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제도: 동아시아 외교질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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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제도: 동아시아 외교질서의 이해

조공과 책봉-외교적 형식

조공(朝貢)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 속에서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예물을 바치던 행위 또는 그 예물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국은 주변 국가의 왕에게 직책을 내려주는 ‘책봉(冊封)’과 하사품으로 답례를 하였다.

이런 관계는 중국 고대 주나라 때에 귀족들에 대해서 시작되었다. 중국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조공책봉이 적용된 것은 한나라부터이며,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국제질서로 자리 잡은 것은 당나라부터라고 볼 수 있다. 명·청 시기까지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책봉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는 계속 유지되었다.

조공책봉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중국 주위 국가들이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고, 중국은 주변 국가들을 종속국으로 거느린 듯한 인상을 준다. 조공 책봉으로 형성된 중국을 둘러싼 국가간의 미묘한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전근대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국의 속국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러하였을까?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들이 중국과 교역을 할 때조차 형식적으로는 조공 무역의 형태를 띠었다. 그렇다고 유럽의 국가들을 중국의 속국으로 볼 것인가? 실제로는 제국주의 시대 중국이 유럽 국가들의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음을 생각한다면 조공책봉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면만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 무역이었던 조공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 책봉관계는 약소국인 주변국이 자국의 안전을 위하여 중국과 공식적인 교류를 통해 중국의 침략을 막으려는 외교정책이었다. 중국에게 조공하고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것은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된다는 의미였으며 중국과 경제적, 문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한 국제무역이기도 했다. 중국을 조공을 바치는 나라에게 그 몇 배의 하사품을 내려주곤 했는데, 이를 통해 중국과 주변국의 무역이 이루어졌다. 주변국이 중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외교로 조공책봉을 택했듯이 중국 역시 주변국의 중국 침략을 막고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막대한 하사품을 내려준 것이다. 심지어 과도한 하사품이 중국의 재정을 압박하자 중국이 주변국들에게 조공을 제한하고 주변국은 오히려 조공을 주장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하사품 외에도 공식적인 사절단을 따라 온 상인들을 통해 대규모의 무역이 이루어졌다. 19세기에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나라가 중국에 통상을 요구할 때도 조공 무역의 형식을 갖추어야 했는데 이는 청나라가 조공 외의 무역 형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공 책봉관계는 한나라 이후 19세기까지 중국의 국가 간 대외 정책의 기본 방침이 되었다. 결국 19세기 이전 만주·몽고·서장(西藏)·안남(安南) 및 중앙아시아 등 모든 주변 나라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중국에 조공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전근대 한국의 대중국 관계도 조공책봉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주변국간에 존재했던 국제 관계의 보편적인 외교 규범을 지키면서 동아시아 외교 체제에 편입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조공책봉만을 두고 종주국에 대한 예속 또는 종속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공식적으로 주고 받는 조공품과 하사품 외에 이를 계기로 이루어지는 사무역 비중도 높았다. 또한 조선은 일본이나 여진으로부터 황이나 말 등을 수입하여 조공을 계기로 중국에 팔고, 중국에서 들여온 물품을 일본이나 여진에 수출하는 중계 무역을 통해서도 큰 경제적 이익을 남겼다.

소중화사상

중국에서 명이 청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조선은 이중적인 태도로 중국을 대하게 되었다. 그 동안 조선과 명나라는 양국이 건국되는 초기부터 조공 책봉으로 국교를 맺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더욱이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지원병을 보내준 일도 있어 조선은 명나라에게 은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차지한 청나라는 조선이 오랫동안 오랑캐로 불러온 만주족의 나라였다. 조선은 청나라와 병자호란 등 두 번의 큰 전쟁에서 패배하며 청나라에 항복을 한 후 청과 조공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조공 책봉이라는 전통적인 국제질서에 편입되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조선이 청을 비롯한 동아시아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 더 나아가서는 조선이 문화적으로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우월감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이라고 한다. 중국조차 문화적 후진국으로 본 조선의 문화적 자긍심은 19세기와 20세기에 조선의 근대화를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은 중국이라는 강대국과 수천 년간 국경을 맞대면서 중국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적인 국가를 지켜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공책봉은 한국이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되어 있음을 의미하긴 하지만, 형식적인 면만을 보고 한국이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거나 중국의 속국으로 취급하는 것은 수천 년간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국가의 독립성을 지켜온 한국의 역사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동아시아 외교질서인 사대와 조공의 개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춘식, 『사대주의』, 고려대학교출판부, 1997.
박충석, 『한국정치사상사』, 삼영사, 2010.


