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의 침략 속에서 자주성을 지켜낸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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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침략 속에서 자주성을 지켜낸 고려

몽골, 세계를 휩쓸다

강화도 고려 궁터 정문(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13세기 초, 동아시아에는 몽골이라는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1206년 칭기즈칸은 중앙아사아의 여러 유목민족을 통합하여 몽골제국을 세웠다. 칭기즈칸과 그 후계자들은 강력한 기마병을 앞세워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였다. 순식간에 중앙이사아를 휩쓸고 이란을 거쳐 바그다드를 정복하였고, 금나라와 남송을 무너뜨려 중국을 차지하였다. 유럽까지 쳐들어간 몽고군은 러시아를 거쳐 헝가리와 폴란드까지 짓밟았다. 고려 또한 세계를 휩쓰는 몽골의 폭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몽골군이 고려에 처음 들어온 것은 1218년이었다. 이때는 별다른 충돌 없이 고려와 외교관계를 맺고 돌아갔으나 1231년 8월,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칸은 장군 살리타이를 앞세워 고려를 침략한다. 고려가 국경 근처에서 공격을 버텨내자 살리타이는 성을 우회하여 바로 고려의 수도 개경을 포위하였다. 당시 고려를 이끌던 무신정권은 몽골군에게 항복하였으나 몽골군이 물러가자 바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계속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이후 약 40년 가까이 고려는 몽골군의 계속된 침략으로 고난을 겪었다. 몽골은 1260년 국호를 대원대몽골국으로 바꾸면서 원나라가 되었다.

고려, 몽골에 굴복

고려의 민중들은 몽골의 침략에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처인성과 충주에서는 평민과 노비로 구성된 민군이 몽골군대를 물리쳐 철수시키는 등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40년 가까운 전쟁 기간 동안 고려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몽골군에게 잡혀 노비로 끌려갔고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무신정권은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몽골과의 전쟁을 주장했다. 결국 항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후에 고려는 몽골에 항복하였다. 항복을 끝까지 반대하는 무신들은 ‘삼별초’라는 조직으로 뭉쳤다. 그들은 강화도, 진도, 제주도 등지로 주둔지를 옮기며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게 진압될 때까지 몽골군에게 저항하였다.

고려는 몽골에게 결국 항복하였으나, 유례없는 저항의 대가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몽골제국에 편입되었으면서도 고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인정받은 경우는 고려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려가 당한 굴욕

기황후를 모티브로 한 TV 드라마

비록 독립성을 약속받았다고는 하나 고려 역시 몽골제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고려몽골제국의 간접 지배 하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고려왕들은 몽골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왕의 이름을 ‘충(忠)’으로 시작해야 했고, 몽골의 왕족들을 왕비로 맞아 사위 나라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또 몽골의 일본 원정에 동원되기도 하고 고려 영토의 일부를 불법적으로 빼앗기기도 하였다. 한반도 남쪽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몽골황제의 말을 키우는 방목장이 되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까지 제주도에는 말 산업이 발달해 있다. 또한 고려의 젊은 여성을 공녀라는 이름으로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공녀 중 한 사람은 원나라 기황후(奇皇后)가 되었다. 그녀는 원나라 역사상 유일한 이민족 황후였다.

한편 고려의 독립성을 인정하겠다는 몽골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고려를 몽골의 한 지역으로 편입시키려고 하거나 고려왕을 마음대로 바꾸려는 시도도 거듭되었다. 충선왕은 나라를 떠나 티벳 등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고, 충렬왕은 강제로 왕위를 양도해야 했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문화

고려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성을 지켜냈고 몽골이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영토를 차례로 수복하였다. 고려의 공민왕은 1356년 몽골이 불법 점유해오던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마지막 몽골세력을 고려 땅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리면서 고난을 겪었으나 그 고난으로 인해 얻은 것도 있다. 불교의 힘으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8만 1천개가 넘는 경판의 규모도 놀랍지만 목판에 새긴 글자의 아름다움과 정확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목판인쇄물은 그 경판을 보관하는 창고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또한 고려인은 수십 년에 걸친 외세의 침략과 연이은 수난으로 고통 받으면서 새로운 역사인식을 갖게 되었다. 몽골이라는 다른 민족과의 대립 속에서 ‘우리’라는 역사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모든 고려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보고 한반도의 첫 지배자였던 ‘고조선’의 ‘단군’을 그 시조로 보는 것이다. 고려의 멸망 이후 새롭게 건국된 나라의 아름을 ‘조선’으로 붙인 것은 그러한 역사인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고려몽골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의 침략을 받아 항복을 했고, 100여 년간 그 지배권 내에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인의 끈질긴 저항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몽골제국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박덕규, 『중국 역사 이야기 11(원나라)』, 일송북, 2006.
티모시 브룩,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 너머북스, 2014.
오타기 마쓰오 지음, 윤은숙 외 옮김, 『중국의 역사 대원제국』, 혜안, 2013.


