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을 넘나들었던 해상왕국의 번영, 백제
목차
일본과 중국을 넘나들었던 해상왕국의 번영, 백제
「온조설화」와 「비류설화」
온조왕은 서기 18년에 한강의 중류인 현재 서울 지역에 백제를 건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가 건국되는 과정을 담은 건국설화 두 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이 서로 차이가 있어 흥미롭다. 각각 「온조설화」와 「비류설화」로 전해지는 그 내용은 온조와 비류가 고구려왕 주몽의 아들이며 서로 형제간이라는 부분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온조설화」에서는 백제의 건국을 온조가 주도하여 도읍지를 하남 위례성(서울)에 정하였다고 전하고 있는 반면, 「비류설화」에서는 비류가 백제의 건국을 주도하여 지금의 인천인 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초기 연맹체 단계의 백제를 온조와 비류가 주도하는 부여계통의 집단이 구성하였으며, 그들이 각각 자신을 중심으로 한 건국설화를 전승시키면서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엇이 진짜 백제의 건국설화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설화가 모두 백제 왕실의 계통이 고구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백제는 고구려를 연결고리로 부여와 이어진 계통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의 전성기
백제는 대략 3세기에 접어들면서 차츰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체제와 법령 등을 마련하면서 국가의 통치체제를 형성해나갔다. 백제는 한강유역과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던 목지국을 정복하는 등 점차 세력을 넓혀가게 되었다.
이어 4세기 후반에는 마한의 모든 성읍국가들을 통합하면서 마한 전 영역과 한반도 남서부 전체를 장악하였다. 나아가 375년에는 오늘날 평양 부근으로까지 세력을 확장시켰는데, 이때 백제를 저지하기 위해 출전했던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그 기세가 매우 강성하였다. 이때가 백제의 전성기로 근초고왕의 치세였다.
전성기 때 백제는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서부 전역과 황해도에서부터 대동강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바다건너 일본 큐슈 지방과 요서, 진평과 같은 중국의 해안가 지역으로까지 진출하면서 세력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렇게 삼국 간 경쟁에서 백제는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으며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당연합군에 굴복하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가 대대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백제는 도읍인 하남 위례성이 함락당하고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만다. 이를 회복하고자 6세기 신라와 동맹을 체결하여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성왕 때 일으킨 대대적인 군사작전에서 신라와 연합해 한강 유역을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배신으로 다시 빼앗기게 된다. 그러자 이제는 고구려와 손을 잡고 신라와 맞서게 된다.
이후 6세기에서부터 7세기에 걸쳐 백제는 신라와 치열하게 대립한다. 급기야 격렬한 백제의 공세에 위기를 느낀 신라는 중국의 당나라와 동맹을 체결하고 고구려-백제 동맹체제와 맞서게 된다. 결국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당시 도읍이었던 사비성이 함락당하면서 멸망하였다. 이후 백제의 영토는 당나라의 웅진도독부로 편입되었다가 672년 신라에 완전 귀속되었다.
일본에 전한 백제 문화
전성기 때 바다를 건너 일본과 중국까지 뻗칠 만큼 강력한 해상 세력을 구축한 백제는 일본의 야마토 정권과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게 한자, 불교 및 각종 선진 문물과 기술 등을 전수한 것은 바로 백제였으며, 일본은 백제로부터 전해 받은 문물을 바탕으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고대 시기 한국과 일본은 교류가 긴밀하였으며, 그 흔적들은 지금까지도 일본 곳곳에 유물과 유적으로 남아 있다.
