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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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원고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오늘날의 평양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대동강 일대에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부 지역에 걸쳐 위치하였다. 성립 시기는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1500년 경)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개국 시기를 비롯하여 영토의 범위, 도읍지의 위치, 지배자는 누구인지 등 나라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밝혀져 있지 않거나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삼국유사>(13세기)에 기록된 고대 신화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이 세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단군은 한민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원전 12세기에 중국 상나라 사람인 기자가 고조선으로 망명을 해 와, 고조선 건국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정도나 참여했는지는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옮김이 의견: 이와 함께 고대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세기에 중국 상나라 사람인 기자가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왕이 되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는 존재 여부부터가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대동강 일대의 부족들이 세력을 통합하던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고조선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고조선은 기원전 2세기에 연나라의 공격을 받고 약화되면서, 한때 왕위가 중국인 망명객 위만에게 넘어갔다가,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에게 멸망당했다. 당시 고조선의 영토는 훗날 삼국 시대에 들어 고구려의 일부가 되었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무렵에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는 진이라 하는 나라가 등장했다. 소규모 성읍 국가들의 연맹체였을 이 나라는 기원전 1세기에 삼한 연맹 왕국으로 계승되었다.

수정 원고

  • 제목: 역사시대의 문을 열다, 고조선

고조선은 한국 역사상 등장한 최초의 국가로 지금의 평양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대동강 일대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부 지역에 걸쳐 자리 잡았던 나라이다. 성립 시기는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1500년 경)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개국 시기를 비롯하여 영토의 범위, 도읍지의 위치, 지배자의 존재와 성격 등 국가 전반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직 명료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학계에서는 관련하여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고조선이 남긴 역사적 문헌 기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같은 시기, 혹은 후대 중국 역사서의 기록과 같이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규명을 시도하여야 하는 한계에 원인이 있다. 동시에 고조선의 중심지와 영역이 대부분 북한과 중국 동북부 지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국의 적극적인 고고학적 접근과 발굴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도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고조선에 대한 논란은 단순히 고조선 자체의 성격 규명 뿐 만 아니라 국제적 이해관계와도 연결되어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하여서는 설화로 전해지는 「단군신화」의 전승이 있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인 󰡔삼국유사󰡕(13세기)의 내용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이를 통해 단군은 한민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이와 함께 고대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세기에 중국 상(商)나라 사람인 기자(箕子)가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왕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의 선진 문물이 고조선으로 전해졌다고 전한다.

때문에 그 내용 근거로 유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시대에는 한국이 아주 일찍부터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중국과 거의 대등한 문명국가임을 자부하는 등 이를 크게 내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자는 그 존재 여부부터가 논란거리로 남아있어 기록의 사실 여부를 신뢰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또 해당 중국의 기록이 사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기 보다는 관념과 신화를 기록한 성격이 강하므로 그 수용에는 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대동강 일대의 부족들이 세력을 통합하던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후 고조선은 기원전 2세기에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고 약화되면서, 한때 왕위가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고조선 사람 위만(衛滿)에게 넘어갔다가 끝내 기원전 108년에 한(漢)나라 무제(武帝)에게 멸망당했다.

이때 위만이라는 인물이 중국사람인지 중국에서 활동하던 고조선 사람인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그를 고조선 사람으로 보는 견해는 위만이 고조선으로 올 때 고조선의 말과 옷을 사용하였고, 고조선 고유의 상투를 틀었으며, 국호를 조선으로 계속 이어갔던 점을 제시한다. 또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당하면서 한나라가 의도적으로 위만을 중국인으로 조작해 기록으로 남겼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위만의 출신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정리되지 못한 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고조선 멸망 이후 그 영토는 훗날 삼국시대에 접어들어 고구려의 일부로 흡수 되었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중심지에 설치된 한나라의 군현들을 몰아내고 급기야 고조선 영토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고조선의 영역을 넘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辰)이라는 나라가 등장하였다. 소규모 성읍국가들의 연맹체였을 이 나라는 기원전 1세기에 연맹 왕국인 삼한(三韓)으로 계승되었다.

교열본

  • 제목: 역사시대의 문을 열다, 고조선

고조선 연구의 한계

고조선은 한국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국가이다. 지금의 평양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대동강 일대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부 지역에 걸쳐 자리 잡았던 나라이다. 성립 시기는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1500년 경)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개국 시기를 비롯하여 영토의 범위, 도읍지의 위치, 지배자의 존재와 성격 등 국가 전반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직 명료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학계에서는 관련하여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고조선이 남긴 역사적 문헌 기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같은 시기, 혹은 후대 중국 역사서의 기록처럼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규명을 시도하여야 하는 한계에 원인이 있다. 동시에 고조선의 중심지와 영역이 대부분 북한과 중국 동북부 지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국의 적극적인 고고학적 접근과 발굴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인 점도 또 하나의 원인이다. 따라서 고조선에 대한 논란은 단순히 고조선 자체의 성격 규명 뿐 만 아니라 국제적 이해관계와도 연결되어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고조선이 등장한 기록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하여서는 설화로 전해지는 「단군신화」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인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내용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에 의해 건국되었다.

다른 한편, 고대 중국의 기록에는, 기원전 12세기에 중국 상(商)나라 사람인 기자(箕子)가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왕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의 선진 문물이 고조선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 내용을 근거로 유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시대에는 한국이 아주 일찍부터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중국과 거의 대등한 문명국가임을 자부하는 등 이를 크게 내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자는 그 존재 여부부터가 논란거리로 남아있고 또 해당 중국의 기록이 사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기 보다는 관념과 신화를 기록한 성격이 강하므로 그 수용에는 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학계에서 보는 고조선 건국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대동강 일대의 부족들이 세력을 통합하던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후 고조선은 기원전 2세기에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고 약화되면서, 한때 왕위가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고조선 사람 위만(衛滿)에게 넘어갔다가 끝내 기원전 108년에 한(漢)나라 무제(武帝)에게 멸망당했다.

학계에서는 위만이 중국사람인지 중국에서 활동하던 고조선 사람인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그를 고조선 사람으로 보는 견해는 위만이 고조선으로 올 때 고조선의 말과 옷을 사용하였고, 고조선 고유의 상투를 틀었으며, 국호를 조선으로 계속 이어갔던 점을 제시한다. 또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당하면서 한나라가 의도적으로 위만을 중국인으로 조작하여 기록으로 남겼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위만의 출신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정리되지 못한 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고조선 이후

고조선 멸망 이후 그 영토는 훗날 삼국시대에 접어들어 고구려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중심지에 설치된 한나라의 군현들을 몰아내고 급기야 고조선 영토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고조선의 영역을 넘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辰)이라는 나라가 등장하였다. 소규모 성읍국가들의 연맹체로 짐작되는 이 나라는 기원전 1세기에 연맹 왕국인 삼한(三韓)으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