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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글팀_신증동국여지승람_01_신증동국여지승람_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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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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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행]], [[윤은보]]. [[신공제]], [[홍언필]], [[이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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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시기=15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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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1530년(중종 25) [[이행|이행(李荇)·]][[윤은보|윤은보(尹殷輔)]]·[[신공제|신공제(申公濟)]]·[[홍언필|홍언필(洪彦弼)]]·[[이사균|이사균(李思鈞)]]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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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년(중종 25)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편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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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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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남송(南宋) 축목(祝穆)의 『[[방여승람|방여승람(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대명일통지|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풍속·인물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대학본|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해군 목판본|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단종 3)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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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지리지]]』,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방여승람|방여승람(方輿勝覽)]]』과 『[[대명일통지|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와 봉수(烽燧)의 조항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임사홍(任士洪)]]·[[성현|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으로 교정·보충하였다. 1528년에  3차 증수가 이루어졌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임진왜란]]이후 일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대학본|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에 복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해군 목판본|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이 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그러나 이 지도는 본래 지지를 읽는 데 참고가 되도록 첨부한 안내도였으므로 지도학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도 산과 하천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산천에 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순수한 자연현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리지에 지도를 첨부함으로써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의 공간적 파악과 정확한 인식을 달성하려 한 점은 이전의 지리지에서 한 걸음 발전한 것이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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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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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도 산과 하천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산천에 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集成編)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지리지이다. 이 책은 지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에 걸친 종합적 성격을 지닌 백과전서식 서적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사회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로서 여러 학문에서도 중요한 고전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조선 세종|세종]] 때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조세·인구 등 경제·군사·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인물·예속·시문 등이 강화되어 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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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集成編)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지리지이다. 이 책은 지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에 걸친 종합적 성격을 지닌 백과전서식 서적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사회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로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고전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조선 세종|세종]] 때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조세·인구 등 경제·군사·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인물·예속·시문 등이 강화된 아쉬움이 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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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해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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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남송(南宋) 축목(祝穆)의 『[[방여승람|방여승람(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대명일통지|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풍속·인물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대학본|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해군 목판본|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단종 3)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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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남송(南宋) 축목(祝穆)의 『[[방여승람|방여승람(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대명일통지|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풍속·인물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대학본|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해군 목판본|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단종 3)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책머리에는 [[이행]]의 진전문(進箋文)·서문·교수관원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의 노사신(盧思愼)의 진전문, [[서거정|서거정(徐居正)]]의 서문 및 교수관직명·찬수관직명·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끝에는 [[홍언필]]·[[임사홍]]·[[김종직]]의 발문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이 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책머리에는 [[이행]]의 진전문(進箋文)·서문·교수관원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의 노사신(盧思愼)의 진전문, [[서거정|서거정(徐居正)]]의 서문 및 교수관직명·찬수관직명·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끝에는 [[홍언필]]·[[임사홍]]·[[김종직]]의 발문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이 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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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어, 1906년 [[후지가미|후지가미(淵上貞助)]]가 [[신증동국여지승람 후지가미 활판본]] A5판으로 인쇄하였고, 1912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고서간행회 활판본|활판본]]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60년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대학교 소장본|서울대학교 소장본]]을 바탕으로 한 영인본이 [[동국문화사]]에서 나왔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신증동국여지승람 민족문화추진회 한글번역본|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어, 1906년 [[후지가미|후지가미(淵上貞助)]]가 [[신증동국여지승람 후지가미 활판본]] A5판으로 인쇄하였고, 1912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고서간행회 활판본|활판본]]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60년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대학교 소장본|서울대학교 소장본]]을 바탕으로 한 영인본이 [[동국문화사]]에서 나왔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신증동국여지승람 민족문화추진회 한글번역본|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었다.<ref>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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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최대섭]]의 민족기록화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주요 인물 [[최무선]]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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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섭]]의 민족기록화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주요 인물 [[최무선]]에 대해 제2권 경도 하(京都下)에 서술되어 있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제2권 경도 하(京都下) 군기시'''
 
