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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釜山 梵魚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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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산 범어사 |
---|---|
한자 | 釜山 梵魚寺 |
주소 |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
교구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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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사찰이다.
내용
『삼국유사』에 따르면 범어사는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의상의 제자 표훈(表訓)을 비롯하여 원효, 낙안, 매화 등 많은 고승들이 주석하였으며, 범어사는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서, 또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서 중요한 가람이 되었다.[1] 임진왜란 때 건물과 기록들이 모두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범어사의 변천 과정은 명확하지 않다. 그 뒤 1602년(조선 선조 35)에 관선사(觀禪師)가 중건하였으나 곧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 현감(玄鑑), 계환(戒環), 법인(法仁), 천원(天元), 덕균(德均) 등이 법당 및 요사채, 불상과 시왕상(十王像), 그리고 필요한 집기들을 갖추어서 중창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해민(海敏) 화상(和尙)의 주도로 비로전이 건립되었고, 1700년(숙종 26)에는 명학 화상의 주도로 팔상전과 불이문이 건립되었다. 그 뒤 범어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사원의 규모를 넓혀나갔다. 1900년대 들어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 아래 민족적인 사찰로 자리매김하면서 근대 민족 불교를 지향하는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2]
관련 문화유산
-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 梵魚寺 大雄殿, 보물 제434호)
-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釜山 梵魚寺 등나무群落, 천연기념물 제176호 )
-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釜山 梵魚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526호)
-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釜山 梵魚寺 三層石塔, 보물 제250호)
- 부산 범어사 조계문(釜山 梵魚寺 曹溪門, 보물 제1461호)
- 원효 대사 영정
- 사명 대사 영정
- 의상 대사 영정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부산 범어사 | 의상 | A는 B가 창건하였다 | A ekc:founder B |
표훈 | 부산 범어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원효 진영(범어사) | 부산 범어사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유정 진영(범어사) | 부산 범어사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