과거 동아시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만이 정치·군사적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고 수많은 이적(夷狄)의 민족도 중원을 지배하여 왔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중국의 주변국은 중원의 이적왕조를 중심으로 조공과 사대의 관계를 매개로 차등적 국제관계를 수립하여 왔다. 따라서 조공과 사대를 사이에 둔 차등적 국제질서의 형성은 중국 위주인 것만도 아니었고 또 종주국의 위치도 중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대주의』에서는 과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였던 조공과 사대를 연구하는 경우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 민족을 포함한 동아시아적 입장과 시각에서 검토, 연구되어야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국정치사상사』는 한국정치사상사에 대한 이해, 한국정치사상사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담고 있다. 3장의 3절에는 국제질서관념으로 ‘사대’와 ‘중화’를 설명하고 있다.


  • 조선의 대중국 외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신태영, 『조선과 명의 문명교류사』, 폴리테이아, 2015.
김성근, 『조·청 외교관계 변화연구』, 한국학술정보, 2010.
김순자, 『한국 중세 한중관계사』, 혜안, 2007.
동북아역사재단, 『한중일 학계의 한중관계사 연구와 쟁점』, 동북아역사재단, 2009.


『조선과 명의 문명교류사』는 조선과 명의 문명 교류에 대해 살펴본 책이다. 양국 관계의 중요 부분을 선별하여 종합하고, 두 세계가 어떠한 방법으로 교류했으며 성과를 이루었는지 살피어 그 대체적인 현황과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의 2장에 주목해보면, 양국의 책봉과 조공 정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실제적인 양국의 교류 양상도 살펴볼 수 있다.

『조·청 외교관계 변화연구』는 조공책봉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조선과 청의 외교관계를 연구한 저서이다. 명ㆍ청 교체기 전후인 17세기부터 청일전쟁 직후 19세기 말까지를 중심으로, 조청 조공책봉관계의 변화과정을 특징별로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각 단계별로 그들의 내재적 발전변화의 원인, 특징과 의미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한 조청 외교관계의 기본적 실상과 변화특징을 다루고 있다.

『한국 중세 한중관계사』는 한국 중세의 한중관계사를 연구한 책이다. 중세 한중관계사 중에서도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초까지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중세 한중관계사의 추이를 국내외 정치변동과 연관시키면서 살펴본다. 여말선초에 원ㆍ명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각 사건들을 고려ㆍ조선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질서 혹은 대중국정책과 원ㆍ명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질서 혹은 대고려(조선)정책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역사상 한국과 중국은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교섭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비추어 한중관계사의 연구는 그 특성상 상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기술이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중관계사의 연구가 한국사와 중국사 어느 쪽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였던 주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와 중국사의 연구가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여 볼 때, 양자 간에 이루어진 교류와 교섭의 양상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한중일 학계의 한중관계사 연구와 쟁점』은 거의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쌓은 한중관계사 연구를 시대별로 나누었다. 또 한국학계와 중국학계의 연구를 논하기 위해서 일본학계의 연구도 언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5인의 한국사 연구자들이 이 과제를 맡아주었다. 아울러 역사상 한중관계의 이해와 관련해서 중국학계의 연구경향도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중국학계가 어떤 관점에서 무엇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가, 그 흐름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등의 검토는 한국과 일본학계의 연구 경향과는 별도로 앞으로의 한중관계사 연구가 관심을 두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인의 중국사 연구자가 근대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나누어 검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