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哲宗哲仁王后嘉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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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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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哲宗哲仁王后嘉禮都監儀軌 |
주제 | 가례(嘉禮) |
작성주체 | 가례도감(嘉禮都監) |
의례담당자 | 김흥근(金興根) |
작성지역 | 한성부 |
작성시기 | 1852년(철종 3년) |
소장처(원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오대산) |
판본 | 필사본 |
표기문자 | 한자, 이두 |
수량 | 2책 419장(상책 285장, 하책 134장) |
크기 | 46.5×32.6 |
도설 | 19면(상책 4면, 하책 15면)(채색) |
반차도 | 92면(상책)(채색) 총 길이: 약 3,036㎝ |
목차
정의
1851년 철종(哲宗)과 철인왕후(哲仁王后)의 혼례를 치르는 가례(嘉禮)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내용
1849년(철종 즉위)에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철종은 19세의 나이였지만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헌종의 국상을 마치는 해인 1851년(철종 2) 1월 10일에 대왕대비는 전국의 14~18세까지의 처자들에게 금혼령을 내렸다. 윤8월 3일에 초간택, 8월 13일에 재간택, 8월 24일 삼간택을 통해 김문근(金汶根)의 딸이 최종 낙점되었다.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자신의 집안인 안동 김씨에서 며느리를 구해, 효현왕후에 이어 안동 김씨 집안에서 3번째 왕비가 탄생했다. 이후 철종은 9월 19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신부의 집에 청혼서를 보내는 납채, 9월 21일 신부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폐, 가례의 일자를 알리는 고기, 신부를 왕비로 책봉하는 책비는 모두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되었다. 9월 27일 어의궁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오는 친영을 거행하고, 왕비과 술과 음식을 나누는 동뢰를 창덕궁 대조전에서 거행했다. 다음날인 9월 28일 대왕대비에게 조현례를 올리고, 9월 29일 왕대비와 대비에게 조현례를 올렸다. 이날 가례도감의 도제조 김홍근을 비롯한 관리들에게 상을 내림으로써 가례를 모두 끝냈다. 이 책에는 92면의 채색 친영반차도가 실려있다. 전보다 인물 묘사가 커지고 세부 사항이 자세히 그려져 있으며, 전에 없던 깃발도 등장해 현재 남아있는 친영반차도 가운데 가장 길고 화려하다.[1]
목차
상책: 목록(目錄), 좌목(座目), 거행일기(擧行日記), 전교(傳敎), 이문(移文), 내관(來關), 예관(禮關), 감결(甘結), 상전(賞典), 의궤(儀軌), 일방의궤(一房儀軌)
하책: 이방의궤(二房儀軌), 삼방의궤三房儀軌), 별공작(別工作), 수리소(修理所儀軌)
해제
김영인,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의궤 검색,
판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오대산본(奎 13147), (奎 13148), (奎 13149), (奎 1315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2598)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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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철종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철인왕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왕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왕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왕의 대례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왕의 조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왕비의 대례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왕비의 소례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가례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documents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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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 철종과 철인왕후의 가례가 거행되었다 |
1851년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가 편찬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창덕궁 희정당에서 납채가 거행되었다. | ||
37.579468 | 126.991050 | 창덕궁 인정전에서 납폐가 거행되었다. |
37.579468 | 126.991050 | 창덕궁 인정전에서 고기가 거행되었다. |
37.579468 | 126.991050 | 창덕궁 인정전에서 책비가 거행되었다. |
37.574970 | 127.002027 | 어의궁에서 친영이 거행되었다. |
37.581571 | 126.994323 | 창덕궁 대조전에서 동뢰가 거행되었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왕의 행렬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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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계라선전관(啓螺宣傳官) | 왕의 수레 앞에서 바라나 나각을 불어 군악이 시작됨을 알리는 선전관 | 백관의 상복 | |
2 | 은마궤(銀馬机) | 은을 칠한 상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3 | 어마(御馬) | 왕이 타는 말 | 초립(草笠) 황의(黃衣) | |
4 | 전부고취(前部鼓吹) | 행렬의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악대 | 백관의 공복 | |
4 | 전악(典樂) | 악대의 지휘를 담당하던 장악원(掌樂院)의 관원 | 백관의 공복 | |
5 | 승전선전관(承傳宣傳官) | 왕의 뜻을 전달하는 관원 | 백관의 상복 | |
5 | 장축자(掌畜者) | 혼례에서 기러기를 담당한 관원 | 백관의 조복 | |
5 | 별군직(別軍職) | 임금의 호위와 간신(奸臣)을 잡아내는 일을 맡아보던 무관 | 백관의 군복 | |
