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선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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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경상북도 상주 땅에 서씨성을 가진 양반 하나가 살고 있었다. 비록 양반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집안은 오래전에 몰락하여 그저 작은 땅떼기에 농사를 지으며 입에 겨우 풀칠을 하고 사는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서선달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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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달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다. 서선비는 학문이 얕아 과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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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그는 선달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성이 워낙 착하고 성실한 데다가 언제나 자기 사정은 뒷전으로 하고 발 벗고 나서서 다른 사람을 돕는 탓에 마을 사람들이 그를 높여 불러주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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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해 극심한 흉년이 들어 서선달은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종자를 살 돈마저 떨어져 발을 동동굴렀다. 생각도 못한 그는 돈을 빌리기 위해 멀리 부산에 사는 육촌 동생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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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에서 부산까지는 500리가 넘는 먼 길이었다. 산 넘고 물건너 6촌 동생을 찾아간 서선달은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내 올해 농사가 끝나고 나면 꼭 갚겠네. 100냥만 빌려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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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도 흉년이 들어서 사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동생은 난색을 표했다. 올해는 꼭 풍작을 이루어 자네 돈을 200냥으로 불려주겠네! "허허, 형님도 참!" 동생은 서선달의 어설픈 장담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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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친척은 서선달에게 백냥을 내어주었고, 서선달은 연거푸 사례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서선달은 친척에게 받은 돈 백냥 꾸러미를 전대에 넣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농사 지을 밑천이 생겼으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고, 발걸음도 날아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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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콧노래를 부르며 산마루를 넘던 도중 서선달은 허리 춤이 허전한 것을 느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급히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전대는 사라지고 온데간데 없었다. 서선달이 집으로 급히 돌아가느라 서둘러 고개를 넘던 도중 자기도 모르게 전대를 흘려버린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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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선달은 언제 어디서 전대를 흘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쿠야, 내 돈! 전 재산을 잃어버린 서선달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굴이 흙빛이 된 그는 왔던 길을 돌아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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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 지겁 삼십리 먼 길을 길바닥만 바라보며 뛰어가던 서산달은 높은 고갯마루를 오르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움직일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한탄했다. "이 멍청한 놈! 그 귀한 돈 사라진 줄도 모르고, 이 바보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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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흘러내린 땀이 눈속으로 들어가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이젠 망했네. 그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서선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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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고개를 들어보니 도포를 입은 웬 중노인 하나가 뒷짐을 진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서둘러 가다가 그만 전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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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에는 얼마가 들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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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에게 빌린 백냥이 들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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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달의 눈에서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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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러자 중노인은 뒷짐졌던 손에 들고 있던 서선달의 전대를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혹시 이 전대가 자네 것이 아닌가?" 서선달은 전대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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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자신의 것이었다. "맞습니다. 어찌 어르신이 이걸 가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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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식경쯤 전 이 고개를 넘다가 전대를 하나 주었네. 전대를 열어보니 100냥이나 되는 큰 돈이 들어 있었어!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어버린 사람 속이 얼마나 탈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가던 길을 멈추고 여기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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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은 누군가가 흘린 돈을 찾아주기 위해 한 시간이나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서선달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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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제가 어떻게 갚을수 있을지요?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서선달은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싶었지만, 노인은 손을 회회 저을 뿐이었다. "은혜랄 게 뭐가 있겠나! 나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 걸!" 말을 마친 노인은 지체 없이 돌아서서 산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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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었을까? 산신령이었을까? 아니야. 분명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사람이었다면 그 큰 돈을 찾아줬을리가 없지. 암! 길을 걷는 내내 서선달의 머릿속에는 산에서 만난 노인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돈을 찾고 다시 길을 걸어 서선달은 안동의 어느 작은 나루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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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선가 웬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살려주세요!!" 놀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그곳엔 위급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여인이 발을 헛디뎠는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 하고 있지만 물살이 강해 도저히 그러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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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떻게 좀 해봐요? 저러다 저 여자 죽겠어요!~" 그러자 누군가가 답했다. "이 강은 물살이 요상해서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같이 죽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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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경꾼들은 많아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서선달은 자기라도 당장 뛰어들어 그녀를 구하고 싶었지만 평생을 산촌에서만 산터라 헤엄을 전혀 칠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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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어찌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는데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이에 그는 자신의 돈 꾸러미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누구든~ 저 여인을 구해주는 사람에게 이 돈 백냥을 주겠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백냥! 정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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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달은 돈꾸러미를 더욱 높이 들며 더 큰 소리를 냈다. "정말이오. 저 여인을 구해온다면 여기 내 손에 든 백냥을 바로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 하나가 강물에 첨벙 뛰어들어 여인을 강가로 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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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달은 약속한 대로 그 장정에게 자신의 전재산인 백냥을 내주었다." 그러자 죽다가 살아난 여인이 서선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비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물귀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와 함께 저희 집으로 가시죠. 아버님께 말씀드려 이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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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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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달은 고개를 저으며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러자 여인이 문득 무릎을 꿇으며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아니 되옵니다. 이렇게 그냥 가시게 할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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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간청에 서선달은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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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의협심에 전 재산을 걸고 여인을 살리기는 했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편으론 막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알겠소. 내 잠시만 짬을 내지요!" 그렇게 서선달은 결국 여인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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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두 사람은 안동 읍내에 있는 여인의 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소녀가 사는 곳이지요!" 집을 본 서선달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의 집이 글쎄 99칸이나 되는 커다란 저택이었으니까. 알고 보니 여인은 안동에서도 가장 돈이 많다는 권부잣집 외동딸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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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고래등 같은 저택은 난생 처음 보는구려!" 서선달은 내심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의 부친 권부자가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권부자는 서선달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말 했다. "귀인께서 내 딸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들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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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달은 권부자의 요란한 환대에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르신!" "지나친 겸양의 말씀이시오. 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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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부자는 다시 서선달의 손을 강하게 끌었다. 바로 그때 권 부자의 얼굴을 본 서선달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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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르신은!...", "아니 자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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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놀랍게도 여인의 부친 권부자는 다름 아닌 서선달의 돈을 찾아주었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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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필유린(德必有隣)
 