  '''제2권 경도 하(京都下) 군기시'''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화약고기문에,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최해산|최해산(崔海山)]] 군이 나에게 말하기를, '나의 [[최무선|선군(先君)]]이 일찍이 왜구가 침입하면 제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여, 수전(水戰)에서 화공을 쓸 방책을 생각하고서 [[염초]]를 구워서 쓸 기술을 찾았다. 당나라 [[이원  ]]이란 자는 [[염초]] 굽는 장인인데, 공(公)이 매우 후하게 대우하고, 은밀히 그 기술을 물어서 집에서 부리는 종 몇 명을 시켜 사사로이 기술을 익히게 하여, 그 효과를 시험한 뒤에야 조정에 건의하여 홍무 10년 정사 10월에 처음으로 [[화통도감|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하여 [[염초]]를 굽고, 또  당나라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자를 모집하여 전함(戰艦)을 만들게 하고 공이 직접 감독하였다. 그러나 모두 공의 이러한 일을 위험하게 여겼더니, 왜구가 전라도ㆍ충청도에 크게 침입하여 그때 인심이 흉흉하였으나, [[심덕부]], [[나세]]와 우리 [[최무선|선군]]이 세 원수(元帥)가 되어 누 선(樓船) 80척에 [[화포]]와 [[화통]]을 비치하고서, [[진포|진포(鎭浦)]]에서 맞아 공격하여 왜선 30척을 불사르고 괴수 손시라(孫時剌)를 잡아 죽였으니, 이것은 홍무 13년 경신 8월에 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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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화약고기문에, "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최해산|최해산(崔海山)]] 군이 나에게 말하기를, '나의 [[최무선|선군(先君)]]이 일찍이 왜구가 침입하면 제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여, 수전(水戰)에서 화공을 쓸 방책을 생각하고서 [[염초]]를 구워서 쓸 기술을 찾았다. 당나라 [[이원  ]]이란 자는 [[염초]] 굽는 장인인데, 공(公)이 매우 후하게 대우하고, 은밀히 그 기술을 물어서 집에서 부리는 종 몇 명을 시켜 사사로이 기술을 익히게 하여, 그 효과를 시험한 뒤에야 조정에 건의하여 홍무 10년 정사 10월에 처음으로 [[화통도감|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하여 [[염초]]를 굽고, 또  당나라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자를 모집하여 전함(戰艦)을 만들게 하고 공이 직접 감독하였다. 그러나 모두 공의 이러한 일을 위험하게 여겼더니, 왜구가 전라도ㆍ충청도에 크게 침입하여 그때 인심이 흉흉하였으나, [[심덕부]], [[나세]]와 우리 [[최무선|선군]]이 세 원수(元帥)가 되어 누 선(樓船) 80척에 [[화포]]와 [[화통]]을 비치하고서, [[진포|진포(鎭浦)]]에서 맞아 공격하여 왜선 30척을 불사르고 괴수 손시라(孫時剌)를 잡아 죽였으니, 이것은 홍무 13년 경신 8월에 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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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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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반영된 효 인식」, 『嶺南學』, Vol 28, 2015, 321-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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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반영된 효 인식」, 『嶺南學』28,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5, 321-356쪽.  
**소순규,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 항목의 구성과 특징」, 『동방학지』, Vol 165, 2014, 3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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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규,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 항목의 구성과 특징」, 『동방학지』165,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4, 33-64쪽.  
**범선규, 「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의 지형 관련 기록이 갖는 의의」, 『한국지형학회지』, Vol 14, 2007, 37-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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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규, 「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의 지형 관련 기록이 갖는 의의」, 『한국지형학회지』14, 한국지형학회지, 2007, 37-53쪽.
  
