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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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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 10:55 기준 최신판
습 (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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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습 |
---|---|
한자표기 | 襲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흉례, 상례 |
정의
옷을 펴 놓은 곳으로 시신(屍身)을 옮겨서 시신에 옷을 입히는 의식으로, 국장(國葬)에서는 승하한 날 거행한다.[1]
내용
요즘에는 ‘수의(壽衣)’라고 부른다. 내시가 손을 씻고 휘장[帷帳] 안에 습상(襲牀)을 설치하고 요[褥]와 자리[席]를 펴고 베개를 놓는다. 옥대(玉帶) 1개,곤룡포(袞龍袍) 1벌, 저사(紵絲)로 만든 답호(褡護) 1벌, 철릭[帖裏] 1벌을 먼저 놓고, 나(羅)로 만든 단령(團領) 1벌, 답호 1벌, 철릭 1벌, 백초(白綃)로 만든 이두(裏肚) 1벌, 백초(白綃)로 만든 한삼(汗衫) 1벌, 백초(白綃)로 만든 바지[袴] 2벌, 백초(白綃)로 만든 버선[襪] 1켤레를 놓는다. 그 위에 아홉 겹으로 옷을 입히는데[九稱] 답호를 섞어 착용시킨다. 또 함(函)에는 망건(網巾)과 익선관(翼善冠),귀를 메우는 충이(充耳) 2개, 얼굴을 덮어 싸는 멱목(幎目) 1개, 손을 싸는 악수(握手) 2개, 신[履] 1쌍 등을 담아 습상의 동북쪽에 놓는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왕 | 습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종친 | 습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백관 | 습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상례 | 습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주석
-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01쪽.
- ↑ 『國朝五禮儀』 卷7, 「凶禮」 ‘襲’;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01~102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주자가례(朱子家禮)』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 , 2013.
- 鄭鐘秀, 『朝鮮初期 喪葬儀禮 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