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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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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5일 (목) 15:11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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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襄陽 洛山寺)
대표명칭 양양 낙산사
한자 襄陽 洛山寺
주소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일원 (전진리)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495호
문화재 지정일 2008년 12월 18일
관리자 양양군
건립시기 671년
창건자 의상
경내문화재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 낙산사홍예문, 낙산사원장, 낙산사홍련암



정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에 위치한 사찰.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이다.

내용

삼국유사』에 의하면, 낙산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된 후 786년(원성왕 2)에 낙산사는 화재로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범일국사가 858년(헌안왕 2)에 불전을 다시 짓고 정취보살상(正趣菩薩像)을 봉안하였다. 10세기 중엽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의 사찰이 다시 소실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이를 다시 중창하고 13세기 초에 이규보 등이 관음보살상을 보수하고 복장유물을 봉안했다.

태조 이성계는 1399년(정종 원년)에 낙산사에서 능엄법회를 열었고, 1399년(태종 4)에 기청법회를 열었다. 1467년(세조 13)에 세조 역시 낙산사에 헌향하고 사찰중건을 명하였으며, 1469년(예종 원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낙산사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631년(인조 9)에는 36명의 승려가 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중창하였으며, 1850년(철종 원년)에는 원통보전, 용선전, 어실각 등을 중수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 사찰 전체가 또다시 소실되었다. 1953년에 원통보전이 신축된 이후부터 1999년까지 7층 석탑이 중수되고 무설전, 무이당, 범종각, 심검당, 근행당 등의 전각이 건립되면서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었다. 2005년 4월 5일에 낙산사는 화재로 또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은 낙산사의 건물은 물론 보물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까지 소실되는 피해를 가져왔다. 이후 낙산사 재건에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007년까지 원통보전, 범종루, 심검당, 취숙헌, 선열당, 홍예문누각, 홍련암연화당, 해우소 등을 신축하였고 2009년에는 설선당, 근행당, 응향각, 정취전, 취숙헌, 고향실, 빈일루, 대성문 등을 신축하였다.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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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