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희정당
창덕궁 희정당(昌德宮 熙政堂) | |
대표명칭 | 창덕궁 희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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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昌德宮 熙政堂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율곡로 99 |
관련인물 | 경종, 효명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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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창덕궁에 있는 침전이다.
내용
순조 대부터는 정사를 보는 편전으로 이용되었다.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면서 중건을 거듭하였다. 지금 전각은 1920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1]
역사
본래 이름은 ‘숭문당(崇文堂)’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이름을 바꾸었다. 창덕궁 대조전과 회랑으로 이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대조전과 같은 재난을 겪었다. 임진왜란 대 소실된 것을 광해군 원년에 중건하였는데, 인조반정에 다시 소실되었다. 그 후 20년 뒤인 1647년(인조 25)에 인경궁 건물의 자재를 이용해 중건하였다. 1833년(순조 33) 대조전에서 희정당까지 소실된 것을 다음해에 중건한다. 1917년 대조전 서온돌과 나인 갱의실에서 불이 나 대조전과 희정당을 비롯한 내전이 불타면서 내전에 소장된 서적과 귀중품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1920년 12월에 경복궁 전각을 이건해 다시 지었다. 순조 대부터는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아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2]
현재
이전의 희정당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15칸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정면 11칸에 측면 5칸의 55칸 건물로 원래 희정당보다 규모가 커졌다. 경복궁 강녕전을 이전하였기 때문에 강녕전과 같은 크기가 된 것이다. 강녕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865년(고종 2)에 중건한 건물이므로 희정당의 골격은 1865년에 건축된 셈이 된다. 희정당은 앞뒤로 회랑이 연결되어 있어 전면은 궁궐 입구를 통해 들어오게 되고 후면은 선평문을 거쳐 대조전으로 들어가게 된다.[3] 재건된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 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4] 1985년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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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례 | 창덕궁 희정당(昌德宮 熙政堂) | A는 B에서 거행되었다 | A edm:happenedAt B |
효명세자 | 창덕궁 희정당(昌德宮 熙政堂)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경종 | 창덕궁 희정당(昌德宮 熙政堂)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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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6년 | 숭문당에서 희정당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
1784년 8월 2일 | 효명세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책례를 거행하였다 |
1812년 7월 6일 | 경종은 창덕궁 희정당에서 책례를 거행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9954 | 126.992318 | 창덕궁 희정당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율곡로 99에 위치한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7쪽.
-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64~66쪽.
-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8~63쪽.
- ↑ 희정당", 전각 소개,
『문화재청 창덕궁』online , 문화재청. -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 문화재청(http://www.cha.go.kr/)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공준원, 『오궁과 도성』, 세계문예, 2009.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더 읽을거리
- "희정당", 한국의 궁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online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