===유용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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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원
*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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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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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헌]]
 
[[분류:문헌]]
[[분류:개념]]
 
[[분류:김누리]]
 
[[분류:이창섭]]
 

2017년 11월 22일 (수) 23:06 기준 최신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최영준,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자표기 新增東國輿地勝覽
유형 문헌
저자 이행, 윤은보. 신공제, 홍언필, 이사균
저술시기 1530년
시대 조선시대
수량 55권 25책


정의

1530년(중종 25)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편찬한 책이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팔도지리지』,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방여승람(方輿勝覽)』과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와 봉수(烽燧)의 조항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으로 교정·보충하였다. 1528년에 3차 증수가 이루어졌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임진왜란이후 일본 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에 복간한 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1]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2]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도 산과 하천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산천에 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3]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集成編)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지리지이다. 이 책은 지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에 걸친 종합적 성격을 지닌 백과전서식 서적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사회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로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고전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세종 때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조세·인구 등 경제·군사·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인물·예속·시문 등이 강화된 아쉬움이 있다.[4]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최대섭의 민족기록화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주요 인물 최무선에 대해 제2권 경도 하(京都下)에 서술되어 있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제2권 경도 하(京都下) 군기시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화약고기문에, "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최해산(崔海山) 군이 나에게 말하기를, '나의 선군(先君)이 일찍이 왜구가 침입하면 제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여, 수전(水戰)에서 화공을 쓸 방책을 생각하고서 염초를 구워서 쓸 기술을 찾았다. 당나라 이원   이란 자는 염초 굽는 장인인데, 공(公)이 매우 후하게 대우하고, 은밀히 그 기술을 물어서 집에서 부리는 종 몇 명을 시켜 사사로이 기술을 익히게 하여, 그 효과를 시험한 뒤에야 조정에 건의하여 홍무 10년 정사 10월에 처음으로 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하여 염초를 굽고, 또  당나라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자를 모집하여 전함(戰艦)을 만들게 하고 공이 직접 감독하였다. 그러나 모두 공의 이러한 일을 위험하게 여겼더니, 왜구가 전라도ㆍ충청도에 크게 침입하여 그때 인심이 흉흉하였으나, 심덕부, 나세와 우리 선군이 세 원수(元帥)가 되어 누 선(樓船) 80척에 화포화통을 비치하고서, 진포(鎭浦)에서 맞아 공격하여 왜선 30척을 불사르고 괴수 손시라(孫時剌)를 잡아 죽였으니, 이것은 홍무 13년 경신 8월에 있던 일이다.
원문읽기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승람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동국여지승람 김종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동국여지승람 임사홍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동국여지승람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대학본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유사하다 A owl:sameAs B
신증동국여지승람 광해군 목판본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유사하다 A owl:sameAs B
이행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윤은보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신공제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홍언필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이사균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동국여지승람 속삼강행실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신증동국여지승람 후지가미 활판본 후지가미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고서간행회 활판본 조선고서간행회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대학교 소장본 동국문화사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신증동국여지승람 민족문화추진회 한글번역본 민족문화추진회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신증동국여지승람 후지가미 활판본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유사하다 A owl:sameAs B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고서간행회 활판본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유사하다 A owl:sameAs B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대학교 소장본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와 유사하다 A owl:sameAs B
최무선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원주 거돈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개성 불일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군위 인각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양주 회암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문경 대승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강진 월남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산청 단속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예성강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충주 정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원주 거돈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서산 보원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양평 보리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수원 창성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강진 월남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함평 용천사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황산벌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강민첨 초상(반신상)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이원(고려)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선죽교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상왕산 신증동국여지승람 A는 B에서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481년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다
1485년 동국여지승람 1차 수교가 이루어졌다
1499년 동국여지승람 2차 수교가 이루어졌다
1514년 속삼강행실도가 간행되었다
1528년 동국여지승람 3차 수교가 이루어졌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1611년 신증동국여지승람 광해군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1906년 신증동국여지승람 후지가미 활판본이 간행되었다
1912년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고서간행회 활판본이 간행되었다
1960년대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대학교 소장본이 간행되었다
1969년 신증동국여지승람 민족문화추진회 한글번역본이 간행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최영준,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최영준,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최영준,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최영준,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이재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반영된 효 인식」, 『嶺南學』28,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5, 321-356쪽.
    • 소순규,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 항목의 구성과 특징」, 『동방학지』165,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4, 33-64쪽.
    • 범선규, 「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의 지형 관련 기록이 갖는 의의」, 『한국지형학회지』14, 한국지형학회지, 2007, 37-53쪽.
  • 웹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