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목차
독립운동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다양한 형태로 일본에 맞서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한일병합조약을 발표함으로써 한민족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35년 동안 한민족은 일본의 강압적인 지배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민족의 지도자들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라 안에서든 나라 밖에서든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많은 힘을 쏟았다. 당시 세계사의 흐름에 그런 노력이 더해져 1945년 8월 15일 한민족은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독립운동은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1918년 2월 8일, 도쿄에서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는 이듬해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19년에는 독립을 위한 집회와 시위가 국내에서만 1,500회 이상 일어났다. 중국에서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항하여 만주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무장 독립단체들이 생겨나 항일 무장투쟁도 본격화되었다.
안창호의 실력 양성 운동
한일합병조약 전후로 국내외에 수백 개의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이들 학교에서는 단지 신학문교육이 아니라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고취시키는 교육을 병행했다. 대표적인 교육운동가로 안창호를 꼽을 수 있다.
안창호는 교육을 통하여 민족 혁신을 이룩하여 독립을 이루려는 ‘실력 양성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하며 ‘무실(務實)·역행(力行)·충의(忠義)·용감(勇敢)’의 4대 정신으로 자기 개조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 ‘무실’은 참되기를 힘쓰자는 것이며 ‘역행’은 힘써 행하자는 것이다. 그는 점진학교·대성학교·동명학원 등 학교를 세우고 흥사단운동을 통해서 ‘건전한 인격을 가진 애국심 있는 국민의 양성’이라는 교육 이념을 실천하며 독립 운동에 힘썼다.
적극적인 무장 항일 운동
중국에 세워진 임시 정부는 1932년 1월 일본 도쿄에서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 이봉창의 의거, 4월 중국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의 일본군 전승 기념식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과 고위 관리들에게 피해를 안긴 윤봉길의 의거 등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 정부는 일본에 선전 포고를 했다. 임시 정부는 광복군을 만들고 그 힘을 길러 나라 안에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려 작전을 세우기도 했다.
또 중국의 간도와 연해주 지방에서는 독립군 부대가 활약했다. 1919년 3.1운동에 자극을 받은 김좌진 · 김규식 · 이범석 등이 조직한 북로군정서는 북만주 일대 독립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북로군정서는 길림성 왕청현(吉林省 汪淸縣)에 본부를 두고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김좌진이 이끈 독립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전투 중 제일 큰 규모의 것은 청산리 전투이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이 전투에서 독립군은 1,200여 명의 적을 사살하였다. 이는 독립군이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
해외 동포들의 독립 운동
독립 운동은 미주 지역에서도 펼쳐졌다. 해방을 전후하여 미국과 멕시코, 쿠바 등에는 약 1만 명의 동포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펼쳤다. 임시 정부의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미국에서 열리는 여러 국제 회의장에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이승만은 미국에 있는 한인 단체들을 연합하여 워싱턴에 주미 외교위원회를 만들었다. 중국에 있던 임시 정부도 이를 존중하여 이승만을 임시 정부의 주미 외교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직후, 이승만은 임시 정부 주미 외교위원장의 자격으로 미국 국무부에 임시 정부의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승만은, 소련이 한반도에 들어온 후에 벌어질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며 소련을 막기 위해서 임시 정부의 승인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한 편에 서서 전쟁을 치르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1945년 5월, 일본과 한 편에 서서 전쟁하던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였다. 이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미국, 영국, 소련의 정상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만이 한반도의 일본군과 싸우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8월 6일과 9일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두 도시에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은 8월 11일 항복을 결정하였다. 한민족은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군의 활약과 연합군의 승전으로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일본의 식민통치 정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야마베 겐타로, 『일본의 식민지 조선통치 해부』, 어문학사, 2011. |
• 신용하 외 공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나남, 2009. |
• 강만길 외 공저, 『일본과 서구의 식민통치 비교』, 선인, 2004. |
『일본의 식민지 조선통치 해부』는 한국을 식민지로 병합한 이래 시행되어 온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통치와 각종 정책들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식민통치의 핵심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살피고 일본에게 한국병합이 갖는 의의, 식민지배 초기 헌병정치의 내용과 의미 등을 서술하였다. 이어 토지조사 사업과 회사령, 산림령과 같은 각종 정책들의 시행 내용 속에서 일제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살펴보았다. 저자는 3‧1 운동과 노동자 및 농민 운동, 항일무장투쟁이나, 조선어학회 사건과 같이 당시 굵직한 사건과 민족운동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 일제가 어떻게 식민지배의 의도를 관철시켜 나가고 대응해 나갔는지를 밝혀냈다. 일제강점기를 시기별로 나누어 식민정책의 기조와 그 변화 양상들을 가지고 있는 의미 등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특히 말미에 저자에 의해 정리된 일제 식민통치의 총결산과 연표는 시계열적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 양상과 면면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무엇보다 일본인 저술가에 의해 정리된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 정책 분석집이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색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1990년대부터 제기되어 왔던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격의 글들을 묶어 편집한 책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와 그 식민통치가 결국 한민족의 근대화에 토대를 제공해 주었으며,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산업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제 식민지배를 통해 남겨진 유산들을 바탕으로 가능했다는 주장을 말한다. 