덕필유린(德必有隣)
 
      
 
      

2026년 10월 5일 (월) 11:09 판

옛날 옛적 경상북도 상주 땅에 서씨성을 가진 양반 하나가 살고 있었다. 비록 양반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집안은 오래전에 몰락하여 그저 작은 땅떼기에 농사를 지으며 입에 겨우 풀칠을 하고 사는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서선달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선달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다. 서선비는 학문이 얕아 과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실상 그는 선달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성이 워낙 착하고 성실한 데다가 언제나 자기 사정은 뒷전으로 하고 발 벗고 나서서 다른 사람을 돕는 탓에 마을 사람들이 그를 높여 불러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해 극심한 흉년이 들어 서선달은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종자를 살 돈마저 떨어져 발을 동동굴렀다. 생각도 못한 그는 돈을 빌리기 위해 멀리 부산에 사는 육촌 동생을 찾아갔다.

상주에서 부산까지는 500리가 넘는 먼 길이었다. 산 넘고 물건너 6촌 동생을 찾아간 서선달은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내 올해 농사가 끝나고 나면 꼭 갚겠네. 100냥만 빌려주시게!"

"형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도 흉년이 들어서 사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동생은 난색을 표했다. 올해는 꼭 풍작을 이루어 자네 돈을 200냥으로 불려주겠네! "허허, 형님도 참!" 동생은 서선달의 어설픈 장담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척은 서선달에게 백냥을 내어주었고, 서선달은 연거푸 사례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서선달은 친척에게 받은 돈 백냥 꾸러미를 전대에 넣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농사 지을 밑천이 생겼으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고, 발걸음도 날아갈 듯했다.

