현재 1천만 명이 모여 살며, 수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 다양한 문화 자산을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이다.

서울이 처음 수도 역할을 한 것은 한반도에 3국이 정립했던 때로, 백제가 기원전 18년 현재의 서울 동쪽에 수도를 정하고 서기 475년까지(약 500년) 통치했다. 그 후에는 풍요로운 한강변을 두고, 고구려 신라 백제가 쟁탈전을 벌이는 전장이었다. 전쟁터가 조용해진 것은 통일 신라 이후부터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건국 2년 뒤인 1394년 개경(개성)에서 한양(서울)으로 수도를 옮겼다. 당시 서울은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였다. 경복궁과 종묘 두 곳을 기점으로 삼았고, 기본 설계는 유교와 풍수지리에 바탕을 두고 그려졌다.

서울에 처음 들어선 건물은 현재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였다. 종묘는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인데, 조상의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조상의 음덕으로 보호를 받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은 이곳에서 독창적인 제사방법과 제례음악 등으로 매년 2차례씩 제사를 지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종묘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에 맞추어 춤과 노래로써 장엄하게 종묘대례를 거행한다.

태조는 기반시설이 전혀 없었던 서울을 계획도시로 만들고, 방어하고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18.6㎞의 성을 쌓았다. 그의 손자 세종은 이 성을 완벽한 방어용으로 개축했다. 성곽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있었다. 4개의 대문은 유교의 근본 교리인 인의예지에서 한 글자씩 인용해 흥인지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세종은 이 성을 적병이 공격하기 어렵게 개조했다. 성벽을 구불구불하게 지어 성 안에서 다른 성벽을 감시하고, 방어가 어려운 동대문 부근에는 감시탑인 ‘치’를 세웠다. 동대문에는 다른 성문에는 없는 작은 방어시설인 옹성을 쌓아 성문을 방어하게 설계했다.

지금은 사대문으로 궁궐과 종묘 사직을 품은 성곽길이 많은 사람들의 역사 탐방 산책로가 되고 있다.

문화가 꽃피는 서울

서울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계속 수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서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성 안 중심에서 급격하게 외곽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6.25전쟁으로 거의 파괴된 후 무허가로 조성된 구도심을 정비했다. 동시에 새로운 시가지 조성에 나섰으나 역사 유물 파괴와 강제 이주, 경제의 소수 독점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종로와 세종로에 집약되었던 중심축 역할이 이제는 강남, 잠실, 신촌, 영등포 등으로 확장되었다.

서울에는 대한민국과 서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규장각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산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또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박물관인 한글박물관이 국립박물관과 같은 구내에 있다. 현재 서울에는 여러 종류의 박물관 109곳이 있다.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서울의 쇼핑과 볼거리 명소로는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 평화시장, 이태원, 삼성역과 강남역 부근 그리고 동대문 쇼핑몰을 들 수 있다. 이 부근에는 러시아인 거리, 중국인 거리, 몽골촌 등이 생겨날 정도로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전통음악과 무용 판소리 등 전통음악과 난타 k-pop 등을 공연하는 한류 전용공연장은 대학로, 신촌, 홍대입구 등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충무 아트홀 등 공연장과 서울올림픽 경기장,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등에서 열리는 대규모 한류공연에는 전 세계에서 팬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룬다. 유명한 한류스타들이나 그룹들의 공연은 표를 판매한 지 10분 만에 매진돼, 한국에서 표를 사는 것보다 외국에서 그 나라 팬들을 위해 할당된 표를 사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경제 활동의 심장부

서울에는 또 KBS 등 각종 방송국과 조선일보 등 주요언론사들의 본사가 몰려있다. 방송국의 공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방청객들이 3~4일 전부터 방송국 앞에서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광경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의 주요기업 본사가 다 몰려 있는 곳 역시 서울이다. 삼성전자, 현대 자동차, LG, 한화, 두산, 효성 등이 서울에서 세계로 뻗어나갔다. 서울은 또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무역진흥공사,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각종 경제단체가 몰려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중심지이다.

국제회의와 전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지하철 삼성역 부근의 한국종합무역센터의 코엑스와 학여울역의 SETEC 등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코엑스에서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OECD 국제워크숍 등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렸으며 매년 주요전시회도 열린다. 코엑스 부근에 현대자동차 회사가 대규모 사옥을 건설하고, 한국 정부와 서울시가 교통과 무역 등을 총망라하는 대표지역으로 개발을 마치면 이곳은 서울의 새로운 심장부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서울은 김포와 인천 공항을 통하여 세계 54개국 186개 도시와 곧바로 항공편으로 연결된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은 다이나믹한 도시 생활에 매료된다. 모든 상품을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배달제도는 인구 밀집도가 높았기에 가능했다. 어떤 이는 서울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범죄율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낮아 비교적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과 2002년의 월드컵 개최로 서울은 세계 속의 서울로 거듭났다. 2002년 시작된 ‘거리응원’이라는 독특한 문화는 한류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래학자들은 조만간 한반도가 통일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 후 서울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도로 및 철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또 해양으로 뻗어나갈 인천과 평택 부산 등으로 고속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인프라를 기반으로 서울은 극동지역의 문화와 정치 경제의 중개역할을 조화롭게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