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왕후
{{왕족 정보 | 이름 = 원목왕후 | 원래 이름 = 元穆王后 | 작위 = 고려 현종의 왕비 | 별호 = 숙비(淑妃) · 흥성궁주(興盛宮主)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틀:사망일 틀:Font color | 재위 = | 부군 = 현종 | 자녀 = 없음 | 부친 = 서눌 | 모친 = 이천군대부인 최씨 | 전임자 = | 후임자 = | 시호 = 원목(元穆) | 가문 = 이천 서씨
원목왕후 서씨(元穆王后 徐氏, 생년 미상~1057년 음력 5월 12일[1])는 고려 현종의 제6비이다.
생애
삼중대광내사령 서눌과 그 부인 최씨의 딸로, 본관은 이천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거란과의 외교 담판으로 이름을 떨친 서희이다[2].
1022년(현종 13년) 숙비에 책봉되었으며, 그 호를 흥성궁주(興盛宮主)라고 하였다. 같은 해 아버지 서눌은 딸이 왕비가 되자 중추사우산기상시, 서경유수판사 등의 자리를 역임하였으며, 덕종 때에는 문하시중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3]. 또 1026년(현종 17년) 현종은 그녀의 생모 최씨에게 이천군대부인의 호를, 계모 정씨에게 이천군대군의 호를 추증했다[4].
1057년(문종 11년) 음력 5월에 사망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그녀가 왕의 서모이기는 하나 아들을 두지 않았으므로 문종에게 상복을 입지 말라고 간하여 문종이 이를 따랐으며, 역시 같은 이유로 능호가 내려지지 않았고 설날에 제사를 지내지 않게 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시호는 원목왕후(元穆王后)이다[4].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가족 관계
- 친가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부총리)
2세 서필(徐弼 내의령(內議省).종 1품.국무총리)
3세 서희(徐熙 내사령(內史令).종 1품.국무총리)
- 시댁
각주
외부 링크
틀:토막글- ↑ 《고려사》 권8 〈세가〉 권8 - 문종 11년 5월 정해(丁亥) 기사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목왕후〉항목
- ↑ 네이버 백과사전 〈서눌〉항목틀:깨진 링크
- ↑ 4.0 4.1 《고려사》 권88 〈열전〉 권1 후비 열전 - 현종 후비 원목왕후 서씨
- ↑ 현화사비에 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