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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수) 00:14 판
개성 귀법사 (開城 歸法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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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개성 귀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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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城 歸法寺 |
정의
경기 개풍군에 있었던 사찰.
내용
963년(광종 14)에 광종이 대원(大願)을 발하여 국찰로서 송악산 아래에 이 절을 짓고 친히 승려들을 공양했으며, 균여(均如)를 초대주지로 삼았다. 또한, 당시의 실력자이었던 최충(崔冲)은 이곳에서 예비 등용문인 하과(夏課)를 베풀었다. 즉, 최충은 매년 여름이 되면 이 절의 승방에서 벼슬을 하지 못하고 집안이 가난한 선비들을 모아서 구경삼사(九經三史)를 강의하는 한편, 시로써 서로의 실력을 겨루게 하였다. 또한, 이 절은 광종 이후 목종·선종·의종 등 여러 왕의 행차가 잦았으며, 중요한 법회의식이 거행되어 당시로서는 최대의 국찰이었다. 특히, 1085년(선종 2) 선종이 이 절에 행차해 반승(飯僧)을 베풀었고, 1087년 대장경을 봉안하는 법회에 참석하였다. 의종은 1161년 4월 초 이 절에 들러 한달을 넘게 머물렀으며, 1166년(의종 20) 수문전(修文殿)에서 백고좌회(百高座會)를 열기도 하였다.[1]
관련승려
탄문
968년(광종 19) 법인국사 탄문(法印國師 坦文)이 왕사(王師)가 되어 귀법사에서 주석하였다.[2]
낙진
1114년(예종 9) 원경왕사 낙진(元景王師 樂眞)은 왕사(王師)가 되어 귀법사에서 주석하였다.[3]
1119년(예종 14) 낙진은 귀법사에서 입적하였으며, 귀법사 서쪽 산기슭에서 다비를 행하였다.[4]
종린
1179년(명종 9) 현오국사 종린(玄悟國師 宗璘)이 입적하자 귀법사에 시신을 임시로 모셨다.[5]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균여 | 개성 귀법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낙진 | 개성 귀법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탄문 | 개성 귀법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종린 | 개성 귀법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고려 광종 | 개성 귀법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정병조, "귀법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장충식, "탄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지관, "합천 반야사 원경왕사 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3,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6, 92쪽.
- ↑ 이지관, "합천 반야사 원경왕사 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3,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6, 92-93쪽.
- ↑ 박정미, 홍영의, "종린", 『디지털용인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정병조, "귀법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