그런데 콧노래를 부르며 산마루를 넘던 도중 서선달은 허리 춤이 허전한 것을 느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급히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전대는 사라지고 온데간데 없었다. 서선달이 집으로 급히 돌아가느라 서둘러 고개를 넘던 도중 자기도 모르게 전대를 흘려버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서선달은 언제 어디서 전대를 흘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쿠야, 내 돈! 전 재산을 잃어버린 서선달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굴이 흙빛이 된 그는 왔던 길을 돌아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허겁 지겁 삼십리 먼 길을 길바닥만 바라보며 뛰어가던 서산달은 높은 고갯마루를 오르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움직일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한탄했다. "이 멍청한 놈! 그 귀한 돈 사라진 줄도 모르고, 이 바보 같은 놈!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흘러내린 땀이 눈속으로 들어가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이젠 망했네. 그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서선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고개를 들어보니 도포를 입은 웬 중노인 하나가 뒷짐을 진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서둘러 가다가 그만 전대가!... "전대에는 얼마가 들어 있었나?" "친척에게 빌린 백냥이 들어 있었지요!"

서선달의 눈에서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러자 중노인은 뒷짐졌던 손에 들고 있던 서선달의 전대를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혹시 이 전대가 자네 것이 아닌가?" 서선달은 전대를 보니 정말로 자신의 것이었다. "맞습니다. 어찌 어르신이 이걸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두식경쯤 전 이 고개를 넘다가 전대를 하나 주었네. 전대를 열어보니 100냥이나 되는 큰 돈이 들어 있었어!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어버린 사람 속이 얼마나 탈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가던 길을 멈추고 여기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그 노인은 누군가가 흘린 돈을 찾아주기 위해 한 시간이나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서선달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제가 어떻게 갚을수 있을지요?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서선달은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싶었지만, 노인은 손을 회회 저을 뿐이었다. "은혜랄 게 뭐가 있겠나! 나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 걸!" 말을 마친 노인은 지체 없이 돌아서서 산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었을까? 산신령이었을까? 아니야. 분명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사람이었다면 그 큰 돈을 찾아줬을리가 없지. 암! 길을 걷는 내내 서선달의 머릿속에는 산에서 만난 노인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돈을 찾고 다시 길을 걸어 서선달은 안동의 어느 작은 나루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디선가 웬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살려주세요!!" 놀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그곳엔 위급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여인이 발을 헛디뎠는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 하고 있지만 물살이 강해 도저히 그러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아이고~ 어떻게 좀 해봐요? 저러다 저 여자 죽겠어요!~" 그러자 누군가가 답했다. "이 강은 물살이 요상해서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같이 죽을지도 몰라!"

그렇게 구경꾼들은 많아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서선달은 자기라도 당장 뛰어들어 그녀를 구하고 싶었지만 평생을 산촌에서만 산터라 헤엄을 전혀 칠줄 몰랐다.

이에 어찌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는데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이에 그는 자신의 돈 꾸러미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누구든~ 저 여인을 구해주는 사람에게 이 돈 백냥을 주겠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백냥! 정말이요?"

서선달은 돈꾸러미를 더욱 높이 들며 더 큰 소리를 냈다. "정말이오. 저 여인을 구해온다면 여기 내 손에 든 백냥을 바로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 하나가 강물에 첨벙 뛰어들어 여인을 강가로 구해냈다.

"서선달은 약속한 대로 그 장정에게 자신의 전재산인 백냥을 내주었다." 그러자 죽다가 살아난 여인이 서선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비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물귀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와 함께 저희 집으로 가시죠. 아버님께 말씀드려 이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아니요.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오!" 서선달은 고개를 저으며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러자 여인이 문득 무릎을 꿇으며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아니 되옵니다. 이렇게 그냥 가시게 할수는 없습니다!"