『중국 역사 이야기 11(원나라)』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정복자로 꼽히는 몽골제국의 흥망성쇠를 살펴본다. 서열화된 계급제도, 한족의 사상을 공부하고 그 문화를 수용한 정책, 라마교의 번성 등 원나라의 독특한 사회 현상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몽골제국의 정치경제적 제도의 기초를 세운 야율초재, 수시력의 주창자 곽수경, 중국에서의 경험을 유럽에 전한 마르코 폴로 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은 13세기와 17세기, 드라마틱한 외세 침략 사이에 존재했던 중국의 실체를 규명한 책으로, ‘환경’이라는 낯선 이슈로 중국의 원-명 시대를 한 권에 담은 책이다. 결코 환경결정론으로 치우지지는 않았지만 원의 심각한 자연재해가 정력적인 쿠빌라이의 치세 때에는 나타지 않았다가 그의 사후, 즉 원 중기 혼란한 정치적 변동기에 시작되는 등 환경적 접근을 근간으로 하였다. 독재 정치의 성장과 복잡 다양한 사회상 및 상업화를 탐구하는 동시에 광범위한 남중국해 경제체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중국의 역사 대원제국』은 대원제국의 통치대상이 되었던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중국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기존의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문명사적 자화상들이 몽골의 역동적 힘에 의해 철저히 흔들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원제국』은 크게 몽골제국 성립 이전의 거란, 여진 등의 북방왕조, 몽골제국의 성립과 중국 지배과정, 그리고 대원제국의 중국 통치 양상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눠서 서술되어 있다.


  • 몽골의 고려 지배 및 고려와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김호동,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5.
이영미, 『13~14세기 고려 몽골 관계 연구』, 혜안, 2016.
윤용혁, 『삼별초 무인정권 몽골, 그리고 바다의 역사』, 혜안, 2014.


『몽골제국과 고려』는 두 가지 상이한 지위를 가진 국가의 병존이 어떻게 가능하며 또 그것이 고려의 정치적 위상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탐구한 책이다. 대칸 뭉케 사망 직후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가 제위를 두고 경쟁을 벌이면서 별도의 쿠릴타이를 개최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양인의 대립이 군사적 충돌로 발전되어 그 구체적인 대결과정을 분석하되, 쿠빌라이가 승리한 요인들에 대해 이제까지 학계에서 제기된 설명들이 과연 만족스러운 것인가를 살펴본다.

『13~14세기 고려 몽골 관계 연구』는 13~14세기 고려·몽골 관계의 특징과 그것이 고려의 정치·권력구조에 미친 영향을 그 관계와 권력구조의 중심에 있었던 고려국왕의 위상 변화를 통해 설명한 책이다. 구체적인 예로 전통적인 ‘고려국왕’의 위상에 정동행성승상·부마와 같은 상황들이 몽골과의 관계에서 부가되었다. 이로 인해 몽골·몽골황제와의 관계에서 갖는 속성들이 고려국왕권에 이입되는 과정과 그럼으로써 세 가지 위상의 총체로서의 고려국왕 위상 변화의 내용을 분석하여 그 맥락과 의미를 밝혀냈다.

『삼별초 무인정권 몽골, 그리고 바다의 역사』. 삼별초는 대 몽골전쟁 직전에 성립하여 몽골의 침입에 저항한 가장 중추적 집단으로 존재하였다가, 몽골의 고려 지배가 실현되면서 소멸된 운명적 존재였다. 삼별초의 수명은 44년, 그것은 고려의 항몽전쟁 43년 세월과 사실상 그대로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고려-몽골간 여몽전쟁과 삼별초 관련 연구 전공자인 저자 윤용혁 교수는 이 책에서 삼별초에 대해 논란이 되었던 여러 쟁점들을 정리하면서 우리 역사에서 삼별초를 어떤 위치에 둘 것인지를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