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조사가 고스란히 담긴 5대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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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조사가 고스란히 담긴 5대 궁궐

궁(宮)과 궐(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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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조선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다. 궁궐은 ‘궁(宮)’과 ‘궐(闕)’을 합한 말이다. 궁은 임금과 신하들이 만나 나랏일을 보고 임금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말한다. 궐은 궁을 지키기 위해 에워싸고 있는 담장과 망루, 출입문 등을 일컫는다. 궁궐은 기능과 역할에 따라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조정의 관료들이 업무를 보는 관청이 있는 외조, 임금이 신하들과 정치를 행하는 구역인 치조, 왕비 등 임금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인 연조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의 임금들은 왕릉에 참배하러 갈 때나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궁궐 안에서 대부분의 주요한 일을 처리했다. 그런 의미에서 궁궐은 조선 왕조사를 거의 다 담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궁궐은 나름의 독창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또 궁궐을 짓고 수리를 할 때마다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검소하게 지어야 함을 강조한 조선 임금들의 애민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5개 궁궐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수립 후 정부는 궁궐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일제가 경복궁의 정전인 경복궁 근정전을 가로막아 지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헐린 전각과 문루들을 단계적으로 복원하였다.

조선의 시작과 끝, 경복궁

경복궁(景福宮)태조 1년인 1395년 9월, 조선 건국 후 가장 먼저 지어진 궁궐이다. 조선경복궁을 중심으로 한양에 새로운 도읍을 만들었다. 경복궁 주변에 국가의 근간이 되는 종묘사직을 세웠고 정신적 지주가 되고 교육을 담당할 문묘, 성균관도 만들었다. 하지만 제7대 임금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후 창덕궁으로 옮겨갔고, 후대 임금들도 경복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은 다 폐허가 되어버렸다. 전쟁 후 다른 궁궐들은 재건하였지만 경복궁은 길하지 않은 곳이라는 의견이 있어서 제26대 임금 고종이 즉위할 때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나라의 체통을 바로잡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1895년 경복궁에서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이때부터 경복궁은 궁궐로 쓰이지 않았다.

자연친화적 궁궐, 창덕궁과 창경궁

조선 제3대 임금 태종 때 지어진 창덕궁(昌德宮)은 가장 많은 임금이 머문 궁궐이었다. 창덕궁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애초 지형 위에 지어진 자연 친화적 궁궐이다. 창덕궁낙선재대한제국 황실의 최후를 함께 한 장소이다. 마지막 황제 순종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후 주로 낙선재에서 살았고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와 순종의 동생 영친왕의 비 이방자(李方子) 여사,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가 이곳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창덕궁후원은, 언덕과 물길, 숲 등 자연물은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 거기에 정자 등 휴식 공간을 세워 아름다움을 더한 정원이다. 자연 친화형 정원으로, 한국 전통 정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창경궁(昌慶宮)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지은 궁궐이다. 대비는 대부분 현재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이다. 창경궁임진왜란을 비롯한 전란과 몇 차례의 화재 때문에 불타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거듭해야 했다.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거대한 암반도 살려서 집을 앉히고 자연적인 정원을 꾸몄다. 1908년에는 한반도를 강제점령한 일본에 의해 전각들이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 자리에 동물원, 식물원 등이 세워지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가득 찬 일본식 공원이 되고 말았다.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놀이공원으로 남아 있던 창경궁은 1986년에야 다시 궁궐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굴욕의 현장이었던 덕수궁

덕수궁(德壽宮)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원래 왕족의 집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궁궐이 불타버려서 돌아갈 곳을 잃은 선조가 이 집에 들어와 살았고, 광해군도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은 새로 지어진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지어주었고 이후 궁궐 대접을 받게 되었다.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1907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했다. 이후 고종환구단(圜丘壇)을 세우고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에 고종은 다른 나라에 억울함을 호소하려 1907년 헤이그에 밀사를 보냈다. 그런데 일본은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을사늑약과 헤이그 밀사 파견도 모두 경운궁 안에 있는 중명전에서 이뤄졌다. 일본은 새로 즉위한 순종창덕궁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이때 순종은 아버지가 사는 경운궁의 궁호를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덕수’는 아버지의 덕을 찬양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명맥만 유지된 경희궁

1623년에 완성된 경희궁(慶熙宮) 터에는 원래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의 개인 집이 있었다. 그런데 선조의 둘째 아들이며 제15대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정원군의 집에 왕의 기운이 서린다는 말을 듣고 그 집을 빼앗아 그 자리에 궁궐을 지었다. 그러나 광해군은 새로 지은 궁궐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 왕이 된 사람은 정원군의 아들(인조)이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경희궁 터가 정말 ‘왕기가 서린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인조는 즉위 초기 창경궁에 머물렀는데 이괄의 난 때 몽진에서 돌아온 인조는 불탄 창경궁 대신 경희궁으로 들어갔다. 이후 경희궁조선 후기의 이궁(離宮)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희궁은 조선의 궁궐 가운데 가장 많이 훼손된 궁궐이다. 일제강점기에 아예 없어졌다가 1980년 이후 일부만 다시 복원되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궁궐의 구조 및 장식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상해, 『궁궐 유교건축』, 솔, 2004.
수류산방 편집부, 『궁궐의 현판과 주련. 1: 경복궁』, 수류산방, 2008.
수류산방 편집부,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창덕궁 창경궁』, 수류산방, 2008.
수류산방 편집부,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덕수궁 경희궁 종묘 칠궁』, 수류산방, 2008.
허균, 『궁궐 장식』, 돌베개, 2011.
조재모, 『궁궐 조선을 말하다』, 아트북스, 2012.
조재모, 『궁궐 조선을 말하다』, 아트북스, 2012.