여인의 간청에 서선달은 망설여졌다. 순간의 의협심에 전 재산을 걸고 여인을 살리기는 했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편으론 막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알겠소. 내 잠시만 짬을 내지요!" 그렇게 서선달은 결국 여인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안동 읍내에 있는 여인의 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소녀가 사는 곳이지요!" 집을 본 서선달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의 집이 글쎄 99칸이나 되는 커다란 저택이었으니까. 알고 보니 여인은 안동에서도 가장 돈이 많다는 권부잣집 외동딸이었던 것이었다.

"이리 고래등 같은 저택은 난생 처음 보는구려!" 서선달은 내심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의 부친 권부자가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권부자는 서선달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말 했다. "귀인께서 내 딸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들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서선달은 권부자의 요란한 환대에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르신!" "지나친 겸양의 말씀이시오. 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권 부자는 다시 서선달의 손을 강하게 끌었다. 바로 그때 권 부자의 얼굴을 본 서선달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어르신은!...", "아니 자네가!..."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놀랍게도 여인의 부친 권부자는 다름 아닌 서선달의 돈을 찾아주었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덕필유린(德必有隣)

조선 철종때 경상 도 상주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 은 그를 그냥 서선 달 이라고 불렀습 니다.

원래 선달이란 과 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 을 받지 못한 사람 을 이르는 말이지 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 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 다고 합니다.

서 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인 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 로 곤궁하였습 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서울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아들을 찾아갔 습니다.

효자 아들은 주인 께 통사정하여 6개 월 치 월급을 임시 로 먼저 받아 아버 지께 드렸습니다.

서 선달은 5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경 새재 고개를 넘던 중 그만 돈을 흘려 잃어버리고 말았 습니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노인이 이 돈 꾸러미를 발견했 는데 세어보니 백 냥이나 되는 큰돈 이었습니다.

한편 서 선달은 30 리를 더 와서야 돈 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는데 전 재산 을 잃어버렸으니 눈앞이 깜깜했습 니다.

그런데 다행히 돈 을 발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습 니다.

횡재라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일러 말합니다.

잃은 사람은 반드 시 찾아온다. 목숨같이 귀한 돈 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꼬!"

그 노인은 가던 길 을 멈추고 몇 시간 이고 돈 주인이 나 타나기를 기다렸 습니다.

과연 한참 후에 서 선달이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나타 났습니다.

주운 돈을 서선달 에게 돌려주자

서 선달은 "어른께 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찾아 준 은혜 를 갚겠다며 사례 를 하려 하는데

그 노인은 은혜랄 게 있소 당연한 일 인데" 하고는 펄쩍 뛰며 사양을 했습 니다. 그는 주운 돈 100냥을 서선달에 게 전달을 하고 가 던 길을 갔습니다.

서 선달도 다시 집 을 향해 갔고 이윽 고 문경 진남강가 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침 한 청년 이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구 하나 뛰어들 어 구해 줄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 다.

그때,서 선달이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저 청년 을 구해내면 백냥 을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 이 뛰어들어 청년 을 살려냈습니다.

죽다 살아난 도령 이 서선달에게 말 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 고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집은 안동에 서 제일 큰 부자인 데 함께 가시면 백냥을 갚아드리 겠습니다"

서 선달 은 무슨 사례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있 는지라 같이 안동 까지 가게 되었습 니다.

안동의 청년의 집 은 과연 고래 등 같은 부잣집 이었습니다.

그때 청년의 부친 이 득달같이 달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친이 란 사람은? 다름 아닌 서 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 이었습 니다.

"온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 주시 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 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돈을 잃었다 면 무슨 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 이십 니다.

7대 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부자 노인 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 답으로 돈 천냥을 나귀에 실어 서선달 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 시 서선달이 사는 상주 이안 고을을 찾아와 백 섬 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 갔습니다.

