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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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복원모사도의 제작 및 보관===
 
===어진 복원모사도의 제작 및 보관===
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여 제작한 모사도이다. 원본인 1928년에 그려진 <순종 어진>은 순종 사후 황실의 하교를 받아 [[김은호|이당 김은호]]가 제작하였고 [[익선관]]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이다. [[김은호]]는 초상화를 그릴 때 전통적인 초상화법 대신 사진을 보고 얼굴의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부드럽게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순종 어진>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김은호]]는 여러 차례 [[조선 순종|순종]]의 [[어진]]을 제작했는데, 1916년경에 그가 그린 익선관본 순종 어진을 제작 당시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어진은 [[창덕궁 대조전]] 벽에 걸려 있다가 1917년의 [[창덕궁 대조전|대조전]]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다. 1928년의 <순종 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 소장되었다가 [[한국전쟁]] 당시에 부산 피난 시기에 화재를 당해 반소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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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익선관본)|순종황제 어진]]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여 제작한 모사도이다. 원본인 1928년에 그려진 <순종 어진>은 [[조선 순종|순종]] 사후 황실의 하교를 받아 [[김은호|이당 김은호]]가 제작하였고 [[익선관]]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이다. [[김은호]]는 초상화를 그릴 때 전통적인 초상화법 대신 사진을 보고 얼굴의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부드럽게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순종 어진(곤룡포본)|순종 어진]]>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김은호]]는 여러 차례 [[조선 순종|순종]]의 [[어진]]을 제작했는데, 1916년경에 그가 그린 익선관본 순종 어진을 제작 당시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어진은 [[창덕궁 대조전]] 벽에 걸려 있다가 1917년의 [[창덕궁 대조전|대조전]]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다. 1928년의 <[[순종 어진(곤룡포본)|순종 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 소장되었다가 [[한국전쟁]] 당시에 부산 피난 시기에 화재를 당해 반소되었다.<br/>
2014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28년의 <순종 어진>에 남아있는 부분을 토대로 소실된 부분에 대한 디지털 복원 작업을 더해 초본을 제작하였다. 얼굴의 소실된 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순종 어진 초본]]>과 1916년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의 흑백사진을 활용하여 복원하였고 [[곤룡포]]의 용보는 [[세종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황룡포]]의 오조룡보를 참고하였다. 의궤의 기록대로 얼굴 부분은 배채를 하고, 용체와 나머지 부분은 앞쪽에서만 칠하였다. 원본의 작가인 [[김은호|이당 김은호]]의 기법을 살리고 유물 자체에 대한 상태조사 결과와 문헌자료를 검토하여 원본과 최대한 가깝게 채색하고 장황하여 마무리하였다.<ref>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국립고궁박물관, 2015, 8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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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28년의 <[[순종 어진(곤룡포본)|순종 어진]]>에 남아있는 부분을 토대로 소실된 부분에 대한 디지털 복원 작업을 더해 초본을 제작하였다. 얼굴의 소실된 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순종 어진 초본]]>과 1916년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흑백사진)|순종 어진의 흑백사진]]을 활용하여 복원하였고 [[곤룡포]]의 용보는 [[세종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황룡포]]의 [[오조룡보]]를 참고하였다. 의궤의 기록대로 얼굴 부분은 배채를 하고, 용체와 나머지 부분은 앞쪽에서만 칠하였다. 원본의 작가인 [[김은호|이당 김은호]]의 기법을 살리고 유물 자체에 대한 상태조사 결과와 문헌자료를 검토하여 원본과 최대한 가깝게 채색하고 장황하여 마무리하였다.<ref>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국립고궁박물관, 2015, 89쪽.</ref>
<순종 어진 복원모사도>는 치밀한 조사와 공들인 모사과정으로 불에 탄 <순종 어진>을 복원하였고 이는 [[어진]]의 복원과 연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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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어진 복원모사도>는 치밀한 조사와 공들인 모사과정으로 불에 탄 <[[순종 어진(곤룡포본)|순종 어진]]>을 복원하였고 이는 [[어진]]의 복원과 연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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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복원모사도에 묘사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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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어진 복원모사도>[[익선관]]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으로 순종은 손을 소매 안에 넣은 공수자세를 취하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순종|순종]]이 앉은 의자는 용문양이 조각되어있고 바닥의 돗자리도 용문이 주로 장식되었고 색채도 화려하다. [[조선 순종|순종]]이 입은 [[곤룡포]]는 질감이나 주름표현이 평면적이어서 입체적으로 표현된 얼굴과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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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종|순종]]의 얼굴은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 표현과 다른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입체적으로 부드럽게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으로 그려졌다. 원본이 1928년에 제작된 것이나 1909년경 [[이와타 카나에]]가 촬영한 [[순종 초상 사진|사진]]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조선 순종|순종]]의 16세 때의 얼굴모습이다. [[익선관]] 아래로 반듯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고 눈에는 짙은 쌍커풀이 있고 턱이 두툼하고 하관이 큰 얼굴이며 도톰한 윗입술이 눈에 띄는 모습이다.
<순종 어진 초본>은 현재 두 본의 유지초본이 있는데 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순종 어진 초본>과 [[순종 어진(상복본)|고려대학교박물관본]] 두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 초본>은 오른쪽 하단에 계해(癸亥) 1923년에 그려졌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1923년에 [[김은호]]가 순종어진을 그렸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없어 비공식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복식과 [[조선 순종|순종]]의 얼굴 생김새가 1909년경 [[통감부]]시기 황실 어용사진사 역할을 했던 [[이와타 카나에|이와타 카나에(岩田 鼎, 1870~?)]]가 촬영한 [[순종 초상 사진|사진]]과 거의 유사하여 사진을 범본으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ef>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국립고궁박물관, 2015, 84쪽.</ref> 따라서 [[조선 순종|순종]]의 30대 때의 모습이다.<br/>
 