현재 백제의 흔적들은 통치영역이었던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와 전라도 곳곳에 남아 있다. 부여와 공주 같은 백제의 옛 도읍지에는 왕릉과 성곽 등 백제의 유적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를 중심으로 백제의 유적지는 전체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이름으로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 밖에 백제 왕릉에서 출토된 금동대향로와 금관, 금귀고리와 여러 장신구들이 국립공주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다. 특히 도굴이 되지 않은 채 발견된 공주의 무령왕릉에서는 엄청난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백제 문화의 화려함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백제의 초기 도읍지였던 하남 위례성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등에 대한 발굴과 보존의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백제의 대외 진출과 교류 활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양기석, 『백제의 국제관계』, 서경문화사, 2013. |
• 노중국,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 지식산업사, 2012. |
• 중앙문화재연구원, 『마한·백제인들의 일본열도 이주와 교류』, 서경문화사, 2012. |
『백제의 국제관계』는 백제의 대외 진출과 국제적 활약의 내용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왜, 즉 일본과의 관계와 교류의 내용에 무게감을 두고 있지만, 그 외 전반적인 국제 교류와 진출의 양상, 백제 문화의 국제성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어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제3장에서는 백제인들의 일본 이주와 문화 교류의 양상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는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의 내용을 매우 정밀하고 방대하게 분석하여 소개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백제 대외관계에 대한 시기 구분을 시도하면서 그 항해로와 교섭관련 용어들을 정리해놓고 있어 매우 유용하다. 더불어 백제 사신단의 종류와 조직, 규모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어 특징적이다. 이 책은 백제라는 국가 전시기의 총체적인 대외 관계 양상과 내용을 매우 세밀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백제의 주요한 전쟁과 전환적 사건역시 대외 관계적 관점에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어 흥미롭다.
『마한·백제인들의 일본열도 이주와 교류』는 백제를 일본과 연결시켜 보려는 시각들이 많은 가운데 그 이주와 교류의 면면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책이다. 특히 일본인 학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제5장에서는 큐슈 지방에 형성된 백제인 촌락의 특징을 소개하였고, 제6장에서는 일본의 키나이(畿內) 지역에 정착한 백제인의 생활을 분석하고 있어, 백제와 일본의 교류 실체를 확인시켜 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백제의 신화와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이내옥, 『백제미의 발견 : 백제의 미술과 사상, 그 여덟 가지 사유』, 열화당, 2015. |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백제의 문화와 생활』, 충청남도역사문화원, 2007. |
• 백제문화개발연구원, 『백제의 신화와 제의』, 주류성, 2006. |
『백제미의 발견』은 8개의 백제 문화 유산과 유적을 주제로 이것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문화유산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겨진 백제인들의 사상과 의식체계들에도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어 보다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백제의 문화와 생활』은 백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생활상을 총체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 책에는 백제의 언어, 문학, 한문의 수용, 신화와 설화, 음악과 무용, 식생활과 의복생활 등등 백제인의 삶에 모습과 관련한 아주 세밀한 내용들을 담겨져 있다. 특히 제3장의 3절에서는 백제인들의 풍속을 소개하면서 생활풍속과 놀이, 장례풍습들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백제인의 생활상을 복원하고 이해하는 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백제의 신화와 제의』는 『삼국사기』에 온조와 비류의 상이한 전승으로 소개되는 백제 건국 신화와 관련한 다양한 해석과 견해들을 분석하고 소개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 사서에서 전승되는 백제 건국 신화도 함께 소개하면서 이를 고구려와 신라의 신화와 비교하여 의미를 도출해 내고 있다. 특히 신화를 통해 분석한 백제인들의 정신세계를 국가 제의와 연결해 설명함으로써 백제인의 의식의 총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6장에서는 국가 제의뿐만 아니라 부안 죽막동의 제사 유적지와 같이 지방사회에서 진행된 제의도 함께 분석하여 흥미를 주고 있다.
- 백제의 멸망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이재준, 『백제멸망과 부흥전쟁사』, 경인문화사, 2017. |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7. |
• 양종국, 『백제 멸망의 진실』, 주류성, 2004. |
『백제멸망과 부흥전쟁사』는 나당연합군의 침략으로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 백제의 부활을 목표로 백제부흥군이 결성되어 활동했던 내용 전반을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특히 제1장에서는 당군의 침공로와 백제의 전략을 소개하고, 나머지 4개의 장에서 백제부흥군의 활동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백제 멸망과 부흥군의 활동에 대해서 그 원인과 내용, 역사적 의미들을 세밀하게 정리하여 소개함으로써 이 시기에 대한 정제된 지식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은 의자왕 말기 백제 내 정치상황을 설명하면서 백제 멸망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시기 태자를 교체하는 상황은 정치적으로 혼란을 야기시켰으며, 이것은 백제 멸망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또 주류성과 임존성에서의 활동으로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던 백제부흥운동기의 활동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백제 멸망의 진실』은 백제 멸망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기존의 시각과 해석에 대비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해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멸망기 백제의 정세와 의자왕에 대한 평가에 주목하고 있고, 그 이해의 새로운 접근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의자왕과 함께 태자 부여융이라는 인물 개인에 주목해 집중적으로 분석을 시도하고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