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반도에서 일어난 열강의 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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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반도에서 일어난 열강의 각축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이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청은 1882년 임오군란을 구실로 군대를 조선에 주둔시키고 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크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경쟁하던 1894년, 부패한 관리와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외세를 몰아내고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자’고 궐기한 동학농민운동이다.

청일전쟁 풍자화 : 프랑스인 ‘조르주 비고’가 1887년 2월 15일자 일본 잡지 ‘도바에’에 실은 삽화로 제목은 ‘낚시 놀이’이다. 청일전쟁 발발 직전의 정세를 그린 풍자화이다.

조선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군대 파견을 요청하였다. 청이 군사를 보내자 일본 또한 군대를 파병하여 두 나라의 군대는 거의 동시에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본군의 파병에 놀란 조선 정부는 농민군의 요구를 수용하는 조약(전주화약)을 맺어 농민군을 해산시키고, 청일 양군이 동시에 철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의 철수 요청을 거부하고 ‘내정개혁’을 핑계 삼아 경복궁을 기습 점령한 후, 선전포고도 없이 청을 공격하여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한반도는 청과 일본의 전쟁터로 변하였고 조선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선제공격으로 승기를 잡은 일본은 조선의 내정간섭을 심화했다. 이에 해산했던 농민군은 일본을 몰아내자며 다시 봉기하였으나 일본군의 최첨단 무기에 처참히 무너졌다. 청일전쟁은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쟁임과 동시에 한반도 내에서는 일본군과 동학 농민군 간의 전쟁이기도 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과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었다. 청으로부터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을 넘겨받았으며 조선에 대한 우월한 지위도 인정받았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했던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국제질서는 사실상 무너졌고, 청은 열강의 침략이 강화되면서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옛 러시아 공사관(서울 중구 정동)

일본의 승리는 만주와 조선 침략을 노리던 러시아를 자극하였다.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를 청에 반환하라고 압력을 가해 일본의 랴오둥 반도 점령을 저지하였다(삼국간섭). 이를 지켜본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친러정책을 추진하였다. 위기를 느낀 일본은 깡패와 군대를 동원해 중전 민씨를 살해하고(을미사변), 단발령과 같은 강압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조선에서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한층 증대되었다.

아관파천 일 년 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황제에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황제 칭호는 일본이 중국의 간섭으로부터 조선을 벗어나게 한다는 명분으로 착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에 있어 그것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성취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대한제국은 광무개혁을 추진하여 국방력을 강화하고 교육과 상공업을 진흥시켰으며 근대적 토지 소유 제도를 확립하여 근대적인 국가를 건설하려 하였다. 이 때, "조선"을 대신하는 새로운 나라 이름으로 정한 "대한제국"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호의 연원이 되었다.

러일전쟁의 결과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한 대한제국의 노력은 러일전쟁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러시아는 청일전쟁 이후 청으로부터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뤼순항을 조차하며 만주에서 입지를 강화해갔다. 또 러시아는 의화단운동(1899-1901)을 빌미로 파견하였던 군대 일부를 철수하지 않고 압록강 주변에 주둔시켰다.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던 일본 뿐 아니라 영국을 자극하였다. 영국은 일본과 제1차 영일동맹(1902)을 맺어 일본을 지지하였고, 러시아가 압록강 입구의 용암포를 조차하자 미국도 일본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의 강력한 후원을 얻게 된 일본은 1904년 2월 인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군을 기습 공격하여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대한제국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 중립국화를 시도하였지만 열강에 의해 묵살 당했다. 러시아가 쉽게 이길 것이라 예상했던 서양 열강들의 전망과 달리 일본은 1905년 초 뤼순을 함락하고,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승기를 잡았다. 그 결과 1905년 9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포츠머스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고, 만주 남부의 철도 부설권을 인정받았다.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의 국내 상황도 변화시켰다. 일본은 전쟁의 승리로 전쟁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군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러시아는 전쟁으로 생활이 빈곤해진 국민들 사이에 전쟁을 반대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이는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 동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이 막힌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와 발칸 반도로 침략의 방향을 옮기면서 1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촉진시켰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해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한반도의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여 1910년 한국의 국권을 박탈했다. 청일전쟁러일전쟁, 한반도를 둘러싼 두 차례의 전쟁은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것이었다. 이 쟁탈전의 최종 피해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한국이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청일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0: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국사편찬위원회, 2013.
고영자, 『청일전쟁과 대한제국』, 탱자출판사, 2006.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 40: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은 청일전쟁의 발발과 경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청일전쟁의 원인 중 하나인 임오군란, 1894년의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갑오경장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전개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청일전쟁과 대한제국』은 고종황제 치세인 대한제국기의 험난한 격동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특히 3부에서 대한제국 개국기에서 청일전쟁 종결기까지의 역사적 큰 사건들을 주축으로 당시 일본의 역사적 사건과 정세를 함께 기술함으로써 한일 두 나라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승패의 역사적 차이점은 무엇이었는지 대조하였다. 운양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동학농민 봉기,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 당시 청일전쟁을 전후로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정리되어 있다.