[[순종 어진(상복본)|고려대학교박물관본]]은 국립현대미술관본에 비해 약간 크지만 사진영상식 수법으로 변화된 표현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본과 같다. 제작시기가 적혀있지 않아 1913년, 1915~1916년, 1923~1928년 등 여러 추정이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본이 [[이와타 카나에|이와타]][[순종 초상 사진|사진]]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면 [[순종 어진(상복본)|고려대학교박물관본]]은 얼굴은 같은 사진을 참조한 것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본과 달리 육군대장 대례복이 아니라 평상복을 착용하고 있다.<br/> 
 
<순종 어진 초본>은 비록 완성본이 아닌 유지초본의 형태이지만 순종의 얼굴이 남아있는 당대의 어진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새롭게 보급되기 시작한 사진영상식 수법<ref>사진영상식 초상화기법은 1908년 정동 부근 사진미술소를 차리고 사진화법을 가르친 재한일본인 화가 [[시미즈 토운|시미즈 토운(淸水東雲, 1868~1929 추정)]]을 통해 보급되고 있었다.</ref>예로서도 회화사적 가치가 있다.
 
 
 
===어진에 묘사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 초본>은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순종이 입은 군복은 대원수복이 아닌 육군대장복으로 이는 어깨에 견장, 소매에 인자형(人子形) 수장(袖章)이 있는 것은 대한제국기 대원수예복(大元帥禮服)과 같으나 소매의 인자형 수장이 11줄에서 9줄로 바뀐 것에서 대원수복이 아니라 육군대장복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1923년에 제작된 것이나 1909년경 [[이와타 카나에]]가 촬영한 사진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작품 속의 순종은 군통수권을 상실한 채 육군대장으로 지위가 하락한 마지막 황제로서의 모습이다.<ref>권행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4176 순종어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도상적인 측면에서는 군복을 입고 짧은 머리를 드러낸 채로 그려지는 등 이전까지의 [[어진]]들이 갖는 특징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br/>
 
