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노비는 노예인가 농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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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노비는 노예인가 농노인가

조선 전기 신분은 네 계층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는 신분이 양인(良人)천인(賤人)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양인은 자유민으로 국가에 조세와 역을 부담할 의무가 있는 대신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천인은 대부분 개인이나 관청에 소속된 노비였으며, 이들은 자유롭지 못한 신분이었다. 조선 사회가 점차 안정되면서 양인천인을 바탕으로 하는 법적인 신분제도는 지배층인 양반중인, 피지배층인 상민천민이라는 네 계층으로 정착되어 갔다.

양반은 조선의 지배 신분층으로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했으며,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한 지주층으로 지방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였다. 각종 특권을 보장받았으며 국역을 면제받았다.

중인은 좁은 의미로는 역관, 의관 같은 기술관을 의미하며, 넓은 의미로는 양반상민의 중간 계층을 뜻하였다. 이들은 양반에 비해 차별받았으나, 전문 기술을 갖고 있거나 행정 실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지배층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양반의 후손이면서도 정실의 소생이 아닌 서얼은 중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상민은 평민, 양민이라고도 하며, 생산을 담당하고 세금을 내는 계층으로 농민과 상인, 수공업자 등이 해당되었다. 이들은 법적으로 교육을 받고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있었지만, 실제 과거에 응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상민의 대부분은 농민으로 국가에 토지세인 전세를 내고 마을 단위로 부과되는 특산물인 공납을 바쳐야 했으며,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군복무의 의무까지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수공업자는 주로 관청에 등록되어 주요 물품을 생산하였고, 상인은 국가의 통제 아래 상업에 종사하였다.

최하층 신분인 천민은 대부분 노비였다. 가축을 도살하는 백정, 재주를 부리는 광대, 무당과 기생 등도 천민에 속했다.

노비는 왕실이나 국가 기관에 소속된 공노비와 개인에게 소속된 사노비로 구분되었다. 사노비는 주인집에서 함께 사는 솔거노비와 주인집에서 나와 따로 사는 외거노비가 있었다. 외거노비의 경우 비교적 자유롭게 생업에 종사하면서 재산을 모을 수 있어, 경제적으로는 상민의 처지와 비슷한 면도 있었다.

신분 간의 계층 이동

조선 후기에 들어와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고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부유한 농민과 상인 등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축적된 부를 이용하여 양반 행세를 하였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 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발행하였던 공명첩을 구입하거나 납속, 족보 매매 등을 통해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시켰다. 그 결과 양반은 급격하게 늘어난 반면, 상민노비는 감소하였다.

양반의 수가 늘어나기는 했어도 중앙 권력을 차지한 양반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 양반은 향촌에서 세력을 겨우 유지하였으며, 일부 양반은 몰락하여 농민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었다. 반면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을 수행하였던 중인 중에서 축적한 재산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한 이들이 생겨났다. 18세기 이후 노비 가운데 재산의 축적으로 통해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 시기 정부에서는 ‘노비’라는 명칭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결국 1801년에는 중앙 관서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6만 6천의 공노비를 해방하였다. 노비 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노비의 지위

조선의 전체 인구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30% 정도였다. 조선의 노비는 재산으로 간주되어 매매, 증여, 상속할 수 있었다. 주인이 마음대로 형벌할 수 있었고 심지어 관청의 허가를 받으면 죽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노비를 고대 유럽의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판단하고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기도 한다. 조선노비는 노예라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중세 농노에 가까운 신분일까?

노예는 토지를 소유할 수 없지만, 농노는 제한적이나마 토지를 보유했다. 노예는 가족을 갖기 어려웠지만, 농노는 가정을 이루어 생활할 수 있었다. 조선노비에게는 원칙적으로 토지 소유권이 없었으나 노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거노비의 경우 실제로 토지와 가옥을 소유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렇게 모은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었다. 심지어 노비노비를 소유한 경우도 있었다. 외거노비의 경우 주인의 호적 외에 별도의 호적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다. 세조 때는 노비 주인이 노비의 재산을 함부로 침탈하지 못하도록 나라에서 정했다는 기록도 있다.