6 | 일산(日傘) | 의례에 사용한 큰 비단 양산 | 흑건(黑巾) 청의(靑衣) | |
6 | 봉촉(捧燭) | 등불을 든 사람 | 흑건(黑巾) 홍의(紅衣) | |
6 | 근장군사(近仗軍士) | 근위병 | 전모(氈帽) 전복(戰服) 협수 주의(周衣) | |
6 | 중금(中禁) | 액정서(掖庭署) 소속 15세 이하의 심부름꾼 | 흑건(黑巾) 흑의(黑衣) | |
6 | 승전선전관(承傳宣傳官) | 왕의 뜻을 전달하는 관원 | 백관의 상복 | |
7 | 연(輦)-철종(哲宗) | 왕실에서 사용하는 지붕이 있는 가마로, 철종(哲宗)이 타고 있다. | 왕의 대례복 | |
7 | 연배군(輦陪軍) | 왕의 가마를 메는 군사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8 | 청선(靑扇) | 청색 부채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8 | 현무대기(玄武大旗) | 군기(軍旗)인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 뱀에 감긴 거북을 그린 깃발 | 홍건(紅巾) 청의(靑衣) | |
8 | 후전대기(後殿大旗) | 검은 바탕에 청룡과 구름무늬가 있는 깃발 | 홍건(紅巾) 청의(靑衣) | |
9 | 전악(典樂) | 악대의 지휘를 담당하던 장악원(掌樂院)의 관원 | 백관의 공복 | |
9 | 후부고취(後部鼓吹) | 행렬의 뒤에서 연주하던 악대 | 백관의 공복 | |
10 | 집사(執事) | 조선시대 국왕과 왕실을 중심으로 한 각종 의식에서 주관자를 도와 의식을 진행시킨 의식 관원 | 백관의 군복 | |
10 | 별감(别監) | 호위를 맡았던 하급 군관 | 조건(皁巾) 홍의(紅衣) | |
10 | 무감(武監) | 왕을 호위하는 무관 | 초립(草笠) 철릭(帖裏) | |
10 | 무예별감(武藝別監) | 왕을 호위하는 무관 | 백관의 융복 | |
10 | 나장(後部鼓吹) | 행렬의 호위를 담당하는 의금부나 병조의 하급 군졸 | 조건(皁巾) 답호(褡𧞤) 철릭(帖裏) |
왕비의 행렬01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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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홍양산(紅陽繖) | 붉은 양산 | 홍건(紅巾) 청의(靑衣) | |
2 | 고취(鼓吹) | 행렬의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앞길을 인도하는 사람 | 백관의 공복 | |
2 | 전악(典樂) | 악대의 지휘를 담당하던 장악원(掌樂院)의 관원 | 백관의 공복 | |
3 | 부함(負凾) | 함을 지고 가는 사람 | 백관의 상복 | |
3 | 봉촉(捧燭) | 등불을 든 사람 | 흑건(黑巾) 홍의(紅衣) | |
3 | 대함(戴凾) | 머리에 함을 이고 가는 사람 | 당의(唐衣) 치마(赤亇) | |
3 | 시위별감(侍衛别監) | 호위 담당 관원 | 흑건(黑巾) 홍의(紅衣) | |
3 | 보행나인(步行内人) | 걸어가는 궁녀 | 당의(唐衣) 치마(赤亇) | |
3 | 기행나인(騎行内人) | 말을 탄 궁녀 | 전모(氈帽) 장삼(長衫) 치마(赤亇) | |
3 | 귀유치(歸逰赤) | 내시가 되기 전의 어린 내관 | 감투[甘頭] 단령(團領) | |
3 | 나인(内人) | 내인 |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 |
12 | 주장내시(朱杖内侍) | 붉은색 대나무 몽둥이를 들고 호위를 하는 내시 | 백관의 상복 | |
12 | 내시(内侍) | 궁궐에서 음식이나 왕명 전달, 청소 등의 일을 맡아보던 환관 | 백관의 상복 | |
12 | 분오위장(分五衛將) | 업무를 나누어 맡기 위한 별도의 오위장 | 백관의 융복 | |
12 | 금군(禁軍) | 궁궐의 수비와 왕의 호위를 맡았던 군사 | 백관의 군복 | |
12 | 무감(武監) | 왕을 호위하는 무관 | 백관의 융복 |
왕비의 행렬02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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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대향(戴香) | 당의(唐衣) 치마(赤亇) | ||
5 | 내시(内侍) | 백관의 상복 | ||
5 | 봉향(捧香) | 당의(唐衣) 치마(赤亇) | ||
6 | 별감(别監) | 조건(皁巾) 홍의(紅衣) | ||
7 | 연(輦)-철인왕후(哲仁王后) | 왕비의 소례복 | ||
7 | 연배군(輦陪軍)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8 | 무감(武監) | 백관의 융복 | ||
9 | 청선(青扇) | 홍건(紅巾) 청의(靑衣) | ||
10 | 의녀(醫女) | 전모(氈帽) 당의(唐衣) 치마(赤亇) | ||
10 | 상궁(尚宫) |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 ||
11 | 무감(武監) | 초립(草笠) 철릭(帖裏) | ||
12 | 나장(羅將) | 조건(皁巾) 답호(褡𧞤) 철릭(帖裏) |
도감 관원의 행렬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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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사령(使令) | 각 관청의 관원이 부리던 하인으로 호위와 시종을 담당함 | 백관의 융복 | |
1 | 서리(書吏) | 중앙 관아에 근무하던 하급 관원 | 무각평정건(無角平頂巾) 단령(團領) | |
2 | 도감도제조(都監都提調) | 육조의 속아문이나 군영 등에 두었던 정1품 관직으로, 철종-철인왕후 가례의 총책임자는 김흥근(金興根)이었다. | 백관의 조복 | |
3 | 제조(提調) |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없는 관아에 겸직으로 임명하여 각 관아를 실질적으로 통솔하던 직책 | 백관의 조복 | |
4 | 도청(都㕔) | 임시 관서인 도감의 관직 | 백관의 조복 | |
5 | 낭청(郎㕔) | 각 관서에서 차출하여 겸임시켰던 당하관의 실무 담당 관직 | 백관의 조복 | |
6 | 감조관(監造官) | 여러가지 왕실행사의 실무를 감독하는 관원 | 백관의 조복 | |
6 | 감역관(監役官) | 토목과 건축을 담당하는 선공감(繕工監)에 속한 정9품의 관원 | 백관의 조복 |
주석
- ↑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591~593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혼정례』
- 『상방정례』
- 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 신병주,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저, 『조선 왕실의 혼례 이야기』,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11.
- 이성미,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2008.
- 김문식, 신병주 저,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분류별의궤해설집』,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의궤 해제집(3)』,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의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