이는 민족사적 관점에서 일본 식민지배가 한민족의 역량과 발전의 원천을 착취 또는 말살해온 과정이었으며, 이로써 조선시대 이래 자생적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가능했던 한국의 역사가 일제에 의해 좌절된 것이라고 보는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견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이 책은 일제의 식민통치정책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실상을 분석하면서, 정책의 실제, 한민족에 대한 교육에서 확인되는 민족 말살의 의도, 근대화를 표방한 정책 안에 견고하게 뿌리 내린 착취와 수탈의 구조, 전쟁과정에서 나타나는 강제 동원과 탄압의 면면들을 밝히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상을 비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논쟁을 낳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한 균형감 있는 시야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과 서구의 식민통치 비교』는 36년간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시행된 식민통치와 그 정책을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통치와 비교하여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서구의 식민지 경영과 그 경험은 일본에 비해 이미 수세기 앞선 것으로 그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위상과 국력을 지탱하는 힘과 토대를 자국의 식민지를 통해 확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단순히 수탈과 착취만을 염두에 둔 지배의 방식보다는 모국의 일부분으로써 동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측면이 있었고, 일본 역시 일정부분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 이에 이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의 논리를 구성하는 식민사상의 형성과정이 어떠하였고, 그 지배전략과 통치기구의 모습들은 무엇이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이어 일본의 사례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사례와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일본의 식민정책과 내용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주변과 비교하여 함께 검토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균형감 있는 일제 식민지배의 면면을 이해하는 데 좋은 지식을 제공해 줄 것이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윤병석, 『3·1 운동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선언』, 국학자료원, 2016. |
• 한시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역사공간, 2016. |
• 김희곤,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 연구』, 지식산업사, 2015. |
『3·1 운동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선언』은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이끌어 내는 데 있어 중심이 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현과 성립과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이라는 거족적 민족운동의 발발을 계기로 성립할 수 있었으며,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라는 열망과 에너지가 응축돼 그 결실로 이어진 것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3ㆍ1의 전개와 그 활동의 양상을 매우 정밀하게 분석해 내었다. 당시 일제의 문화정치는 실상 식민지배에 저항하던 민족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이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된 것이었으며, 그 에너지를 다시 모아 항일과 배일의 민족운동으로 유인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였음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을 대표하는 정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의 탄압과 방해 속에서도 지속해온 항일과 투쟁의 면면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정리하였다. 특히 마지막에서 대부분 소홀하게 취급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활동과 일제를 향한 독립전쟁의 활동 양상들도 함께 다루고 있어 매우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가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활동과 그 의미를 소개하고 분석한 책이다. 특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한성정부를 수립하고 이끌었던 홍진에 주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전에 한성정부를 세우고 다양한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그 활약과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 홍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국무령으로 선출되어 임시정부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민족의 대결합을 위해 고민했던 내용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 밖에 임시정부의 기반을 마련한 안창호와, 행정수반으로서 김구를 포함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선출과 탄핵의 과정들,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은식의 활동과 임시정부의 혼란을 수습했던 그의 노력들을 같이 소개하였다. 특히 제3부에서는 임시정부의 이론가 차원에서 조소앙과 신익희의 사상과 업적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분석하는 한편, 제4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 군대로서 한국광복군의 면면과 지휘관들을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이 책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서안총사령부 총사령이었던 황학수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발굴하여 분석하고 있는데, 그가 대한제국의 군인에서 독립군, 그리고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밟아온 인물임을 밝혀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 연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그 활동의 면면들을 자세하고 정밀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임을 명확히 하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출범과 같은 성격이었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3ㆍ1 운동을 거쳐 성립된 민주공화정부의 수립이 가지고 있는 세계사적 의의를 밝히는 한편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세계사적으로 어떤 성격과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임시정부이자 민족의 독립운동 중심으로서 이끌어온 그 정통성을 확인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가꾼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김구를 비롯해 안창호와 이동녕, 신규식과 이시영 등의 활동을 자세히 분석하였다. 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시정부 외교활동의 제1선에서 활동했던 박찬익과 학병 탈출 1호로서 한국광복군에 참여해 활약했던 한성수 등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의미가 깊다. 제5장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문서인 「공보」와 다양한 사진자료, 그리고 「윤봉길 판결서」와 「한인애국단원의 심문조서」 등 사료적 가치를 지닌 여러 자료들도 함께 수록하고 있어 주목된다.