『궁궐 유교건축』은 궁궐·유교건축물들의 사진과 다양한 정보가 담긴 책으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더불어 재미와 애정을 갖도록 도와준다. 궁궐, 종묘, 사직, 문묘, 향교, 서원 등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축물들은 통치자를 위한 건축, 제사를 위한 건축, 유교 성리학과 관계되는 건축으로 나뉜다. 한국건축의 특성이 나타나는 궁궐과 유교건축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나라 궁궐건축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조선시대 주요 다섯 궁궐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또한 유교건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사묘, 성균관, 향교, 서원건축의 성립과 발전, 시대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주요 건출물에 대한 설명과 함께 풍부한 사진, 도면을 수록했다.

조선조 궁궐 건물의 공간적 구조와 각 건물의 역할 및 명칭에는 유교적 세계관과 도덕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덕치주의와 음양오행에 기초한 자연과, 민본주의를 표현해 놓은 것이 바로 현판과 주련이다. 현판은 건물의 고유한 이름표이면서 해당 건물의 기능과 특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주련은 한시 구절이나 단편적 산문 등을 새기거나 써서 기둥에 걸어 놓은 장식물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련의 글씨는 선대의 이름난 서가나 당대의 명필들이 쓴 것을 새겼기 때문에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는 점이다. 즉 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조선의 국가적 이념과 궁궐 생활 문화, 더 나아가 삶의 멋과 운치까지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궁궐의 현판과 주련』의 1편은 경복궁, 2편은 창덕궁과 창경궁, 3편은 덕수궁, 경희궁, 종묘, 칠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궁궐장식』은 유교정치의 이상과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세계관이 담긴 다양한 조각상과 그림, 문양, 건축물 등을 통해 궁궐장식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서초, 황룡, 사자 등의 형상으로 재현된 장식들뿐만 아니라, 당가, 곡병, 향로 등 궁궐 설치물들의 상징적, 문화적 연원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또한 궁궐의 장식물과 조형물들을 현장감 있는 200여 컷의 컬러 도판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며, 여기에 정확한 해설을 덧붙여 독자들을 궁궐 구석구석으로 안내한다. 조선왕조의 유교문화와 정치문화를 심미적으로 잘 재현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궁궐 장식에 담긴 의미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을 이해하고, 문화재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궁궐, 조선을 말하다』는 ‘공간과 행위의 관계’를 통해 궁궐을 읽는 작업을 지속해온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조재모 교수가 ‘체제’의 관점에서 궁궐을 탐독한 책이다. ‘어떻게 사용하려고 만들었는가’와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조선의 제도와 이념이 궁궐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하였다. 건축을 읽기에 앞서 궁궐의 의례 문제와 그 속에서 살아간 왕실 사람들의 존재를 살피며 궁궐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이를 토대로 의례와 궁궐 건축이 주고받는 관계에 주목하며 궁궐의 배치, 공간 구성 등의 물리적 실체로서 건축 공간을 이야기하였다. 나아가 절대 권력의 취향, 근대화, 외세의 영향력 등 궁궐 운영의 규범에 균열을 낸 욕망과 그로 인한 건축적 변모를 조망하였다.

『조선 궁궐의 주거공간』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 덕수궁 등 조선 궁궐의 주거공간을 상세하게 살펴보는 책이다.


  • 조선시대 궁궐과 그 의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홍순민, 『홍순민의 한양읽기: 궁궐(상)』, 눌와, 2017.
홍순민, 『홍순민의 한양읽기: 궁궐(하)』, 눌와, 2017.
황인희, 『궁궐 그날의 역사』, 기파랑, 2014.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2010.


『홍순민의 한양읽기: 궁궐』에서 저자는 그저 궁궐에 가서 보이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궁궐의 옛 모습을 그려내어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했다. 빈터도 흔적이기에 그곳에 있던 건조물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도록, 현재 모습을 뛰어넘어 옛 모습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도면과 그림, 사진 등 시각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 상권은 궁궐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에 해당한다. 궁궐이 자리한 서울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해 궁궐이 어떤 곳이었는지, 어떻게 짜인 공간이었는지를 설명한다. 궁궐의 역사를 따라가며 각 궁궐의 탄생과 운영, 변천까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한편, 책의 말미에는 궁궐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통문화에 대한 기본 관념 해설을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하권은 서울의 다섯 궁궐을 돌아보는 답사를 위한 안내로 구성되었다. 저자의 시선이 임금과 신하들이 머물렀을 위엄 있고 화려한 전각들뿐만 아니라 궁궐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는 우물과 담장에도 미치고, 이미 건물이 사라진 빈터에서도 궁궐이 본래 기능을 하던 때의 모습을 그려낸다. 왜곡과 파괴의 상처에는 날카로운 비평을, 옛 모습을 잘 지키고 있는 곳들에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각 궁궐의 현황 지도, 《동궐도형》과 《북궐도형》을 바탕으로 경술국치 이전 궁궐들의 전각 배치와 현재의 현황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를 실었다.

『궁궐, 그날의 역사』는 옛날 궁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동선을 쫓아 5대 궁궐의 이곳저곳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도처에 스며있는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역사적 체취가 남아있는 유적의 사진뿐 아니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현대 기술로 섬세하게 복원한 궁궐들의 새로운 사진들까지 함께 실어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사상과 이념은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궁궐에 담겨있다. 『우리 궁궐 이야기』에서는 우리나라의 궁궐을 원색의 사진과 함께 살핀 책. 궁궐 그 자리와 짜임새, 궁궐의 역사, 답사를 하는 뜻을 설명하고 경운궁, 경희궁,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등 5개 궁궐을 샅샅이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