경국대전』에는 공노비가 출산할 경우 80일의 휴가를 주고, 그 남편에게도 산후 보름 동안의 휴가를 준다는 규정이 있다. 또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산후 1백일 안에는 사역을 시키지 않으며,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잘 시행되었는지 여부를 떠나 노비의 법적인 처우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신분을 바꾼 노비들

노비의 법적, 사회적 지위는 일반 양인에 비해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으며,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도 적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노비 중에는 양인과 비슷하거나 양인보다 훨씬 나은 지위를 가진 이들이 존재했으며,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노비들도 분명 존재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재산을 크게 늘리거나 신분을 향상시킨 노비의 기록이 곳곳에 보인다.

태종 때 '불정'이라는 노비가 있었다. 그는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는데, 어전회의에서 불정이 축적한 부에 대해 거론하면서도 그가 노비 출신이라는 점은 문제 삼지 않았다. 이를 보면 상업을 통해 큰돈을 버는 노비들이 조선 초기부터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세조 때에는 쌀 100가마니를 내고 국경까지 직접 운반하는 노비에게 신분을 상승시켜 준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노비들이 신청하는 바람에 당황한 조선 정부는 2개월 만에 취소 결정을 내렸다. 그만큼 부유한 노비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학문의 영역에서 활약한 노비들도 있었다. 반석평(潘碩枰, ?~1540)은 노비였는데, 그의 재주를 사랑한 주인이 글을 가르치고 부잣집에 양자로 보내 결국 재상에까지 올랐다. 박인수(朴仁壽, 1521~1592)는 일반적인 노비의 길을 거부하고 공부에 전념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주변 선비들도 그의 학문적 깊이를 인정하여 존경하였으며, 제자들도 거느렸다. 정학수는 성균관노비였는데, 성균관 유생들의 어깨너머로 학문을 익혔고,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어 많은 양반 자제들을 제자로 둔 유명한 선생이 되었다.

이처럼 조선노비 중에는 노예와 같은 처지의 노비도 있고, 농민과 비슷한 처지의 노비도 있었다. 조선노비는 노예와 농노, 어느 하나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모습을 갖춘 신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조선시대 신분제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성무, 『조선초기 양반연구』, 한국학술정보, 2001.
한영우,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 집문당, 1997.
김두헌, 『조선시대 기술직 중인 신분 연구』, 경인문화사, 2013
지승종, 『조선전기 노비신분연구』, 일조각, 1995.
김영모, 『조선·한국 신분계급사』, 고헌출판부, 2014.


『조선초기 양반연구』에서는 조선시대의 신분구조를 4계층, 즉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누었고, 그 가운데 양반의 지위, 군역, 토지 소유 등에 관해 연구한 책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조선 초기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하여 조선시대의 신분구조를 이분법으로 구분한 ‘양천제’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의 저자는 대표적인 양천제를 주장하는 학자이다. 이러한 여러 논의들이 있으나 아직 통설로 확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현 교과서에는 4개의 신분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술직 중인 신분 연구』는 중인의 기원, 형성 시기와 요인, 잡과와 주학 입격, 운학 생도방과 역학 생도방 피천 및 완천, 양반으로의 신분 상승 여부 등 중인의 기원부터 발달까지의 전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책이다. 당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조선전기 노비신분연구』는 조선전기의 노비신분을 여러 주제로 나누어 사회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조선·한국 신분계급사』는 신분, 계급 및 지배층에 관한 쟁점을 먼저 소개하고 또한 저자가 그동안 발표한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한말, 일제시기 및 해방 후 한국의 신분계급사를 재구성하였다. 또한 이와 관련된 최근의 논문을 추가하여 조선·한국 신분 계급사를 설명하고 있다.


  • 신분제의 변동에 대해 알고 싶다면....
최승희, 『조선후기 사회신분사연구』, 지식산업사, 2003.
이홍두, 『조선시대 신분변동 연구』, 혜안, 1999.


『조선후기 사회신분사연구』는 임진왜란 이후 급격하게 변화된 사회상과 아울러 변화된 신분제도를 다룬 책이다.

『조선시대 신분변동 연구』는 조선후기 천인의 신분상승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신분변동을 고찰한 연구서이다. 조선후기 천인 신분변동의 문제, 보충대를 통한 천인의 신분변동, 장용대를 통한 신분변동, 군공논상을 통한 천인의 신분변동, 무과를 통해본 천인의 신분변동 등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