- 해방 전후의 정국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신복룡, 『(인물로 보는) 해방정국의 풍경』, 지식산업사, 2017. |
• 심지연, 『해방정국의 정치이념과 노선』, 백산서당, 2014. |
• 이문창, 『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 이학사, 2008. |
『(인물로 보는) 해방정국의 풍경』은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정부 수립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낸 책이다. 저자는 해방이라는 주제 속에서 망국의 책임을 묻지 않는 역사적 태도와 인식을 비판하고, 일제강점기 반민족행위와 기회주의적 활동까지 옹호하고자 하는 왜곡된 역사관을 부정하면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전시회담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한국의 독립문제에 대한 강대국들의 논의과정에서부터, 한반도 분단이 결정되는 과정, 신탁통치를 계기로 좌우익의 격렬한 갈등의 양상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승만과 김구의 애증관계라든지, 청년 맑시스트 김일성의 출현과 그 신화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무엇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통일 논의를 둘러싼 많은 오해들과 허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을 걷어내기 위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 해방전후의 사정과 분단의 과정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해방정국의 정치이념과 노선』은 해방정국에서 활약한 6명의 정치인을 중심으로 그 정치이념과 사상 그리고 노선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승만과 김구, 여운형과 같이 해방정국에서 활동한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주요 활동가들을 배제하고 송진우와, 장덕수, 김규식과 조봉암, 박헌영과 백남운 등을 소개하면서 그 정치적 활동과 사상적 면모들을 분석해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이념이 각자 자리 잡게 된 계기나 과정에서부터, 그 전개와 활동의 내용, 그리고 국내외 정세에 대한 인식 등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다양한 배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결론으로 제출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해방정국에서 체제에 대한 구상과 논쟁이 역사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였음에 주목하고 이들이 모두 신생 독립국가인 한국의 체제에 대한 구상과 논쟁에 일정부분 참여하여 활약했던 인물들이었음에 비춰 그 내면 인식과 외면의 활동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중심에서 살짝 비켜나 있지만 해방정국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이 여섯 인물들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이념과 그 집단인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주목하고 해방정국에서 이들의 활동과 인물의 면면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들이 해방 이후 독립국가로서 한국의 정치체제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이라고 보고 그들이 전개한 반탁의 기조와 각종 정치활동의 내용들을 소개하며 분석하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고 압박하는 체제와 구조에 대한 혁명이라고 인식하고 다양한 활동에 힘을 기울였음을 밝혀내고 있다. 나아가 농촌자치연맹과 노동자치연맹에서부터 전국아나키스트대회, 그리고 남대문시장 자치운동, 한국혁명위원회 발족과 같이 그들이 걸어온 다양한 활동과 움직임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는지 상세하게 분석하고자 하였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흩어져버린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에 아쉬워하면서도 그들이 폐허 위에서 다시 ‘민’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를 추구하면서 이후에도 끊임없이 달려오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이 책은 주요한 관심사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그러나 해방정국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절실하게 활동했던 아나키스트들의 이념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