[[조선 순종|순종]]의 얼굴은 이전까지의 초상화 기법, 표현과 다른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부드럽게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으로 그려졌다. 머리를 짧게 잘라 넘겨 이마를 드러내고 있고 눈에는 짙은 쌍커풀이 있고 턱이 두툼하고 하관이 큰 얼굴로 콧수염을 다듬어 장식적으로 기른 모습이 눈에 띈다. [[순종 어진(상복본)|고려대학교박물관본]]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 초본>에 비해 조금 살이 빠지고 나이가 든 모습의 [[조선 순종|순종]]을 보여준다.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10월 24일 (화) 03:32 판


순종 어진 복원모사도
역사인물초상화 초상 순종 어진 복원모사도.jpg
한자명칭 純宗 御眞 復原模寫圖
제작시기 2014년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유형 어진
크기(세로×가로) 270.0×104.8㎝


정의

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의 불에 탄 부분을 디지털로 복원한 모사도.

내용

어진 복원모사도의 제작 및 보관

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여 제작한 모사도이다. 원본인 1928년에 그려진 <순종 어진>은 순종 사후 황실의 하교를 받아 이당 김은호가 제작하였고 익선관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이다. 김은호는 초상화를 그릴 때 전통적인 초상화법 대신 사진을 보고 얼굴의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부드럽게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순종 어진>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김은호는 여러 차례 순종어진을 제작했는데, 1916년경에 그가 그린 익선관본 순종 어진을 제작 당시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어진은 창덕궁 대조전 벽에 걸려 있다가 1917년의 대조전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다. 1928년의 <순종 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 소장되었다가 한국전쟁 당시에 부산 피난 시기에 화재를 당해 반소되었다.
2014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28년의 <순종 어진>에 남아있는 부분을 토대로 소실된 부분에 대한 디지털 복원 작업을 더해 초본을 제작하였다. 얼굴의 소실된 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 초본>과 1916년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의 흑백사진을 활용하여 복원하였고 곤룡포의 용보는 세종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황룡포오조룡보를 참고하였다. 의궤의 기록대로 얼굴 부분은 배채를 하고, 용체와 나머지 부분은 앞쪽에서만 칠하였다. 원본의 작가인 이당 김은호의 기법을 살리고 유물 자체에 대한 상태조사 결과와 문헌자료를 검토하여 원본과 최대한 가깝게 채색하고 장황하여 마무리하였다.[1] <순종 어진 복원모사도>는 치밀한 조사와 공들인 모사과정으로 불에 탄 <순종 어진>을 복원하였고 이는 어진의 복원과 연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어진 복원모사도에 묘사된 모습

<순종 어진 복원모사도>는 익선관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으로 순종은 두 손을 소매 안에 넣은 공수자세를 취하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순종이 앉은 의자는 용문양이 조각되어있고 바닥의 돗자리도 용문이 주로 장식되었고 색채도 화려하다. 순종이 입은 곤룡포는 질감이나 주름표현이 평면적이어서 입체적으로 표현된 얼굴과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순종의 얼굴은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 표현과 다른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입체적으로 부드럽게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으로 그려졌다. 원본이 1928년에 제작된 것이나 1909년경 이와타 카나에가 촬영한 사진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순종의 16세 때의 얼굴모습이다. 익선관 아래로 반듯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고 눈에는 짙은 쌍커풀이 있고 턱이 두툼하고 하관이 큰 얼굴이며 도톰한 윗입술이 눈에 띄는 모습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 어진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 조선 순종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 김은호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 국립현대미술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 순종 초상 사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순종 어진(상복본) 순종 초상 사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순종 어진(상복본) 고려대학교 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순종 초상 사진 이와타 카나에 A는 B가 촬영하였다 A dcterms:creator B
조선 순종 순종 초상 사진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순종 초상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23년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이 제작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4312230 127.0204160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주석

  1.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국립고궁박물관, 2015, 89쪽.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1. 단행본
    • 홍선표, 『한국근대미술사』 , 시공사, 2009.
    • 조선미, 『왕의 얼굴』, 사회평론,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