  • 러일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고영자, 『러일 전쟁과 대한제국』, 탱자출판사, 2007.
최문형,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 지식산업사, 2004.
하라 아키라,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살림, 2015.


『러일 전쟁과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러일전쟁의 원인을 시작으로 러일전쟁 발발, 러시아의 패전까지 러일전쟁의 모든 과정을 시간순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은 러일전쟁과 한국의 관계에 있어 구미 열강의 이해와 연계된 국제관계라는 시각으로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한다. 저자는 당시 국제적 추이에 발맞추어 만주와 한반도를 포함, 다각적인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러일전쟁에 대해 살펴보았다. 러일전쟁의 열강과 관계된 부분과 일본의 한국 병합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의 논지에서 저자는 한국보호조약 체결 시기와 병합 시기의 공백기를 주안점으로 두어 그에 관련된 국제 관계의 양상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는 ‘전쟁’을 테마로 ‘근대일본’을 고찰해가면서 오늘날 이웃나라 간의 관계에 원점이 되는 요소를 재검토하기 위해 쓰였다. ‘근대일본’이 처음으로 일으킨 두 차례 대외전쟁인 청일·러일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개시 전까지의 상황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 타자의 시선으로 본 전쟁의 양상이 궁금하다면....
메리 V. 팅글리 로렌스 , 제임스 앨런 지음 , 손나경, 김대륜 옮김, 『미 외교관 부인이 만난 명성황후·영국 선원 앨런의 청일전쟁 비망록』, 살림, 2011.
제노베 볼피첼리 지음, 유영분 옮김, 『구한말 러시아 외교관의 눈으로 본 청일 전쟁』, 살림, 2009.
Alexei Nikolaievich Kuropatkin 지음, 심국웅 옮김, 『러일전쟁 러시아 군사령관 쿠로파트킨 장군 회고록』,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7.


『미 외교관 부인이 만난 명성황후·영국 선원 앨런의 청일전쟁 비망록』의 두 번째 글(영국 선원 앨런의 청일전쟁 비망록)에서는 저자 앨런이 우연한 기회에 청나라와 무기를 밀거래하는 무역선에 탔다가, 배를 놓치는 바람에 겪게 되는 청일전쟁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당시 영국 선원인 앨런이 쫓기면서 관찰한 청일전쟁과 대학살의 참혹한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구한말 러시아 외교관의 눈으로 본 청일 전쟁』은 구한말 대한제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지낸 제노네 볼피첼리(Zenone Volpicelli)가 청일전쟁이 끝나고 1년이 지난 1896년에 영국에서 출간한 「THE CHINA-JAPAN WAR」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영국에서 출간된 책인 만큼 전쟁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근대 이전의 한중일 삼국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한국 근대사는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일본의 승리를 이끈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각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일본 군대의 혁신적 전술과 영웅적 업적을 중국의 낙후된 전술과 오합지졸에 불과한 중국군의 현실에 대비하여, 앞서가는 국가와 뒤처지는 국가의 조건이 무엇인지 서술한다. 이는 저자가 참고한 자료들의 대부분을 일본 측에서 작성했기 때문이겠지만, 청일전쟁 전까지 변방의 작은 나라 정도로만 여겨졌던 일본이 아시아 최강국인 중국을 꺾었다는 데 대한 놀라움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특징은 생생하게 청일전쟁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청일 양군의 군비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부터, 일본군이 어떤 작전을 펴 청군을 제압했는지, 전투의 결정적 장면은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방어하던 청군은 어떻게 싸우다 물러났는지, 양측의 손실은 얼마인지까지 전투의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부록에는 전쟁 기간 중 양국이 주고받은 각종 편지글과 협상문서들,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의 진술서 등을 실음으로써 더욱 현실감 있는 전쟁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러일전쟁 러시아 군사령관 쿠로파트킨 장군 회고록』은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 극동군 사령관으로 동 전쟁을 지휘하였으며, 이 전쟁에서의 패장이었던 쿠로파트킨 장군의 회고록이다. 저자는 패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차분히 밝히면서 후대에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회고록을 집필하였다. 1부는 '18세기부터 19세기 러시아 인접국와 영토 확장 및 해양진출 전쟁'부터 '선양 전투 결과'까지를 쿠로파트킨 장군이 직접 집필하였다. 그리고 2부는 뤼순의 러시아 함대, 뤼순 진지와 투항에 관해 러시아 해군에서 자료를 정리한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