이 일은 후에 조정 에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 고을이 모두 조정 으로부터 후한 상 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시대는 참 착하게 살기가 힘 든 시대입니다. 착한 것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시대입 니다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사기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덕필유린 입니다

덕이 있고 심성이 착한 사람은 반드 시 주위에 돕는 손길이 있습니다.

착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바보 같 아 보이지만 사람 답게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임을 명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 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정직하게 살면 하늘도 사람들도 반드시 돕습니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서씨일가연합회 서일연[[1]]

효양산 전설문화축제(孝養山 傳說文化祝祭)

장위공 서희(徐熙) 선생을 되새겨 볼 수 있고, 서신일(徐神逸)선생의 은혜 갚은 사슴과 황금송아지 전설이 있는 효양산의 주요 6개소(물명당, 효양정, 금송아지상, 은선사, 서씨(徐氏)시조 서신일(徐神逸)묘, 금광굴)를 탐방하며, 효양산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로 명칭 변경

이섭대천(利涉大川)

창전동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세워져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후백제와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길에 올랐다가 장마로 물이 불어난 복하천(福河川)을 건너지 못해 곤경에 빠졌을 때 '서목(徐穆)'이라는 이천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복하천을 건너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 후 왕건이 서목(徐穆)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섭대천'이라는 고사에서 따다가 이 지역에 ‘이천(利川)’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천의 유래에 관한 이 일화를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1월 이천 지역 토박이 원로들의 모임인 이원회(利元會)가 중심이 되어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단으로 된 방형의 대좌 위에 길고 커다란 자연석 형태의 흑요암을 올려놓았으며 흑요암 중앙에 '利涉大川(이섭대천)'이라는 글씨를 커다랗게 새겨 넣었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장위공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

이천시는 외교 협상가로서 장위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서희(徐熙)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고자 서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사 문화 축제를 연다.

글로벌 축제를 지향하며, 우리나라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주목해 평화적 소통과 교류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외교, 평화, 역사’를 테마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효양산 은선사

효양산 은선사 (孝養山 隱仙寺)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효양산(孝養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뒤 이천지방에 16사찰을 지을 때 설봉산 영월암(映月庵)과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효양산에 있는 서씨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묘와 관련시켜, 신라가 망하자 이 산속에 은거한 서씨가 지은 절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문인식(文仁植)이 중건하였으나 그 뒤 다시 폐허화된 것을 1764년(영조 40)에 읍민 김씨(金氏)가 선영을 위하여 중창하였다. 1937년에 주지 김상필(金商珌)이 광명전(光明殿)을 신축하였으나, 6·25 때 소실되어 완전히 폐사로 남았던 것을 1979년 봄에 주지 김영규(金榮奎)가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고 절 이름도 은선암에서 은선사로 바꾸었다. 이 절에는 창건 당시에 봉안하였다는 석불 1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6·25 때 절 부근에 살고 있던 신도들이 포격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땅 속에 묻었다고 하나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희성당(希聖堂)

신라 52대 효공왕(孝恭王) 때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낸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벼슬에서 물러나 이천 효양산(孝養山)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은거지인 이천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서신일은 80살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가 신령의 아들이 환생한 사슴을 구해주고 아들을 얻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렇게 얻은 아들이 서희(徐熙) 장군의 아버지 정민공(貞敏公) 서필(徐弼)이다. 서필은 광종 때 대광내의령(大匡內議令)으로 솔직한 간언으로 왕을 보필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서희 역시 고려의 이름난 외교가이며 문무를 겸비한 명신이었다. 서희는 거란의 침입을 탁월한 화술로 굴복시켜 물러가게 했으며 압록강을 국토의 경계로 확정짓는데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후손들 역시 고려 왕조의 충신으로 가문을 빛냈으며, 조선이 개국된 후에도 절개를 지켰다. 이천서씨는 인주(인천)이씨, 해주최씨, 남양홍씨와 더불어 고려시대 4대 명문가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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