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김창락-원양어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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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 한가운데서 참치를 잡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을 그린 민족기록화이다. 어부들의 복장이나 그물을 비롯한 배의 구조적인 디테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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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 한가운데서 참치를 잡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을 그린 [[김창락]]의 민족기록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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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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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업]]은 1950년대부터 그 기반을 다져오다가 1962년부터 시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급물살을 타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70년대 초부터 어선이 대형화되고 생산이 증대되었는데, 그림은 그를 반영하듯 엄청난 양의 참치가 그물에 담겨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산업은 해방 이후 1956년까지 산업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1957년 6월에 인도양 참치연승 시험 조업 이후부터 참치연승어업이 시작되었고 1970년대 초부터 어선을 대형화하고 생산을 증대함으로써 [[원양어업]]이 급신장되었다. 그림에 등장한 참치 조업이 시작된 것은 1957년 6월 인도양 참치연승 시험 조업 이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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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업]]이란 해양어업의 하나로 근거지로부터 며칠 또는 수십일 걸리는 먼 바다에서 하는 어업을 말한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74412 원양어업]",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우리나라의 수산업은 해방 이후 1956년까지 산업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였지만 1957년에 참치연승 시험 조업(지남호, 원양 어선 제1호)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958년에는 원양어업의 기업화를 위한 목적에서 지남 1·2·3호를 [[남태평양]]의 사모아에 어업기지를 두고 출어시켜, 1961년까지 조업하였으며, 1962년에는 개 회사에서 각각 1척을 동 어장에 출어시켰다. 이후 1962년부터 시행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맥을 같이하여 [[대일청구권자금|대일 청구권 자금]]에 의한 어선 건조사업, 계획조선에 의한 어선건조 어업차관, 대일어업 협력 자금, 상업차관, 아시아개발은행차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차관에 의한 어선 도입, 국적 취득 조건부 나용선에 의한 어선 도입 등 원양 어선은 매년 그 세력이 증가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8332 원양어업]",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한국의 원양어업은 어획하는 어종에 따라 [[참치어업|참치류어업]]과 [[트롤어업|트롤류어업]]으로 나누고, 어법에 따라 참치주낙[延繩]어업·두릿그물어업[旋網漁業]·트롤어업·오징어채낚기·흘림걸그물어업[流刺網漁業]·새우트롤어업 등으로 나뉘는데,<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74412 원양어업]",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그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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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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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1일 (월) 16:07 판


원양어업
김창락-원양어업-1975s.jpg
작가 김창락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수산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정의

북태평양 한가운데서 참치를 잡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을 그린 김창락의 민족기록화이다.

설명

작품 소재

원양어업이란 해양어업의 하나로 근거지로부터 며칠 또는 수십일 걸리는 먼 바다에서 하는 어업을 말한다.[1] 우리나라의 수산업은 해방 이후 1956년까지 산업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였지만 1957년에 참치연승 시험 조업(지남호, 원양 어선 제1호)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958년에는 원양어업의 기업화를 위한 목적에서 지남 1·2·3호를 남태평양의 사모아에 어업기지를 두고 출어시켜, 1961년까지 조업하였으며, 1962년에는 개 회사에서 각각 1척을 동 어장에 출어시켰다. 이후 1962년부터 시행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맥을 같이하여 대일 청구권 자금에 의한 어선 건조사업, 계획조선에 의한 어선건조 어업차관, 대일어업 협력 자금, 상업차관, 아시아개발은행차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차관에 의한 어선 도입, 국적 취득 조건부 나용선에 의한 어선 도입 등 원양 어선은 매년 그 세력이 증가되었다.[2] 한국의 원양어업은 어획하는 어종에 따라 참치류어업트롤류어업으로 나누고, 어법에 따라 참치주낙[延繩]어업·두릿그물어업[旋網漁業]·트롤어업·오징어채낚기·흘림걸그물어업[流刺網漁業]·새우트롤어업 등으로 나뉘는데,[3] 그림 속


그림 읽기

김창락-원양어업-1975s.jpg
이 그림에 대한 정보

지식 관계망

추후 제작 및 삽입 예정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창락 김창락-원양어업 A는 B를 그렸다 1975년
국회사무처 김창락-원양어업 A는 B를 대여하였다
김창락-원양어업 원양어업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원양어업 대일청구권자금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4]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5년 김창락이 김창락-원양어업을 제작하였다.
1991년 1월 8일-1992년 1월 7일 국회사무처이 김창락-원양어업을 대여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32103 126.914133 김창락-원양어업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대여되었다.

관련 민족기록화

시각자료

가상현실

추후 제작 및 삽입 예정

갤러리

영상

주석

  1. "원양어업", 『doopedia』online, 두산백과.
  2. "원양어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원양어업", 『doopedia』online, 두산백과.
  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2633&cid=46631&categoryId=46631 누리선 여기 참고!]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자원
    • "원양어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