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조선의 사상적 기초를 이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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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조선의 사상적 기초를 이뤄내다

백성의 삶을 보며 피워낸 개혁 의지

문신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개국 공신이며 새 나라의 사상적 기초를 이뤄낸 학자이다. 고려 말에는 성균관박사, 태상박사 등의 직책을 얻어 정몽주와 함께 명륜당에서 성리학을 수업, 강론했다. 1375년 권신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 배명 정책에 반대해 맞서다가 전라도 나주목 관하의 거평부곡(居平部曲)에 유배되었다. 1383년 9년 동안의 유배와 유랑 생활을 청산하고 이성계(李成桂)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성계는 동북면도지휘사로 있었는데 정도전이 함주 막사로 찾아가서 만나게 된 것이다.

정도전은 고려 말기 9년 동안 유배와 유랑 생활을 하면서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런 배경에서 역성혁명에까지 이어지는 강력한 개혁 의지가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개혁을 위해 이론을 마련하고 그 이론을 제도로써 정착시켜 사상과 제도에 있어 조선의 기초를 놓은 중요한 인물이다.

조선 개국의 1등 공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자 정도전은 조민수(曺敏修) 등 구세력을 제거하고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는 데 앞장섰다. 한때 정몽주 등 고려 구세력이 그를 탄핵하여 옥에 갇혔다가 유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방원(李芳遠)이 정몽주를 제거한 후 유배에서 풀려난 정도전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을 세우는 주역이 되었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 개국 1등 공신으로 여러 요직을 겸임하여 정권과 병권을 한 손에 넣었다. 1394년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할 때 정도전은 경복궁을 지금의 자리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의견대로 되었다. 궁궐이 다 지어졌을 때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궁궐과 주요 전각의 이름을 지어 올리도록 하였다.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편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가 불러서 군자 만년의 빛나는 복[경복(景福)]을 빈다”라는 시구에서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따왔다고 밝혔다. 또 백성을 다스리는 데 게으름이 없도록 경계하기 위해 정전을 근정전(勤政殿)이라 이름 지었고 임금의 집무실인 편전 사정전(思政殿)은 생각을 많이 하여 슬기로운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고 했다.

민본사상으로 다진 조선경국전

정도전은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 『심문천답(心問天答)』, 『불씨잡변』 등의 철학서를 저술해 고려의 정신적 지주였던 불교의 사회적 폐단과 철학적 비합리성을 비판하였다. 또 성리학만이 정학(正學)임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유교 입국의 사상적 기초를 다졌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1394), 『경제문감』(1395), 『경제문감별집』 등을 통해 자신의 경세론(經世論)을 펼쳤다. 그의 경세론을 요약하면 자작농을 많이 키우고 산업의 공영화를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하며 능력에 토대를 둔 관료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조선경국전』은 이전에 있던 중국의 제도 가운데 좋은 제도를 골라 조선의 통치 규범으로 제시한 책이다. 『주례 周禮』에서 재상 중심의 권력 체계와 과거 제도, 병농일치적인 군사제도의 정신을, 한나라와 당나라의 제도에서 부병제(府兵制) · 군현제(郡縣制) · 부세제(賦稅制) · 서리제(胥吏制)의 장점을, 명나라로부터는 『대명률(大明律)』을 받아들였다.

『경제문감』에서는 재상 · 감사 · 대간 · 수령 · 무관의 직책에 대해 논했고, 『경제문감별집』에서는 군주의 도리를 밝혔다. 고려 말 나라가 가난하고 민생이 피폐하였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정도전은 농업 생산력 증대와 토지 균등 배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성의 수에 따른 토지 재분배와 10분의 1세의 확립, 공업 · 상업 · 염전 · 광산 등의 국영화를 꾀하였다.

정도전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치 제도는 재상을 최고 실권자로 하여 권력과 직분이 분화된 합리적인 관료 지배 체제이다. 그는 통치권이 백성을 위해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본 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는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에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긍정했다. 그런 그의 주장은 이성계가 일으킨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는 데 확실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다.

