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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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장동룡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10일 (월) 02: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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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이인영-안융진담판(서희)-1976s.jpg
작가 이인영
제작연도 1976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군사
분류 유화
소장처 전쟁기념관



개요

고려 성종 12년(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였을 때 거란 군영에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하는 서희.

설명

작품 소재

993년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은 동경유수(東京留守) 소손녕으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이에 고려에서는 항복하자는 견해와 서경(西京 :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우세하였으나 서희는 할지론을 반대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소손녕안융진(安戎鎭 : 평남 안주일대)을 공격하다가 고려군에 패해 고려의 사신과 면대하기를 청해왔으므로 여기에 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축출하고, 장흥진(長興鎭)·귀화진(歸化鎭)·곽주(郭州)·귀주(歸州)·흥화진(興化鎭) 등에 강동6주(江東六州)의 기초가 되는 성을 쌓고 고려의 영토를 압록강까지 넓히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1]

작품 구도

거란 진영에 들어가 소손녕과 대등한 예로서 회견의 절차를 밟아 담판을 하고 있는 서희 앞에는 한 장의 지도가 놓여 있고, 거란 장수 소손녕은 호피가 덮여진 의자에 위압적인 자세로 앉아 회담에 임하고 있다. 그 주위를 포범 가죽위에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거란군 장수들이 에워싸고 회담장 밖에도 거란군의 막사가 보이고 무장한 군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문신 복장으로 침착하게 소손녕을 설득하고 있는 서희의 당당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각적 안내

서희소손녕이인영 「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1976
이 그림에 대한 정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인영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A는 B를 그렸다 1976년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서희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942년-998년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소손녕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6년 이인영가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를 제작하였다.
1979년 한국방송공사가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를 대여하였다.
1991년 11월 20일-1992년 11월 19일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남부연수원가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를 임대하였다.
1998년- 전쟁기념관가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를 소장하고 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26603 126.915617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이 한국방송공사에 대여되었다.
35.425372 126.824168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남부연수원에 대여되었다.
37.537190 126.977113 이인영-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이 전쟁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의원동우회, 『민족기록화 구국위업편』, 한국도서출판공사, 1981년, 23-27쪽.

주석

  1. "서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