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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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에 있는 궁궐의 하나로,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이궁(離宮)이다. 창경궁과 함께 ‘동관대궐’ 또는 ‘동궐(東闕)’로 불렸다. 흥선대원군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1]

내용

역사

태종 때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준비를 하면서 1404년(태종 4)에 경복궁 동쪽에 궁궐 조성이 시작되어 1405년(태종 5) 10월에 대체적인 공사가 마무리 되고 창덕궁이라 이름하였다. 처음 창덕궁은 외전 74칸, 내전 118칸으로 지금의 창덕궁의 규모보다는 작았었다. 1차 궁궐의 조성이 끝난 뒤에도 공사가 계속되어 1418년(세종 즉위년) 9월에 완성되었다. 1461(세조 6)에 전각의 이름이 체계적으로 부여되었고, 단종 때와 연산군 때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기도 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창덕궁, 창경궁의 전각들이 대부분 불에 탔고, 그 후 창덕궁을 재건하지 못하다가 1608년 가장 먼저 창덕궁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다. 창덕궁이 주거처지였고, 경복궁이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하다는 의견이 작용되어 경복궁이 먼저 복구되었다. 인조반정이괄의 난으로 수난을 겪은 창덕궁은 1647년(인조 25)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이 때 복구된 건물은 735칸의 대공사로 광해군이 인왕산 아래에 건립한 인경궁의 전각들을 철거하여 그 자재를 사용해 5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화재가 발생하여 전각이 소실되고 중건을 거듭하였다. 1877년(고종 14)년에는 창경궁과 함께 수리 공사를 하기도 했다. 1907년(광무 1)에 순종이 즉위하고 1910년 8월 29일에 한일합방의 조약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이루어져 순종은 ‘창덕궁전하(昌德宮殿下)’로 격하되었다. 1917년 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고종의 장례와 3.1운동으로 중건하지 못하다 1919년에 전각을 서양식으로 절충하고, 경복궁의 건물을 헐어서 중건하게 되었다. 중건이 끝나고 창덕궁 후원의 외진 곳에 창덕궁 선원전을 새로 지어 역대 의 어진을 이봉하고 창덕궁 인정전 서쪽에 있던 창덕궁 (구)선원전은 폐지되었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고, 창덕궁 인정전 등이 전시장 용도로 꾸며지는 등 일제의 궁궐 파괴를 겪게 되었다.[2]

현재

해방 후에 일반인의 관람이 성행되면서 남은 건물들도 나날이 훼손되고 창덕궁 후원의 모습도 크게 달라져 1976년~1978년 사이 대대적인 정비 공사를 하였다.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인정 받아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상례 창덕궁(昌德宮) A는 B에서 거행하였다
책례 창덕궁(昌德宮) A는 B에서 거행하였다
창덕궁 대조전 창덕궁(昌德宮) A는 B에 위치한다
창덕궁 선정전 창덕궁(昌德宮) A는 B에 위치한다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昌德宮) A는 B에 위치한다
창덕궁 장춘헌 창덕궁(昌德宮) A는 B에 위치한다
창덕궁 중희당 창덕궁(昌德宮) A는 B에 위치한다
창덕궁 희정당 창덕궁(昌德宮) A는 B에 위치한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405년 10월 창덕궁이 건립되었다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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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11쪽.
  2.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11~19쪽.
  3. 문화재청 창덕궁
  4. 문화재청 창덕궁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