모함으로 얼룩진 평가

정도전은 1395년 정총(鄭摠) 등과 함께 『고려국사(高麗國史)』 37권을 지어 올렸고 1396년에는 명나라가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자 랴오둥(遼東) 수복 운동에 나섰다. 그러던 중 1397년 9월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제1차 왕자의 난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이복동생들을 죽인 사건이다. 이방원은 역성혁명에 공이 큰 자신은 물론 다른 형들을 제치고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이 세자가 된 데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신덕왕후의 어린 아들이 세자로 책봉된 데에는 정도전의 역할이 컸다. 그는 유교주의적 이상 국가로 신하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신권 정치를 지향했다. 그런데 개국 초기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방원이 왕이 되면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하고 어린 방석을 세자로 세우게 한 것이다.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정도전의 죄명은 무리를 지어 세자 방석(芳碩)과 가깝게 지내 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방원은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는 과정에서 정도전을 제거한 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가 반란을 일으킨 역적이며 왕실 종친을 모함하여 해쳤다고 누명을 씌웠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도전이 죽기 전에 목숨을 구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이방원의 칼에 맞기 직전에 남긴 시를 보면 그 기록은 이방원의 의도적인 폄하로 보인다.

操存省察兩加功 / 조존과 성찰 두 곳에 온통 공을 들여서
不負聖賢黃卷中 / 책 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다네.
三十年來勤苦業 /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 놓은 사업
松亭一醉竟成空 / 송현방 정자 술 한 잔에 그만 허사가 되었구나.
 (정도전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디자인한 전략가, 이이화의 인물한국사)

관련항목

참고문헌

  • 정도전의 생애과 개혁사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한영우, 『정도전』, 지식산업사, 1999.
김용옥,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통나무, 2004.
조유식, 『정도전을 위한 변명』, 휴머니스트, 2014.


『정도전』은 왕조의 설계자인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을 풀어쓴 전기이다. 정도전의 출세부터 3년간의 나주 귀양, 6년간의 유랑생활, 태조 원년 정치적 실권 장악, 한양의 방명을 짓다, 정도전에 대한 사후 평가 등을 싣고 그의 저술과 사회, 정치, 경제사상을 탐구했다.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은 혁명가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을 압축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에서는 정도전의 생애를 복원하고 지금의 정도전을 있게 한 역사적인 세 인물, 정몽주, 이성계, 이방원을 입체적으로 묘사하여 정도전이란 인물을 재해석하고 있다. 또한, 민본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한 정도전의 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이상 사회를 이룩하고자 한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정치는 어떠해야 하며, 철인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 조선의 개국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조열태, 『정도전과 조선건국사』, 이북이십사, 2014.
이성무, 『조선왕조사』, 수막새, 2011.


조선건국사는 바꾸어 말하면 고려 멸망사가 된다. 피를 흘리지 않았을 뿐 무너뜨리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 치열한 암수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에는 무너뜨리려는 자들이 목적을 이루어 냈다. 『정도전과 조선건국사』는 이 사건과 얽히고설킨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조선왕조사』는 조선왕조가 열린 1392년부터 왕조가 멸망한 1910년까지 518년간의 역사를 다루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왕조별로 정리하였으며, 자연 정치사를 중심으로 사회, 경제, 군사, 문화 등을 서술하였다. 주목해서 볼 부분은 이 책의 1장과 2장으로 개국전야와 건국 초기의 사건들을 다루었다.


  • 정도전의 저술과 사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정도전 지음, 김병환 옮김, 『불씨잡변』, 아카넷, 2013.
정도전 지음, 한영우 옮김, 『조선경국전』, 올재클래식스, 2014.
한영우, 『정도전사상의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불씨잡변』은 1398년(태조 7), 삼봉 정도전이 죽기 몇 달 전에 저술한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핵심 논리와 사상적 배경, 그리고 정도전이 보지 못한 불교의 진정한 모습을 살펴보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삼봉의 삶과 사상을 다루고 있다.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이 건국 철학의 정수(精髓)를 담아 태조에게 바친 역저이다. 그의 붓은 문명 개혁의 고전을 만들어 냈고, 그의 칼은 썩은 왕조를 도려냈다. 삼봉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교수는 그를 ‘조선의 설계자’라 칭한다.

『정도전사상의 연구』에서는 고려말 조선초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왕조 건국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정도전의 생애와 저술을 심도 있게 고찰해보고, 그의 사상을 철학·윤리, 사회·정치, 경제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