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순-남해대교
남해대교 | |
작가 | 박각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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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3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건설/교통 |
분류 | 유화 |
소장처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개요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인 남해대교를 그린 민족기록화이다. 다리 위를 달리는 차들이나 밑을 지나가는 배 등을 통해 그림 속 남해대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은 1970년대 당시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풍경도 거의 다른 점이 없을 정도로 변함이 없는 모습이다. 그림을 세로로 삼 등분하는 다리를 기준으로 오른편에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가가, 왼편에는 금오산이 그려져 있다.
설명
작품 소재
1968년 5월에 착공되어 1973년 6월 20일에 완성된 남해대교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가설한 동양 최대 규모의 현수교이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긴 3경간 2힌지 보강형 현수교[2]이기도 하다.
작품 배경
이 다리가 위치한 남해군의 경제는 주로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는 소규모 공업에 불과했지만 그 좌우의 여수·광양지구, 삼천포지구 등에 대단위 임해공업단지가 설치·가동되었고, 남해안 및 호남고속도로가 완공됨에 따라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다리의 건설은 그러한 발전의 흐름을 더욱 활성화시켰고, 부근 지역인 부산·여수·마산·남해·하동 등과의 지역간 연결체제가 한층 원활하게 되었다.
남해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자연지세가 아름다운 명승고적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이 대교의 개통으로 말미암아 육지와의 연락이 쉬워져 국내 관광객 및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커다란 이점을 지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 및 개발을 촉진하는 데 커다란 구실을 하고 있다.
시각적 안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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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각순 | 박각순-남해대교 | A는 B를 그렸다 | 1975년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박각순-남해대교 | A는 B를 대여하였다 |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박각순-남해대교 | A는 B를 소장하고 있다 | |
박각순-남해대교 | 남해대교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
박각순-남해대교 | 금오산 |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
남해대교 | 현수교 | A는 B에 포함된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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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 박각순이 박각순-남해대교를 제작하였다. |
1991년 1월 15일-1992월 1월 14일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이 박각순-남해대교를 대여하였다. |
1998년 12월 30일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으로 박각순-남해대교의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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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2958 | 127.158241 | 박각순-남해대교가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 대여되었다. |
37.392958 | 127.158241 | 박각순-남해대교가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 소장되어 있다. |
그래프
참고문헌
- "아산방조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7년 1월 31일 확인)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