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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襲)
대표명칭
한자표기
유형 의례
관련개념 흉례(상례)



정의

옷을 펴 놓은 곳으로 시신(屍身)을 옮겨서 시신에 옷을 입히는 의식으로, 사망한 날 거행한다.[1]

내용

요즘에는 ‘수의(壽衣)’라고 부른다. 내시가 손을 씻고 휘장[帷帳] 안에 습상(襲牀)을 설치하고 요[褥]와 자리[席]를 펴고 베개를 놓는다. 옥대(玉帶) 1개,곤룡포(袞龍袍) 1벌, 저사(紵絲)로 만든 답호(褡護) 1벌, 철릭[帖裏] 1벌을 먼저 놓고, 나(羅)로 만든 (團領) 1벌, 답호 1벌, 철릭 1벌, 백초(白綃)로 만든 이두(裏肚) 1벌, 백초(白綃)로 만든 (汗衫) 1벌, 백초(白綃)로 만든 바지[袴] 2벌, 백초(白綃)로 만든 [[버선[襪]]] 1켤레를 놓는다. 그 위에 아홉 겹으로 옷을 입히는데[九稱] 답호를 섞어 사용한다. 또 함(函)에는 망건(網巾)익선관(翼善冠),귀를 메우는 (充耳) 2개, 얼굴을 덮어 싸는 멱목(幎目) 1개, 손을 싸는 악수(握手) 2개, 신[履] 1쌍을 담아 상의 동북쪽에 놓는다.[2]

목욕이 끝나갈 즈음 내시 2인이 상을 마주 들고 들어가 욕상(浴牀)의 서쪽에 놓으면 종친백관이 대행(大行)을 그 위에 옮기고, 습(襲) 즉, 수의를 입히고 이불로 덮는다. 내시가 욕상을 치우고 대행이 누워 있는 상을 한가운데로 옮기는데, 머리가 남쪽으로 향하도록 한하고, 병풍과 휘장을 친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A는 B에 참여하였다
종친 A는 B에 참여하였다
백관 A는 B에 참여하였다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01쪽.
  2. 『國朝五禮儀』 卷7, 「凶禮」 ‘襲’;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99~100쪽.
  3. 『國朝五禮儀』 卷7, 「凶禮」 ‘沐浴’;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99~10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주자가례(朱子家禮)』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 , 2013.
  • 鄭鐘秀, 『朝鮮初期 喪葬儀禮 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