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환-굴뗏목양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8번째 줄: | 8번째 줄: | ||
|유형= 수산 | |유형= 수산 | ||
|분류= 유화 | |분류= 유화 | ||
− | |소장처= [[ | + | |소장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필드수=8 | |필드수=8 | ||
}} | }} | ||
60번째 줄: | 60번째 줄: | ||
!중심||width="20%"|연결정보||width="20%"|공간정보이름||width="20%"|경도||width="20%"|위도 | !중심||width="20%"|연결정보||width="20%"|공간정보이름||width="20%"|경도||width="20%"|위도 | ||
|- | |- | ||
− | |{{PAGENAME}} ||소장처|| [[ | + | |{{PAGENAME}} ||소장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37.392958|| 127.158241 |
|} | |} | ||
2017년 3월 23일 (목) 17:10 판
굴뗏목양식 | |
작가 | 이용환 |
---|---|
제작연도 | 1973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수산 |
분류 | 유화 |
소장처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설명
굴뗏목 양식을 이용한 굴 생산 장면을 그린 민족기록화이다.
1970년 당시 정부는 시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양식 어업을 중점 개발 사업으로 삼았는데, 그 중에서도 굴양식은 어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때 사용된 방법이 굴뗏목 양식인데, 대나무·쇠파이프 등으로 뗏목을 만들고 그 아래에 합성수지로 만든 뜸통을 달아서 부력을 크게 한 것에다 수하연[1]을 매단 것이다. 이 방법은 시설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굴 양식이 시작된 초기에는 많이 쓰였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재래 양식보다 위생적이면서도 품질이 우수하다며 각광받았으며 특히 남해안 충무 앞바다에서 큰 성과를 얻었다. 이와 같은 사실과 연안의 모습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림의 배경은 남해안 어딘가의 굴 양식장으로 보인다. 그림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기둥이 바로 굴뗏목이며, 오른편에는 대한종합식품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공장으로 가공하기 위해 굴을 정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970년대 어촌의 한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시각적 안내
관련 민족기록화
농축수산/새마을 관련 작품
관련항목
노드 | 관계 | 노드 |
---|---|---|
이용환-굴뗏목양식 | ~에 의해 그려지다 | 이용환 |
이용환-굴뗏목양식 | ~에 소장되어 있다 | 새마을중앙협의회 중앙연수원 |
이용환-굴뗏목양식 | ~을 소재로 삼다 | 굴뗏목양식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
이용환-굴뗏목양식 | 제작연도 | 1973년 |
이용환-굴뗏목양식 | 새마을중앙협의회 중앙연수원 대여기간 | 1991.01.15~1992.01.14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
이용환-굴뗏목양식 | 소장처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37.392958 | 127.158241 |
그래프
참고문헌
- "남해안에 큰 굴공장", e-영상역사관, 대한뉴스 제 880호. e-영상역사관 영상 보기 (2017년 2월 14일 확인)
- "굴", 위키백과. 위키백과 "굴" 페이지 (2017년 2월 14일 확인)
주석
- ↑ 垂下連. 양식생물을 부착시키기 위해 부착기를 꿴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