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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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5품 이하 정처의 예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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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와 5품 이하 정처가 의례에 참석할 때 [[노의]] 다음에 입는 옷이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03쪽.</ref>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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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복식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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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여성들이 입는 [[장삼]]은 상복(常服)이면서 동시에 상복(喪服)으로, [[가례]]나 [[상례]] 등의 의례에 착용되었다. 1403년(태종 3) 『태종실록』에 '장삼을 생추포(生皺布)로 하여 저포(苧布)를 쓰는 것을 금하라.'는 기록과 1460년(세조 6) 『세조실록』 4월, [[왕세자빈]] 간택시 보내는 예물의 물목에 ‘금배견화대홍단자장삼(金背肩花大紅段子長衫)’이 포함되어 있어 [[장삼]]은 5품 이하의 명부복 이외에 [[상례]]와 [[혼례]]에도 착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안동에서 발굴된 일선문씨묘에서 16세기 [[장삼]]이 출토된 사례가 있다. 또 2011년 대전에서 안정나씨묘 이장과정에서 [[장삼|흑장삼]]이 출토되었다. 이 [[장삼|흑장삼]]은 [[악학궤범|『악학궤범』]] 권9에 기록된 '번령 흑장삼'과 동일하다. 15세기에는 여기(女妓)에게 [[장삼|흑장삼]]을 입게 하는 등 색상에 대한 규율을 엄격하게 지켰으나 16세기 이후 계회도(契會圖)에서는 팔이 짧은 고려 양식의 [[장삼|황장삼]]을 입은 여기들을 볼 수 있다. 승려들이 가사와 함께 착용하는 포(袍)도 형태는 다르나 '장삼'이라 한다..<ref>정주란·김용문, 「조선전기 출토 여성복식의 유형과 특징에 관한 연구」, 『服飾』 67권, 한국복식학회, 2017, 162~163쪽.</ref>
===착용신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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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00쪽.</ref>
 
 
 
===형태===
 
사각 보자기 모양이며 금박으로 길상 무늬를 입혀 장식한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23쪽.</ref><br/>
 
머리 위에 얹어 어깨를 가릴 정도의 길이이다.
 
 
 
===기타<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00쪽.</ref>===
 
[[너울]]에 드리워진 얇은 천 부분을 지칭하기도 하여 조선 초기에는 너울과 혼용되기도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면사와 너울이 뚜렷이 구별되어 나타난다. 『세종실록』3년(1421) 6월 기록과 『성종실록』2년(1471) 5월 기록에서 보면, 당시의 양반부녀자들은 외출 시 내외용으로 반드시 면사를 드리워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기녀로 오인받기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의 혼례에 사용된 면사는 개화기에 이르러서야 그 사례가 발견되는데, 면사가 언제부터 민가의 혼례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공주·옹주의 예복이 민가의 혼례에 허용된 것으로 미루어 면사도 함께 허용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오늘날 신부의 베일을 면사포라고 하는 것도 면사에서 연유한 것이다.<br/>
 
대비 이하 세손빈까지 자적색 면사를 쓰고, 숙의·공주·옹주는 남색을 쓴다.
 
전해지는 민가의 면사 유물들은 흑색이다.<br/>
 
우리나라의 전통 굿거리에서 무녀의 복식에서도 '너울가지'라 하여 면사와 같은 형태의 쓰개를 찾아볼 수 있다.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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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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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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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 박필순, 「여자 포에 관한 연구-조선시대 장의를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梁仁愛, 「女子 袍에 관한 硏究-우리나라와 중국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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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란·김용문, 「조선전기 출토 여성복식의 유형과 특징에 관한 연구」, 『服飾』 67권, 한국복식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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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나영·신혜성·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더 읽을거리===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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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afe.daum.net/djchwoollim/fVqF/6?q=%C8%E6%C0%E5%BB%EF%20%B4%EB%C0%FC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까페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다음까페』<sup>online</sup></online></html>, 다음.</ref>
===유용한 정보===
 
  
 
[[분류:궁중기록화]]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분류:복식]]

2017년 12월 18일 (월) 01:22 기준 최신판


장삼
(長衫)
대전역사박물관(http://www.daejeon.go.kr/) 소장.
대표명칭 장삼
한자표기 長衫
구분 의복
착용신분 왕비, 왕세자빈, 내명부, 외명부
착용성별 여성



정의

조선 전기의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와 5품 이하 정처가 의례에 참석할 때 노의 다음에 입는 옷이다.[1]

내용

조선 전기의 여성들이 입는 장삼은 상복(常服)이면서 동시에 상복(喪服)으로, 가례상례 등의 의례에 착용되었다. 1403년(태종 3) 『태종실록』에 '장삼을 생추포(生皺布)로 하여 저포(苧布)를 쓰는 것을 금하라.'는 기록과 1460년(세조 6) 『세조실록』 4월, 왕세자빈 간택시 보내는 예물의 물목에 ‘금배견화대홍단자장삼(金背肩花大紅段子長衫)’이 포함되어 있어 장삼은 5품 이하의 명부복 이외에 상례혼례에도 착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안동에서 발굴된 일선문씨묘에서 16세기 장삼이 출토된 사례가 있다. 또 2011년 대전에서 안정나씨묘 이장과정에서 흑장삼이 출토되었다. 이 흑장삼『악학궤범』 권9에 기록된 '번령 흑장삼'과 동일하다. 15세기에는 여기(女妓)에게 흑장삼을 입게 하는 등 색상에 대한 규율을 엄격하게 지켰으나 16세기 이후 계회도(契會圖)에서는 팔이 짧은 고려 양식의 황장삼을 입은 여기들을 볼 수 있다. 승려들이 가사와 함께 착용하는 포(袍)도 형태는 다르나 '장삼'이라 한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왕비 장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빈 장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내명부 장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외명부 장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일반 백성 장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비의 소례복 장삼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왕세자빈의 소례복 장삼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03쪽.
  2. 정주란·김용문, 「조선전기 출토 여성복식의 유형과 특징에 관한 연구」, 『服飾』 67권, 한국복식학회, 2017, 162~163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박필순, 「여자 포에 관한 연구-조선시대 장의를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梁仁愛, 「女子 袍에 관한 硏究-우리나라와 중국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 정주란·김용문, 「조선전기 출토 여성복식의 유형과 특징에 관한 연구」, 『服飾』 67권, 한국복식학회, 2017.
  • 홍나영·신혜성·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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